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77, 81 - 모로코 마라케시 (Marrakech)
2017.04.19, 23
뉴욕에서 리스본을 거쳐 장밋빛 도시인 마라케시에 도착했다. 마라케시는 모로코의 최대 관광도시이다. 몇 해 전 회사 출장으로 카사블랑카와 라바트에 가본 적은 있었지만 약 일주일 머무는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거의 사무실에서 일만 해서 모로코를 제대로 느끼지는 못 했다. 두 도시 모두 관광도시가 아니기도 했고.
어쨌든, 모로코 및 몇몇 중동 국가들로 출장을 다니며 나는 이슬람 국가에 대한 흔한 편견들을 꽤나 없앤 편이었다. 내가 일을 하며 만난 현지인들은 내가 여자임에도 단 한 번도 나를 불편하게 했던 적이 없었고, 현지 식당을 가거나 거리를 걸어도 특별한 시선을 느낀 적도 없었다. 물론, 나는 이 국가들에서 혼자 걸어 다닌 적이 없었다. 건설 회사의 특성상 나는 늘 남자 선배들과 함께 다녔다.
모로코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것이 아니다. 모로코는 아름다운 나라이고, 나쁜 사람들보다는 좋은 사람들을 훨씬 많이 만난 곳이다. 그저 여자가, 어쩌면 동양인 여자가, 혼자 여행할 때 생기는 불편한 점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는 여성 인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는 일부 이슬람 국가들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혼자 오는 여성 관광객이 많지 않은 지역이라면 어디서든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마라케시 도착 첫날. 이미 늦은 오후였지만 저녁 식사도 하고 동네 구경도 잠시 할 겸 나는 숙소를 나섰다. 숙소는 모로코식 숙소인 리야드였는데, 리야드는 가운데가 정원이나 응접실 등의 구실을 하는 야외 공간이 있는 모로코의 전통 가옥으로 대부분 가족 단위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같은 숙소이다. 볼거리가 많은 구시가지에 위치해 있는데도 가격 또한 저렴한 편이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방이 작지만 깨끗하고 직원들도 모두 너무나 친절해서 장시간 비행에도 기분이 좋았다.
숙소를 나서 중심가인 제마 엘프나(Jemaa El Fnaa) 광장까지는 도보로 약 15분. 나는 그 사이에 셀 수 없이 많은 남자들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여야 했다. 사실 혼자 다니는 여성 관광객에게 현지 남자들이 말을 거는 일은 매우 흔한 일이다. 특히 이전에 유럽에서도 자주 겪어보았던 일이다. 이십 대 초반에 처음 갔던 유럽에서 나는 처음에는 매번 어색하게 인사를 하며 응대하다가 나중에는 이 사람들도 그저 순간의 호기심으로 인사를 걸어보는 것이라는 걸 깨닫고, 너무 피곤한 날에는 그냥 못 들은 척하고 지나가버렸다. 대개는 그렇게 지나가면 다시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로코는 달랐다. 마라케시뿐만 아니라 이후 페스나 쉐프샤우엔 등 다른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니하오', '곤니치와' 등으로 내게 말을 걸었을 때 내가 대답을 하면 대답을 하는 대로, 그냥 지나가버리면 지나가버리는 대로, 어쨌든 내가 인사를 받아줄 때까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계속해서 인사말을 외쳐대며 쫓아왔다. 내가 인사를 받아주었을 때 그 사람들이 나를 특별히 괴롭히는 것은 아니었지만, 10초에 한 번씩 처음 보는 사람들이 인사를 걸고,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묻고, 모로코 어떠냐고 묻고, 것은 전혀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같이 식사를 하자거나 숙소가 어디인지 묻는 경우도 허다했다. 나는 이곳에서 사진을 더 찍으며 더 구경하고 싶은데, 대화를 끝내기 위해 황급히 자리를 이동하게 되어 관광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모로코를 포함해 아프리카 대륙 전반적으로 아무래도 위험하다는 인식 때문인지, 동양인 여자가 혼자 다니는 경우를 잘 보지 못 했는데, 어쩌면 그래서 내가 더 신기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중 절반 정도는 상인들이었으니 단순히 물건을 팔아보려고 끈질기게 말을 걸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각자의 이유가 어떻든, 나는 잠시의 산책으로 몹시 피곤해졌다. 맛있는 저녁도, 시원했던 오렌지주스도, 거리를 걷기 시작하면 빨리 숙소로 돌아가고 싶어 졌다.
다음날 나는 2박 3일짜리 사하라 사막 투어에 다녀왔고, 마라케시에 돌아온 다음날에는 시내 투어에 참여했다. 원래는 시내 투어를 신청할 생각이 크게 없었는데,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에 시달리고 나니 혼자 밖을 다니는 것은 무리가 있겠다 싶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사디안 묘지 (Saadian Tomb)였다. 오래전 왕가 식구들과 그 가까운 사람들이 묻힌 곳이다. 다른 무덤에 비해 조금 높이 쌓아 올린 것은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무덤이라고 했다. 앞에 이름이 적힌 무덤은 극소수뿐이었다.
가이드가 이곳 묘지를 스페인의 알람브라(알함브라, Alhambra) 궁전에도 비유를 했는데, 알람브라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지만 꽃이 가득한 정원과 화려한 타일들, 섬세한 벽면들이 굉장히 예뻤다.
이곳은 이 묘지의 주인공(?), 왕인 아흐메드 알 만수르가 묻혀있는 곳이다. 이후 왕조가 바뀌면서 이곳 사디안 묘지는 철저하게 숨겨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 훼손된 부분이 많지 않았다.
