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사진이 더 멋질 수도

Day 69 - 미국 앤털로프 캐년 (Antelope canyon)

by 바다의별

2017.04.11


캠핑 투어 둘째 날. 이날을 특히 더 기대했던 것은 바로 앤털로프 캐년에 가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사진으로 보았을 때 가장 신비로웠던 곳이었는데, 마침 나의 노트북 배경화면 역시 이곳으로 되어있었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배경화면으로서 분명 좋은 장비로 전문 사진작가가 촬영한 사진이겠지. 어쨌든, 앤털로프 캐년의 수많은 사진들을 보며 환상은 더욱 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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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날이 조금 흐렸다. 붉게 물든 하늘을 보며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던 중, 가이드는 오늘 구름이 많아 제대로 된 붉은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기대치를 최대한 낮추고 차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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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털로프 캐년은 전날 본 두 곳에 비하면 굉장히 규모가 작은데, 독특하게도 천장(?)에서 밑으로 걸어내려 가 캐년을 구경하는 형태였다. 아래 계단 사진을 보면 조금 더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런데 가파른 계단에 대한 걱정도 잠시, 기대치를 최대한 낮추고 갔는데도 도착하자마자 실망감이 컸다. 아무리 햇빛이 없다고 해도 사진으로 보던 앤털로프 캐년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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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안으로 들어가면 조금 낫지 않을까?' 기대하며 가파른 계단을 통해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길, 다행히 햇빛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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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좁은 캐년 내부를 걸으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햇빛이 생각보다 잘 들어오고 있었다. 겉에서 보았을 때보다 조금 더 붉게 보이기 시작했다.

DSC07262001.JPG 사자 옆모습 같은 모양

앤털로프 캐년은 바람과 물이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예쁜 곡선과 독특한 구조가 멋졌고, 여기저기서 사자, 물고기, 사람 등의 모습을 찾아내는 것 또한 재미있었다. 햇빛과 오렌지빛의 모래가 만들어내는 색도 예뻤다.

DSC07274001.JPG 사람 둘이 키스를 하는 형태

하지만 수많은 사진들 속에서 보았던 '그 색'은 아니었다. 선명한 초록색이 아닌 옅은 초록빛의 회색이었던 오로라를 처음 보았을 때, 그 감동이 가라앉은 뒤 들었던 의문과 비슷했다. 물론 오로라는 대부분 노출 시간을 길게 해서 사진에 초록색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이니 조금 다를 문제일 수 있겠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앤털로프 캐년에 대한 환상 역시, 카메라의 왜곡과 후보정이 만들어낸 것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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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털로프 캐년을 방문한 모든 사람들이 햇빛 가득한 환상적인 날씨를 맞이하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엄청나게 환상적이라고 해도 내 배경화면만큼 새빨갛고 보랏빛이 나올 정도의 색이 보일 만한 곳은 없었다. 물론 사진도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된 지금, 보정을 하는 것이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다. 나 또한 필요시 촬영 의도를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서 후보정을 하기도 한다.

DSC07317001.JPG 바람에 휘날리는 긴 머리

그저 사진을 보고 받아들임에 있어서 '가면 분명 저럴 거야.'라고 맹목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닌 것이다. 인스타그램에서 형광빛이 도는 새파란 하늘을 보면서 저곳의 하늘은 분명 저런 색일 거라고 간주할 수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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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여행지는 여행지이고, 사진은 그 여행지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또 다른 창작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 참고는 될지언정 내가 직접 가서 똑같은 사진을 찍어온다는 보장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오해할 경우 충분히 멋진 관광지가 실망감만을 안겨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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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을 마치고 다시 계단을 올라 캐년 밖으로 나설 때까지 나는 앤털로프 캐년이 굉장히 멋지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아쉬움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 사소한 메모 #

* 여행 사진은 보도 사진도 아니고, 그저 자신이 느낀 것을 담아내는 사진일 뿐이다.
* 역시나 기대와 감동의 정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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