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03,104-보츠와나 오카방고 델타(Okavango Delta)
2017.05.15, 16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을 꼽으라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곳, 평화로운 곳, 조용한 곳을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이곳을 이야기할 것이다. 보츠와나의 오카방고 델타.
부시 베이비라는 다람쥐만 한 영장류를 본 마운 캠핑장에서, 우리는 다음날 아침 일찍 오카방고 델타로 출발했다.
옆으로 앉는 트럭에 올라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갔는데, 한번 크게 덜컹거리는 일이 있어 몸이 완전히 공중에 붕 떴다가 옆에 앉아있던 크리스(자넬의 남편) 무릎 위에 착석해버리는 일도 있었다. 그걸로 하루 종일 놀림감이 되기도.
트럭을 타고 달려오면, 이렇게 보트를 타는 곳이 나온다. 이걸 모코로(mokoro)라고 부르는데, 기다란 막대(pole)로 바닥을 밀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배 위에 서서 막대를 들고 미는 사람을 폴러(poler)라고 부른다.
모코로는 두 명씩 배에 올라타는 거였는데, 나는 가이드 윌과 함께 타게 되었다. 윌은 이곳에 올 때마다 연습했다며, 우리 폴러인 아니타와 내가 앉고 윌이 뒤에 서서 모코로를 저었다.
상상 이상으로 고요하고 평온한 곳이었다. 윌이 이곳에 오면서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고 했는데, 나 역시 그렇게 되었다.
폴(막대)로 물을 젓는 소리만 들리고,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적당히 시원했다. 지금도 가끔 평화로운 느낌이 그리울 때면 이 동영상을 켜서 본다.
오카방고 델타는 강에서 형성된 삼각주 습지대인데, 세계에서 가장 큰 내륙 삼각주로 2014년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고 한다.
모코로를 타고 오늘의 캠핑장으로 가는 길에 예쁜 연꽃도 보고 개구리도 보았다.
1시간~1시간 반쯤 가니 캠핑장에 도착했다. 내리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어서 내렸다. 오늘 텐트는 우리가 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미리 쳐진 텐트에 들어가는 것이어서 편했다. 심지어 각 텐트 뒤로는 푸세식 화장실을 마련해놔 나름대로 개인 화장실을 쓸 수 있었다.
점심식사 후 모코로를 저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남들이 하는 걸 볼 때는 쓱쓱 부드럽게 잘 나가서 쉬워 보였는데,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팔과 어깨에 상당한 힘이 들어가는 작업이었다. 해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되었으니까.
늦은 오후가 되었을 때, 우리는 다시 모코로를 타고 동물들을 보러 갔다. 그동안 해온 것이 게임 드라이브였다면, 이날은 게임 워크였다.
영양들이 뛰어다니는 모습도 보고,
얼룩말들의 뒷모습도 보았다.
이렇게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걸어가며.
차를 타고 달릴 때만큼 동물들에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었지만, 산책하며 동물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새롭고 즐거웠다.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했다. 사자나 표범 등 위험한 동물들이 나타날 수 있으니 어두워지기 전에 캠핑장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모코로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저 멀리 하마 한 마리도 보였다. 너무 멀어서 사진으로는 잘 안 찍히고 쌍안경으로 볼 수 있었는데, 난생처음 보는 하마가 신기했다.
밤이 되어서는 캠프파이어를 해놓고 다 같이 둘러앉았다. 폴러들이 다 함께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춰서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다. 우리는 실컷 시끄럽게 놀다가 따뜻한 차를 마시고 마시멜로를 구워 먹으며 별이 쏟아지는 밤을 즐겼다.
아프리카에서 별이 무수히 박힌 밤하늘을 여러 번 보았지만, 이날 밤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이곳의 텐트와 나무들, 그리고 고요함 속에 가끔씩 들려오던 동물 울음소리. 무엇보다도 순수하고 친절했던 우리의 폴러들.
아침이 되고, 저 멀리 안개가 깔린 것이 보였다.
아침에는 그냥 우리가 있는 섬 주변을 산책하러 나갔다. 동물을 보러 간다기보다는 그냥 일출을 보는 산책이었다.
저 멀리 떠오르는 해를 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오카방고 델타를 떠나야 할 시간이 왔다.
마지막으로 모코로를 타는 시간. 너무나 아쉬웠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윌이 열심히 젓다가 물에 빠져버려서 마지막에 큰 웃음을 선사해주었다. 다행히 배는 뒤집히지 않아서 나와 아니타, 그리고 우리의 짐들은 무사했다.
모코로에서 내려 우리는 폴러들과 인사를 하고, 마을로 갔다. 우리는 미리 준비해 간 공, 줄넘기, 스케치북, 노트 등등의 선물들을 폴러들과 마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길을 걸어가다 갑자기 누가 손을 잡아서 보니 이 귀염둥이 꼬마 아가씨가 내 손을 잡고는 놓아주지를 않았다. 도넛을 주고 물도 주고 콜라도 줬지만, 한 손은 계속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정말 사랑스러웠다. 다들 카메라를 들고 나와 캐런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절대 놓지 않을 것처럼 내 손을 잡고 있던 캐런은 우리가 비스킷을 한 상자씩 나눠주기 시작하자 두 손으로 비스킷을 들고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그것마저 귀여웠다. 이후 나는 어린아이를 볼 때마다 꼬마 캐런을 떠올렸다.
폴러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 명이 이 일은 비정기적이라 안정적이지 않다면서 자신은 사파리 가이드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런데 가이드가 되기는 굉장히 어려워서 몇 번을 지원했는데도 떨어졌다고 했다. 동생들도 많고 결혼도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아무것도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하니 안타까웠다.
마운 캠핑장으로 돌아와 수영장에서 맥주를 마시며 수영을 했다. 친구들과 함께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지금까지 느낀 것들을 서로 공유했다. 아프리카에서 어떤 어려움들을 보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아프리카를 어떤 마음으로 여행할 것인지.
# 사소한 메모 #
* 'J'entends ta voix dans tous les bruits du monde.(세상의 모든 소음 속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린다.)' - Paul Eluard
* ♬ Kelly Clarkson - Standing in front of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