이곳은 왕의 부인들의 무덤이 있던 곳이었는데, 이렇게 금으로 장식된 천장도 잘 남아있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바히아 (Bahia) 궁전.
화려한 색감이 너무나 멋졌다. 천장이나 바닥, 벽 어느 곳에도 시선을 잠시 두면, 쉽게 다른 곳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푹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천장은 시더우드에 색을 들이는 것이라고 했는데, 동물 그림은 그리지 않고 꽃이나 패턴만 그려 넣는다고 한다. 염료는 모두 자연에서 얻는다고 했는데 예를 들면 노랑은 사프란, 초록은 민트 등을 이용하는 식이었다.
계속해서 단체로 다니니까 길을 스스로 찾지 않아도 된다는 편리함 외에도 길거리 그 누구도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는 자유로움도 있었다. 나는 같은 투어에 있는 미국인 둘과 친해졌다. 그 둘은 모두 여자였고 서로 직장동료였는데, 마라케시가 이번 여행 마지막 도시라고 했다. 모로코에서 마라케시가 가장 정신없다면서, 그래도 페스에 가면 이곳보다는 다니기 수월할 것이라고 했다. 둘이서 함께 다니니 혼자 다니는 나만큼의 불편함을 느끼지는 못한 것 같지만, 혼자였으면 정말 스트레스받았을 것 같다고 공감해주었다. 그중 한 명은 혼자 탄자니아 여행을 갔을 때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도 말했다.
투어 마지막 장소는 굉장히 오래된 학교인 벤 유세프 마드라사 (Ben Youssef Madrasa)였다. 1900년대 이후 더 이상 학교로 사용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벽면 타일에 코란(쿠란) 구절들을 캘리그래피로 새겨 넣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즐겁게 구경을 마무리 짓고, 마지막은 제마 엘프나 광장으로 향했다. 약 1시간 정도 자유롭게 쇼핑을 하다 모이는 장소로 돌아오면 된다고 했는데, 나는 그전부터 사고 싶던 편한 바지를 구경해 보기로 했다. 혼자 다니면 분명 다시 또 불편해질 테지만, 그래도 하루 종일 단체로 다녔으니 잠시의 불편함은 괜찮겠지, 싶었다.
나는 혼자서 시장 골목들을 돌아다니며, 바지의 시세를 알아보았다. 보통 처음 가게에 들어가면 150~200 디르함 (약 18천 원~23천 원) 정도를 부르지만, 흥정을 하면 최대 50 디르함 (약 6천 원)까지 깎아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없어 가게들을 조금 더 둘러보고 있던 중에, 어떤 상인이 말을 걸었다. 역시 100 디르함 넘게 부르면서 밖에 걸린 바지들을 보여주었지만, 특별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웃으면서 인사하고 떠나려던 참에, 가게 안쪽에 더 많은 디자인들이 있다면서 내 팔을 살짝 잡아당겼다. 그래서 잠시만 보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안쪽으로 들어가 더 둘러보았다. 크게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지만 투어 시간이 끝나가고 있어서 적당한 옷이라도 하나 살 생각으로 가격을 다시 물어보았다. 70 디르함까지는 깎아주었지만 그 이상은 내려가지 않았다. 결국 나는 또 한 번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하고 더 깎아주겠다는 상인을 뒤로하고 가게 문 밖을 나서려 했는데,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그 상인이 옷걸이로 내 등을 친 것이다.
"안 살 거면 가격을 왜 깎아?"
나는 할 말을 잘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좋게 보면 불의를 참지 못하는 것이고, 나쁘게 보면 욱하는 것이다. 그 순간에도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나도 상황 판단은 된다. 지금 이 자리에서, 모로코인 남자 상인들만 가득한 이 골목에서, 내가 무슨 말이든 대꾸를 하는 것이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그러면서 동시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건장한 백인 남성이었으면 그 상인이 나를 그렇게 함부로 대했을까?
나는 그날 저녁 숙소에 돌아와 울었다.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 가뜩이나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절대 입 다물고 당하는 사람이 아닌데, 머나먼 타지에서 혼자 그런 일을 당해놓고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와야 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억울했다. 그러고 나서 속상해졌다. 그다음에 온 건 외로움. 숙소로 돌아오는 길, 말을 거는 사람들이 모두 잠재적으로 나를 괴롭힐 수 있는 사람들로 보였고, 이제 겨우 모로코 여행 첫 일정을 마무리지었다는 생각에 남은 일정에 대한 두려움도 생겼다.
그러나 숙소 사람들은 여전히 친절했다. 잔뜩 긴장한 상태로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내게 필요한 것이 없는지 이것저것 물어봐주는 그 사람들을 보니 오히려 마음이 녹아내려 방에 들어오자마자 눈물이 났던 것 같다. 마라케시도 페스도, 숙소 주인과 그 직원들은 모두가 천사였다. 그리고 이 일을 겪은 다음날 마라케시에서 페스로 가는 기차에서 만난 사람들도 모두 친절했다.
단지 일부 현지인들, 상인들이나 사기를 치려는 일부 사람들(예를 들어 어디로 가려하냐며 길을 안내해줄 것처럼 말을 건 후 길을 물어보면 알려준 다음에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알려주는 길은 대부분 틀린 길이다.)이 여행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이다. 페스나 쉐프샤우엔 같은 도시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큰 도시였던 마라케시는 아무래도 더 심했던 것 같다.
일부 나쁜 사람들 때문에 여행을 망치지는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옷걸이로 한 대 맞고 나니 상한 기분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은 밤이었다.
# 사소한 메모 #
* 페미니즘은 여성 우월주의가 아니라 그저 남녀평등을 외치는 것이다. 여자들이 조금 더 마음 편하게 다닐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