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18~119 - 탄자니아 이링가 & 다르에스살람
2017.05.30~31
이틀 연속 어마어마한 이동이었다. 말라위에서 탄자니아로 국경을 넘어가야 했던 첫날은 오전 4시에 일어나 5시에 출발해, 탄자니아 이링가(Iringa)에 오후 6시 반에 도착했다. 1시간의 시차를 감안하면 12시간 반 정도 걸린 것이다. 둘째 날에도 마찬가지로 4시에 기상하여 5시에 출발했는데,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 시내의 교통체증으로 인해 마찬가지로 저녁 6시 반에 도착했다. 이날은 13시간 반.
늦게 도착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로 괴로운데, 하나는 어둑어둑한 가운데 텐트를 치고 짐 정리를 해야 한다는 것과, 저녁식사가 늦어져 샤워할 시간도 늦어지고, 그러면 줄이 길어지니(우리만 사용하는 게 아니니까) 최악의 경우 씻지 못한다는 것이다. 씻는다 해도 머리를 제대로 말리고 잘 수가 없으니 다음날 찝찝해지는 건 마찬가지. 나와 이모진은 결국 둘째 날에는 방으로 업그레이드를 했다. 둘이서 14불(미국 달러)만 더 지불하면 방을 쓸 수 있었다. 다음날 잔지바르로 2박 3일 동안 떠나게 되어 작은 배낭을 챙겨야 하는데, 그걸 어두운 텐트 안에서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날에 업그레이드를 했는데, 우리는 첫날은 너무 비싸고 방도 없어서 아꼈다가 둘째 날 했다. 잘한 것 같다.
다시 첫날로 돌아와서. 나는 트럭에서 매우 잘 자는 편이었다. 오죽하면 친구들이 내가 자려고 자세를 잡을 때마다 그걸 알아볼 정도였다. 자기들이 같은 자세를 하면 불편한데, 내가 하는 걸 보면 굉장히 편해 보인다 했다. 내가 그들보다 키가 작기 때문일 것이다.
트럭의 좌석 구조는, 일반 버스처럼 양쪽으로 2명씩, 한 줄에 총 4명이 앉는 식으로 하여 맨 뒤는 5석이 붙어있고, 그 5석 중 2.5석은 돌돌 만 매트리스를 바닥부터 쌓아 올려 사실상 쓸 수 없었다. 그리고 탑승문을 기준으로 앞쪽에는 옆으로 앉아 가는 좌석이 가운데 테이블을 두고 양쪽으로 4석씩, 총 8석이 있었다. 요하네스버그에서 빅토리아 폭포까지는 일반 자리로는 부족해 맨 앞 옆으로 가는 자리들까지도 써야 해서 서로 번갈아가면서 앉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인원이 많지 않아 다들 일반적인 자리를 하나씩 차지해 앉았고, 맨 앞 옆으로 앉아가는 자리는 공용석으로 두고 번갈아가면서 침대 대용으로 사용했다. 대부분 짝이 있으니 둘이서 계속 나란히 10시간도 넘는 시간 동안 앉아 있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4명 자리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쓰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2자리를 최대한 활용했다. 키가 큰 편이 아니니 첫 자세만 잘 잡으면 꽤나 편하게 오랫동안 잘 수 있었는데, 나보다 키가 컸던 친구들은 그게 신기해 보였을 것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차를 타고 가야 할 때에는 점심식사를 따로 하지 않고, 오전 식사 중에 샌드위치나 랩 등을 싸고 과일과 음료수 등을 함께 챙겨서 가다가 배가 고플 때 각자 먹는다. 이날은 마지막 남은 말라위 주스를 받았는데, 파인애플 맛이었지만 들어간 재료에는 파인애플 관련된 것은 없고 뜬금없는 오렌지 농축액만 적혀 있었다. 보니까 파인애플, 망고 등등 다른 맛에 모두 오렌지 농축액이 들어갔다고 적혀있었다. 아마 그냥 똑같이 다 찍어낸 것이겠지. 역시 TIA(This is Africa)였다.
