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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Nov 27. 2017

마지막 텐트를 걷고

Day 129, 130 - 케냐 나이로비(Nairobi)

2017.06.10, 11


2박 3일 응고롱고로&세렝게티 투어를 마치고 아루샤에 도작하자마자 우리는 샤워실로 달려가 이틀간 뒤집어쓴 먼지를 깨끗하게 흘려보냈고, 개운한 기분으로 나름대로 즐거운 마지막 밤을 보냈다. 진짜 마지막 날이었던 그다음 날에는 케냐로 이동했다. 아침에 마지막으로 텐트를 걷자니 시원섭섭했다. 사실 섭섭한 마음보다는 시원한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이날 밤부터는 푹신한 침대에서 잘 수 있고 아침에는 내가 눈 뜨는 시간이 곧 기상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 좋았다.

친구가 찍어준 마지막 텐트를 걷는 모습: 폼&아만다, 나&이모진, 자넬&크리스

케냐에서 도착비자를 받는 것은 조금 번거롭기도 했지만, 이곳에 있는 양국의 출입국사무소는 그동안 거쳐 왔던 아프리카의 출입국사무소들과는 달리 널찍하고 깔끔해서 놀랐다. 역시 케냐는 다른 나라들보다 발전된 곳이구나 라는 생각을 할 무렵, 그것이 또 좋지만은 않다는 걸 금방 깨달았다. 너무도 심각한 교통체증 때문이었다. 원래는 최종 목적지인 나이로비 내 캠핑장에 오후 2시쯤 도착할 예정이었는데, 시내 교통체증 때문에 3시가 훌쩍 넘어서 도착했다. 나이로비에 출장을 다녀오셨던 회사 과장님께서 나이로비 교통체증에 대해 실감 나게 설명해주신 기억이 있지만, 그럼에도 상상 이상이었다. 평일 낮이었는데 우리나라 명절 대이동 같았다.


힘들게 시내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쇼핑몰에 들렀다. 지금까지 내가 한 투어가 빅토리아 폭포를 기준으로 2개의 투어가 이어졌던 것처럼, 나이로비 역시 모두에게 종착지는 아니었다. 나이로비에서 출발해 우간다까지 가는, 이른바 '고릴라 투어'가 또 있어 아만다와 이모진의 경우 그 투어에까지 참여했다. 그 친구들뿐 아니라 나이로비에서 며칠 머무는 사람들을 위해 마트와 환전소와 KFC가 있는 몰에 들른 것이다. KFC가 왜 중요하냐 하면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전소에 가서 케냐 화폐를 획득한 후 KFC로 달려가 취향껏 음식을 주문해먹었다. 나는 트위스터와 감자튀김, 콜라를 먹었는데 내가 여태까지 먹었던 KFC 식사 중에 가장 맛있었다. 보츠와나를 마지막으로 KFC를 포함한 그 어떤 패스트푸드점도 보지 못한 우리는 엄청나게 행복해하며 개운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세렝게티에서 찍은 단체사진

쇼핑몰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우리는 투어 종료 장소인 나이로비의 한 캠핑장으로 향했다. 다음날 이곳에서 곧바로 새로운 투어가 이어지는 아만다와 이모진을 제외하고는 이날 저녁에 바로 떠나는 사람, 이곳에 며칠 머무는 사람(물론 캠핑은 끝났고 모두 방으로!), 그리고 나처럼 다른 숙소로 가는 사람 등으로 나뉘었다.


내가 숙소를 따로 잡은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는 한식이 먹고 싶었다는 것, 둘째는 새벽에 공항으로 데려다줄 차편이 필요했다는 것. 나는 나이로비에서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는데, 가장 저렴한 비행 편이 새벽 4시 반 출발이었다. 캠핑장에서 머물렀다면 리셉션에서 택시를 불러주긴 했겠지만, 나미비아에서 공항에 갈 때 픽업 차량으로 애를 먹었던 나는 편히 믿고 갈 수 있는 교통편이 필요했다.


