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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그랜드캐년만 있는 것이 아니다

Day 68 - 미국 자이언 캐년, 브라이스 캐년(Zion, Bryce)

by 바다의별

2017.04.10


이번 여행 첫 캠핑 투어의 시작이다. 라스베이거스에 다시 온 이유는 오로지 그랜드캐년을 비롯한 주위 다른 국립공원들을 보기 위함이었고, 가장 저렴하고 편하게 다닐 수 있는 방법은 2박 3일간의 캠핑 투어였다. 미팅 장소까지 가기 위해 숙소에서 우버를 불렀는데, 드라이버가 한국인이었다. 왜 한인 투어를 예약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나는 영어를 잘할 수 있고 대부분 한인 투어가 더 비싸기 때문에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랬더니 한인 투어가 항상 더 비싼 것은 아니라며, 한국어가 더 편한데 왜 영어로 하는 투어를 신청했느냐고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또한 내릴 때 내 휴대폰을 가져가 직접 본인 평점을 주려고 하기도 했다(우버는 드라이버 평점이 중요하다). 한인 투어를 운영하는 분이신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이런 한국 사람들을 만나면 당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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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나를 비롯해 약 12명 정도의 사람을 태운 우리 차는 가장 먼저 자이언 캐년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이 비슷한 루트로 지난해 여행했던 친구가 있어 나는 사전에 각 국립공원들에 대해 물었었는데, 그 친구는 자이언 국립공원이 가장 별로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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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국립공원이 별로라니! 공원 내 셔틀버스를 타고 하이킹 코스 입구에 내리자마자 나는 카메라 셔터를 끊임없이 눌러댔다. 그 친구의 평가가 매우 잘못되었다면서. 물론, 오후가 되고 그다음 날이 되면서 나는 점차 그 친구의 말에 동의하기 시작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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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yenta trail은 2~3시간 걷는 코스라고 나와있었지만, 실제로는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날씨도 적당히 시원하며 따뜻해서 오르막길도 걷기 좋았다. 나는 나처럼 혼자 온 독일인 여자애와 함께 걸었다. 한 달간 미국 서부를 여행하러 온 이 친구는 나의 8개월짜리 계획을 듣자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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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여행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폭포가 보였다. 생각보다 물이 많지는 않았지만, 가까이 갈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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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니, 위에 있는 폭포에까지 이르렀다. 이곳은 물이 더 없었지만, 사진 한 장에 들어오지 않는 규모가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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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렇게 위로 올라오니 경치는 더 멋져져서 좋았다. 이쯤까지 올라오니 땀도 살짝 났다. 그래도 새로운 친구와 발걸음 맞추며 걸으니 힘들지 않았다. 점심으로 받은 샌드위치도 생각보다 맛있었고!


자이언 다음으로 향한 곳은 브라이스 캐년. 이곳에 도착하니 왜 친구가 자이언 국립공원이 가장 별로라고 했는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진으로 미리 보았음에도, 그 경치는 할 말을 잃을 정도로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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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캠핑 투어에서 본 곳들은 모두 멋졌지만, 그중에서 가장 '예쁘다'는 느낌이 든 곳은 이곳이었다. 언뜻 보면 이 기둥들이 기괴해 보이지만, 가까이 들어갈수록 예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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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스 캐년은 캐년(협곡)으로 불리고는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보통의 캐년들처럼 벽의 형태가 양쪽에 있는 것도 아니고 강이 흐르는 것도 아니어서 지리학적으로는 캐년이 아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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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길쭉하게 서 있는 기둥들을 'Hoodoo'라고 하는데,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 Hoodoo가 되어 그런 모습으로 평생 갇힌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가만히 보면 사람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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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행성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도 주황색인데, 주변이 온통 주황빛이라 더 멋지고 예뻤다. 더 좋았던 것은, 우리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위로 걸어올라 왔는데, 위쪽에만 사람이 많고 우리처럼 아래까지 내려간 사람은 많지 않아서 일부 구간은 우리가 전세 낸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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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더 신비롭고 환상적으로 기억되는 것 같다. 언젠가는 이 초현실적인 곳을 다시 한번 걸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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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투어를 마치고 캠핑장으로 갔다. 원래는 텐트 안에서 캠핑을 하는 것이 맞는데, 이날 갑자기 밤에 기온이 뚝 떨어진다고 해서 텐트 대신 이런 캐빈에서 잘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를 해주었다. 자이언과 브라이스 캐년을 함께 걸었던 독일 여자애와 마찬가지로 혼자 온 홍콩 여자애, 이렇게 셋이서 같은 방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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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큐 저녁식사와 후식으로 먹은 스모어(그래햄 크래커 사이에 초콜릿 한 조각과 불에 녹인 마시멜로를 넣어 샌드위치처럼 먹는 달콤한 디저트)까지, 따뜻하고 맛있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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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불빛이 많이 있어서인지 도심을 한참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별이 기대했던 만큼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 저 한 줄기 그어진 줄은 무엇일까 상상하며 잠들기 전까지 수다를 떨어 즐거웠다. UFO라면 신고할 경우 '맨 인 블랙'에서처럼 기억이 지워질 수 있으니 우리끼리 입을 다물기로 했다. 다음날 보게 될 것들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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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메모 #

* 자연 속에 있다 도시에 왔을 때에는 도시가 참 달콤했는데, 도시를 충분히 즐기고 나니 자연이 금방 그리웠나 보다.
*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늘 마음 편한 일은 아니지만, 때로는 그들이 여행을 더 풍요롭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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