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27,128 - 탄자니아 세렝게티 (Serengeti) 국립공원
2017.06.08, 09
응고롱고로 분화구를 떠나, 우리는 세렝게티로 향했다. 아프리카 여행을 처음 꿈꾸게 된 계기, 어느 나라에 있는 건지도 모르면서 상상하던 그곳.
응고롱고로에서 세렝게티까지는 약 2시간 정도가 걸렸다. 창문을 다 닫았는데도 어디서 들어온 것인지 도착할 때쯤 보니 모두들 옷과 머리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모래먼지 때문에 창밖에 아무것도 안 보여서 다들 숙면을 취했는데, 세렝게티 입구에서는 신나서 너 나 할 것 없이 기념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공원 입구에서는 입장 허가를 받기 위해 꽤 오래 기다려야 했다. 가이드들이 약 1~2시간가량 줄을 서서 허가를 위한 절차를 해결해주는 동안, 우리는 주차장 근처에 있던 코끼리들을 구경했다. 세렝게티는 통상 24시간 머물 수 있고, 더 오래 있으려면 추가 비용을 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조금 걸어 올라 주변 풍경을 볼 수 있는 곳도 있었는데, 중턱에 코끼리 한 마리가 계단을 막고 서 있어서 코끼리가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코끼리를 가장 가까이, 그것도 무방비 상태로 마주한 순간이었다.
코끼리가 유유히 사라진 후, 우리는 전망을 보기 위해 걸어 올라갔다. '세렝게티'는 마사이 부족 말로 '끝없는 초원'을 뜻한다. 360도, 초록빛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드디어 입장 허가를 받고, 오후 3시가 넘어 들어갈 수 있었다. 출발하자마자 암사자 한 마리를 보았다. 스타트가 좋았다.
하지만 시간은 이미 오후 4시여서 오늘 밤을 보낼 캠핑장 방향으로만 달려야 했다. 대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표범을 보기 위해 우리는 눈에 불을 켜고 집중했다. 표범은 낮에는 보통 나무 위에서 쉬고, 어두워지면 사냥을 한다고 한다. 우리는 오른쪽과 왼쪽, 풀밭과 나무속 등으로 나누어 역할분담도 해서 나는 오른쪽 풀밭을 집중적으로 보았다.
하지만 이날 아무리 보아도 표범은 없었다. 오릭스와 얼룩말 등등을 본 뒤, 밤을 보낼 캠핑장으로 향했다.
캠핑장에 도착할 때쯤 비가 오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2박 3일 용으로 가볍게 챙겨 온 짐에는 우산도 방수재킷도 없었다. 게다가 샤워실도 마땅치 않은 캠핑장 시설. 찝찝하게 밤을 보내야 했지만 세렝게티에서의 하룻밤은 그 자체로 낭만적이었다.
밤새 빗소리와 동물들 울음소리, 특히 원숭이 소리들 속에서 잤다. 다음날 눈을 뜨니 벌써 하늘이 분홍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양치질을 하러 화장실로 가던 중, 운 좋게 얼룩말이 이동하는 모습도 보게 되었다. 상당히 많은 숫자의 얼룩말들이 대이동을 하고 있었다. 화장실에 갔다가 나올 때까지도 얼룩말들이 계속 이동하고 있었다. 일부러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날이 밝기 전에 이동하는 듯했다. 지금 시즌에는 케냐 마사이 마라(Maasai Mara)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24시간 중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서둘러 다시 차에 올라탔다. 드라이브를 시작하자마자 사자 가족을 발견했다.
그동안 사자를 여러 마리 보았어도 새끼 사자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비록 내 카메라의 줌에는 한계가 있어 선명한 사진을 얻을 수는 없었지만, 꼬물꼬물 움직이는 조그마한 새끼의 형체가 사랑스러웠다. 물론 새끼라고 해도 야생에서 맞닥뜨리게 되면 나는 죽겠지만.
의외로 기린은 많이 볼 수 없었는데, 달리다 보니 서너 마리가 우리를 쳐다보며 지나갔다.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과 눈을 마주치면 즐겁기는 해도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지나가는데, 이곳에서 동물들과 눈을 마주칠 때면 '동물이 나를 봐준' 기분이 든다. 같은 크기에 같은 위협을 줄 수 있는 동물이라도, 우리 안에 갇힌 동물들을 무방비 상태로 걸어 다니며 볼 때와 야생에서 자유로이 살고 있는 동물들을 차 안에 숨어 살금살금 볼 때는 확연하게 다른 것이다.
열기구를 타고 세렝게티 초원을 내려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파리 트럭도, 열기구도, 동물들의 생태를 최대한 방해하지 않는 방법이다. 인간의 입맛대로 인간이 원하는 위치와 공간 속에 동물을 가두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인가. 3월에도 폭설이 내리는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사자들의 권리는 누가 보호해주는가. 누구나 아프리카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동물원이 필요한 것이라면, 근본적으로 세계 반대편에 사는 동물들을 모두가 한 번쯤은 두 눈으로 꼭 보아야 한다는 건 누가 정해놓은 것인가. 게임 드라이브를 할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네덜란드에는 아프리카의 국립공원처럼 동물들을 풀어놓고 이렇게 사파리 드라이브 형태로 운영되는 동물원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굳이 동물원이 있어야 한다면 앞으로는 그런 방향으로 만들어져야 할 것 같다. 동물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사람을 위해서도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두어놓은 동물들만 보고 자라는 아이들은 동물을 진정으로 존중할 수 없을 테니까.