아쉽지만 캠핑장에서 친구들 한 명 한 명과 다 껴안고 인사를 했다. 특히 친하게 지냈던 자넬과 크리스, 폼, 아만다, 이모진과 안을 때 눈가가 촉촉해졌고, 엄마처럼 할머니처럼 챙겨주시던 캐롤과 안을 때는 정말 울 뻔했다. 캐롤은 예전에 홈스테이로 일본인 학생과 1년 정도 살았다는데, 그래서인지 나를 더 잘 챙겨주셨던 것 같다. 다 서양인들이라 혹시 소외감을 느끼지는 않는지, 대화할 때 어려운 점은 없는지 항상 나를 걱정하고 배려해주셨다. 물론 와이파이가 될 때마다 내가 부모님께 연락을 잘 드리고 있는지 확인하는 잔소리는 덤이었다.

나이로비 한인 호텔

친구들과 먼, 혹은 멀지 않은 미래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진 후, 나는 픽업 온 차를 타고 한인 호텔에 도착했다. 이날 저녁에는 주인 부부가 안 계셔서 회사 파견으로 장기 투숙 중이신 분이 대신 방을 안내해주셨다. 그분 덕분에 라면도 얻어먹었다.


안 되는 인터넷으로 예약한 거라 새벽에 공항에 데려다줄 수 있다는 말만으로 방도 제대로 안 보고 예약한 것이었는데, 왜 한인 민박이 아니라 한인 호텔이라고 되어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예쁜 정원부터 시작해 푹신한 침대와 깨끗한 화장실이 딸린 방에 들어가니 천국이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인터넷도 잘 되고 빨래도 무료. 캠핑장에서 샤워할 때에는 아무리 열심히 씻고 나와도 발이 금방 더러워져 완벽하게 깨끗한 기분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는데, 이곳에서 씻으니까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상쾌한 기분으로 아주 푹 잘 잘 수 있었다.

빨리 먹고 싶어서 흔들린 사진

다음 날 아침에는 떡만둣국을 해주셨는데 오랜만에 먹는 한상차림에 너무나 감동했다. 식사 후 나는 방에서 계속 쉬면서 틈틈이 짐 정리를 했다. 다음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아쉬웠다. 나이로비 시내를 조금이라도 구경해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주인분이 절대 혼자 외출하지 말라고 해서 그냥 숙소에서만 쉬었다. 점심에는 호텔에서 얻은 라면을 끓여먹었고, 저녁에는 오징어불고기와 된장찌개를 차려주셔서 또 한 번 배불리 맛있는 식사를 했다.


새벽 1시에 이곳 운전기사분이 나를 공항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는데, 주인까지 일어나 배웅해주셔서 감사했다. 낮에는 모든 도로에서 정체를 경험해야 했는데, 새벽이라 길이 뻥 뚫려있었다. 공항 가는 길에는 나미비아에서처럼 중간에 검색대가 있었다. 물론 나미비아보다는 훨씬 체계적이었다. 차량 내부를 한번 검사하고, 사람들은 내려서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는 식이었다.


나이로비 공항은 생각보다 상당히 컸다. 터미널이 4개 있어서 기사가 터미널을 확실히 해주기 위해 계속 내려서 공항 직원한테 내가 타는 항공사가 어느 터미널에 있는지 확인해주었고, 내가 공항에 들어가는 것까지도 보고 갔다. 너무나 친절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들어가서 보니 내가 타려는 항공사가 없었다. 공항 직원이 잘못 알려준 것인지, 잘못 내려다 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15여 분 걸어가야 했다. 그래도 공항에 워낙 일찍 도착하기도 했고 새벽이라 공항에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정말 순식간에 보안 검색과 출국 심사를 마쳤다.


나이로비를 제대로 못 보고 가서 아쉽기는 하지만, 그동안 충분히 알차게 여행해서 후회는 없다. 출발 전 걱정만 가득했던 내가 즐겁게 캠핑을 마쳤고, 모로코에서 기분이 상해 한국 가고 싶었던 내가 무사히 아프리카 여행을 끝마쳤으니.


# 사소한 메모 #

* 남미에서 엄마와 커플로 신었던 얇은 운동화를 호텔에 두고 왔다. 주인 분께서 신발이 필요한 직원에게 주시겠다고 했다. 내가 보기엔 많이 낡고 더러워져서 버리려던 찰나였는데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기분이 묘했다.
*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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