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87 - 나미비아 빈트후크 (Windhoek)
2017.04.29
모로코에서의 마지막 밤을 카사블랑카에서 보낸 후, 나미비아로 가기 위해 다음날 아침 카사블랑카 공항으로 향했다. 테러 방지를 위해 기차역에서 내리니, 공항으로 들어가는 문에도 보안검색대가 있었다. 형식적인 것 같기는 했지만. 남은 디르함이 거의 없어 환전은 하지 않고 (후에 모로코에 갈 예정이었던 아프리카 투어 가이드에게 주었다) 간식을 먹으며 기다렸다 비행기에 탑승했다. 가장 저렴하게 갈 수 있는 항공편을 예약했기에, 비효율적으로 카타르 도하를 거쳐가는 것이었다. 특히나 도하에서는 새벽 2시 반에 출발하는 비행편이어서 굉장히 피곤했다. 나는 어디에서나 잘 자는 사람이지만 비행기에서는 영화를 보느라 못 자는 편이다.
어쨌든 20시간 넘게 걸려서 드디어 나미비아 빈트후크에 내리는 순간, 창밖 풍경이 새로워서 계속 쳐다보았다. 나는 복도 자리에 앉았지만, 안쪽 창문 쪽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그쪽에 앉아 수시로 웃는 얼굴로 나를 지켜보던 꼬마 여자아이가 내게 쑥스러운 듯 몸을 배배 꼬며 'Welcome'이라고 말해주었다. 이것이 나미비아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우리 비행기는 예정시간보다 늦게 내렸고, 원래 우리보다 1시간 뒤에 내리기로 되어있던 친구의 비행기는 결국 우리보다 먼저 도착했다. 우리는 기나긴 입국심사 대기 줄에서 서로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지만 내가 새치기를 할 수도 없고 친구가 인파를 뚫고 뒤로 오는 것도 불가능해 보여 그냥 짐 찾는 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대학 때 베트남으로 봉사활동을 함께 간 것을 시작으로 직장에 다니면서는 몽골, 네팔, 아이슬란드를 함께 여행했던 친구이다. 일부러 친구가 휴가 내기 쉬운 5월 황금연휴에 맞춰서 나미비아를 함께 여행하기로 한 것이었다. 오랜만에, 그것도 이렇게 머나먼 곳에서 만나니 정말 반가웠다. 게다가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한국에서 챙겨 온 친구라 더 고마웠다.
아무래도 친구는 휴가기간 동안 많은 걸 보아야 했기에, 돈을 조금 더 내더라도 우리 둘만의 일정에 맞추어 가이드 겸 운전사와 함께 다니기로 했다. 일정이 이렇게나 바쁠 줄은 몰라서, 나중에 하루 8시간씩 운전한 가이드한테 미안할 정도였다.
어쨌든 그건 다음날부터 시작될 것이고, 우리는 일단 숙소에 가서 짐을 풀었다. 숙소는 생각보다 굉장히 깨끗했고, 부엌과 거실, 수영장 등 공동공간도 좋았고 직원도 친절했다.
우리에게 단 한 가지 찝찝한 것이 있었다면, 현지 여행사였다. 우리는 현지 여행사에 직접 연락해 일정을 세우고 예약했는데, 예약해준 직원이 굉장히 서툴렀다. 예약문의를 했을 때에는 답변도 빠르게 오고 좋아서 이곳으로 택한 것이었는데, 공항 픽업 컨펌도 도착 전날까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고, 최종 일정표도 몇 번을 요청해도 받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불안한 마음으로 공항 밖으로 나서야 했는데, 다행히 픽업 직원은 잘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도착일에 정확한 일정표를 받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들었는데 이 픽업 직원은 그냥 공항 픽업만 해주는 것이라 그런 내용은 전혀 모른다고 했다. 다음날 우리 투어가 몇 시부터 시작하는지, 가이드가 숙소에 몇 시에 픽업을 오는지 우리는 아무 정보도 없어서 결국 숙소 직원에게 부탁해 전화를 걸어 알아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래도 일단은 다음날 픽업 시간도 알아냈고 점심시간이 되어 배가 고프니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시내 중심가까지는 걸어서 20분이기는 한데 리셉션에서 계속 소매치기가 많으니 조심하라고 몇 번을 강조해서 조금 겁이 났다. 그래서 최소한의 돈만 챙겨 나갔다. 리셉션 직원이 가방도 두고 가라 했지만 딱히 주머니도 마땅치 않아서 그냥 크로스백 끈을 최대한 짧게 만들어 나갔다. 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로코에서처럼 계속 인사하고, 택시들은 계속 타라고 빵빵거렸다.
미리 찾아둔 현지식 식당은 막상 가보니 없어졌는지 간판만 남아있었고, 결국 우리는 닭고기 요리를 파는 체인점인 난도스(Nando's)에 갔다. 그런데 직원의 영어 발음을 알아듣기가 조금 힘들어 몇 번이고 확인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됐는지, 계산하고 자리로 와 영수증을 다시 확인해보니 우리가 주문한 메뉴 2개 중 하나가 중복이 되어 메뉴가 총 3개가 주문되어있었다. 그래서 카드결제를 취소해달라 했더니 엄청나게 짜증을 내면서 카드 취소가 안되니 현금으로 환불해주겠다 했다. 그런데 환불받은 돈이 조금 이상해서 다시 한번 확인해달라 했더니, 메뉴판에 나오지도 않았던 음료 값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저 몰라서 물어본 것뿐인데, 그 직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옆 직원에게 뭐라 말하면서 웃기 시작했다. 분명 우리를 비웃었겠지만, 거기서 더 얘기해봐야 좋을 것도 없고 일단 그 직원의 영어 발음이 너무나 알아듣기 힘들어 어차피 대화가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포기했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었지만 도착하자마자 이러니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다.
동네에는 특별히 구경할 건 없어서, 점심식사 후 마트에서 물과 포도를 사들고 숙소에 돌아가기로 했다. 계속 긴장한 상태라 크로스백 끈을 손으로 계속 잡고 있었다. 그런데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반대편에서 오는 어떤 남자가 내 가방을 쓱 만지고 가는 것이었다. 가방을 낚아채려 한 것도 아니었고 잡아당기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만져보고 지나갔다. 무슨 의도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금 소름 끼쳤다.
숙소에 돌아와 친구는 내가 모로코에서 내내 스트레스받았다는 이야기를 이제야 이해하겠다고 말했다. 잠깐의 외출이었지만 자꾸 말 걸고 쫓아다녀서 신경 쓰였고 가방을 만진 남자랑 난도스 직원은 기분 나쁘게 하고. 혼자였다면 나오자마자 다시 들어갔을 것 같다고.
수영을 하려 했지만 이미 해가 지고 있어 추워져서 얼른 포기하고, 씻고 쉬었다. 그리고는 저녁은 간단하게 친구가 싸 온 컵라면에 햇반, 그리고 우리 엄마가 친구를 통해 보내준 김자반을 먹었다. 방 앞에는 밖에 앉아있을 수 있도록 의자와 작은 테이블이 놓여있었는데, 우리는 그곳에서 별을 보며 저녁을 먹었다. 라면도 이런 풍경을 보면서 먹으니 참 로맨틱했다. 첫날이고 피곤했지만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눈이 감길 때까지 그간 못했던 이야기를 나눴다.
# 사소한 메모 #
* 스스로 그 누구보다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행이 마냥 쉽지는 않다. 그래도 늘 기분을 상하게 한 사람들보다는 즐겁고 편안하게 해 준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기억하자.
*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