주스는 정말 큰 맘먹고 마셔야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물도 잘 마시지 않았다. 12~13시간 동안 2~3시간에 한 번씩 10분씩 볼일을 보기 위해 멈추는데, 화장실도 없고 그냥 수풀 속에 자리를 잡고 일을 보아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한 번이라도 덜 가고 싶어서 물을 최대한 적게 마셨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물을 워낙 안 마시니 오히려 조금만 마셔도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결국 매번 쉴 때마다 우리는 모두 내릴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멈추는 이유는 화장실 때문이라 인적이 드문 곳에 서게 되지만, 아주 가끔은 마을 시내 쪽에 잠시 차를 대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아이들이 몰려든다. 남아프리카에서는 보지 못했던, 하지만 동아프리카에서는 아주 흔한 광경이다. 무언가를 팔려는 아이들도 있고, 그냥 손을 내미는 아이들도 있다. 뭐라도 주고 싶지만 그러면 안 된다고 한다. 이 아이들 모두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이고 부모들은 학교에 있는 줄로만 알고 있는데, 학교에 가는 대신 이렇게 돈을 벌고자 나온다고 했다. 당장 궁핍하게 사는 아이들에게는 학교에서 공부를 해 직업을 얻는 것이 아직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나 보다. 가슴 아프지만 먼 미래를 위해서 우리는 그냥 웃으며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말라위였는지 탄자니아였는지, 어디선가 보았던 큰 광고판이 생각난다. 'Children are meant to learn not to earn.(아이들은 버는 게 아니라 배워야 하는 존재이다.)'
그런 풍경들을 보다 보면 사진을 찍는 것에 대해 한번쯤 고민하게 된다. 아이들의 얼굴이야 허락 없이는 찍지 않으려고 하지만, 이들이 살고 있는 낡은 집들, 허름하게 세워둔 임시 가게들을 보고 있으면 이걸 찍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유럽의 전원 마을에 가서 예쁜 집들을 사진으로 남겨두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 오래된 벼룩시장에 가서 상인들의 모습을 담는 것도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하지만 왜 유독 아프리카에서는 같은 걸 찍어도 마음이 편치 않았을까.
'White guilt(백인의 죄의식)'이라는 것이 있다. 백인들이 과거에 아프리카 등 현재 개발도상국으로 인식되는 국가들에서 많은 것들을 빼앗아간 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기근이나 인종차별 등 현재 다른 인종들에게서 생기는 문제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백인도 아니고 오히려 피해를 많이 본 대한민국에서 자랐으니 이러한 백인의 죄의식에 해당되지는 않지만, 은연중에 내가 이들보다 잘 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어쩌면 중간중간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들이 사는 풍경을 사진으로 담을 때마다 작은 죄책감들이 생겨난 것 같다. 그저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12시간 반 동안의 어마어마한 이동 후 도착한 이링가(Iringa)의 캠핑장. 와이파이가 시간제한이 있어 일정 시간이 지나자 다들 서로를 살피기 시작했다. 미리 받은 정보에 의하면, 이곳 아마룰라(Amarula) 핫초코가 그렇게 맛있다고 했다.
아마룰라(Amarula)는 크루거에서 처음 맛보았던 아프리카 술로, 약간 커피 향이 나는 베일리스(Bailey's)와 비슷한 맛이 난다. 이것과 코코아를 섞어 아마룰라 핫초코를 파는데, 정말 정말 맛있었다. 나중에 한국 가면 꼭 베일리스로 도전해보겠노라 다짐했다. 아마룰라 자체는 도수가 꽤 높은데 달착지근하게 만들어놓으니 적당히 달면서 적당히 알코올이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13시간 반 이동을 한 날은 그 전날보다 훨씬 많이 잤던 것 같다. 이틀 연속 새벽 4시 기상은 너무나 괴로웠다. 가는 길에 바오밥 나무를 봐서 사진을 찍었지만, 그마저도 잠결에 친구가 저건 꼭 찍어야 한대서 떠밀려서 찍고 왔다.
가는 길에 임팔라들과 얼룩말들, 기린들과 오릭스 등을 보았다. 아마 주변에 국립공원 같은 것이 있으리라. 이렇게 트럭을 타고 길을 달리면서 동물들을 본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많은 동물들을 본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과연 세렝게티가 있는 탄자니아다웠다.
이날은 위에 적었듯이 룸으로 업그레이드를 했다. 방 자체는 천장도 살짝 뚫려있고 해서 허술해 보였지만 둘이서 14불(미국 달러)이라니 그 정도면 가격 대비 훌륭했다. 일단 좁은 텐트가 아닌 침대가 있는 곳에서 편하게 잔지바르 짐을 쌀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밤에는 바다의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어 나름 낭만적이기도 했다. 하루는 엄청나게 지쳤다가도 다음날에는 엄청나게 로맨틱할 수 있는 것이 아프리카 여행의 매력이다.
# 사소한 메모 #
*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는데, 아침에는 빗소리로 깼다.
* 이곳은 겨울이 되어갔고, 한국은 여름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