사파리 드라이브를 하다 보면 동물들에 대한 경외심이 생겨난다. 관심이 없었던 동물들의 습성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잔인한 생태계에 대해 새삼 느끼게 되고,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동물들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위 사진은 딕딕(Dik dik)으로 아주 조그마한 영양 종류이다. 크기는 조금 큰 개 정도였던 것 같은데, 아기 사슴 같이 생겼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다니던 표범도 동물원에서는 입장료만 내면 볼 수 있겠지만 야생에서는 쉽게 마주치지 못한다. 5주간의 캠핑 투어 동안 7개의 국립공원에 가서 10번의 드라이브/크루즈/워크를 하면서 본 것이라고는 표범 어미와 새끼의 발자국을 한번 발견한 것뿐이었다.
우리의 마음은 이토록 열심히 표범을 외치는데, 계속 보이는 건 사자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자가 질린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아쉬운 마음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여러 마리의 사자들을 여러 번 볼 수 있었던 것 또한 대단한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언제 어디서 보았던 사자가 가장 잘생겼었는지에 대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경지에까지 올랐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위 사진 속 수사자와, 남아공 크루거 국립공원에서 첫날 보았던 사자가 가장 잘생겼다고 생각한다.
사파리 트럭이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 경우는 사자 등의 고양잇과, 그다음으로는 코끼리나 기린 또는 하마 정도, 그리고 나머지 동물들에 대해서는 한두 대 서 있을까 말까 하다. 위 사진 속 사자는 스트레스를 조금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거의 7~8대 정도가 서 있었으니.
시간은 점점 흘러갔고, 우리는 표범이 있을 만한 나무란 나무는 모두 열정적으로 살펴보았다. 심지어 특이하게도 새들에만 관심이 있던 이모진까지도 한마음이 되어 표범을 찾았지만 모두 허탕이었다.
포기하기 직전에 이르렀을 때, 한 나무에 트럭이 7~8대가 둘러싼 풍경을 보았다. 처음에는 나무 아래에 사자가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사람들 모두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표범 발견! 동물들이 놀라지 않도록 조용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고 우리는 그동안 훌륭하게 잘 지켜왔으나, 이 순간에는 여러 명이 소리 내어 감탄하는 바람에 가이드가 우리에게 주의를 주어야 했다. 그만큼 믿을 수 없이 신났던 것이다. 사진의 가운데 쪽, 오른쪽 가지 위에 표범이 꼬리를 늘어뜨리고 누워있다. 내 카메라로는 이것이 한계였다.
그래서 친구 아만다가 좋은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다시 내 카메라로 찍어두었다. 내가 두 눈으로 보았던 표범을 제대로 기억하고 싶어서.
표범을 보고 나니까 모두들 행복해했다. 숙원이 풀린 것이다. 우리는 이제 미련 없이 아프리카를 떠나도 되겠다며 즐거워했다. 빅 5 중에서 유일하게 보지 못했던 표범을 드디어 보았으니까.
그러면서 풍경 구경에 집중할 무렵, 누군가가 농담처럼 한 마디 던졌다. 이대로 치타까지 보게 되면 더 좋겠다면서. 최고 시속 110km 의 치타를 야생에서 보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주로 풀숲 사이에 있어 더욱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우리는 웃으면서 표범 보았으니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못 보아도 괜찮다고 했다.
기쁜 마음으로 국립공원 입구로 돌아와, 점심식사를 했다. 우리는 여전히 표범을 본 흥분에서 벗어나지 못해 들뜬 목소리로 수다를 떨었다. 화장실 문 앞에서는 몸에 세 가지 색이 있는 예쁜 도마뱀을 보기도 했다.
식사 후 다시 차에 올라 공원을 나섰다. 전날 새벽 안개로 인해 응고롱고로의 전망을 보지 못했는데, 첫날 출발했던 아루샤(Arusha)의 캠핑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응고롱고로의 전망대를 다시 들르기로 했다. 전날 오후 주차장에서 우리를 반겨주었던 코끼리가 이번에는 배웅을 해주었다. 코끼리 사진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카메라를 가방 속에 넣었고, 각자 자리에서 취침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길 한복판에 멈춰 선 차. 가이드에게 왜 그러냐고 묻자, 가이드는 대답도 없이 쌍안경을 들어 한참 저 멀리 있는 작은 나무를 보았다. 그리고는 무미건조하게, "저 나무 밑에 치타가 두 마리 있어요."
치타라니. 표범을 본 것만으로도 꿈같은데 치타라니. 그것도 새끼 두 마리가 나무 아래에 얌전히 앉아있다니. 늘 조용히 평정심을 유지하던 70대의 캐롤도 소녀처럼 꺄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감히 보고 싶은 동물 리스트에도 올리지 못했던 동물까지도 본 것이다.
치타 역시 내 카메라로는 한계가 있어 또다시 아만다가 찍은 사진을 찍었다. 지금 다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표범과 치타를 같은 날, 그것도 사파리 드라이브가 끝날 무렵 표범을, 국립공원 게이트를 벗어나면서 치타를 보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들뜬 마음을 안고 다시 응고롱고로로 되돌아와 저 멀리 점을 찍은 듯한 동물 무리도 보았고, 첫날에는 보지 못했던 작은 마을도 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날 안개로 뒤덮여 볼 수 없었던 응고롱고로의 전경을 보았다. 차로 달리면서도 느꼈지만, 이렇게 위에서 내려다보니 그 엄청난 규모가 더욱 와 닿았다. 이곳에서까지 신나게 사진 촬영을 마친 우리는, 차에 탑승하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이제 다음날은 트럭킹 투어 마지막 날. 나이로비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절반 정도가 흩어질 예정이어서, 이날 밤에 화려한 마지막 밤을 보내기로 했다. 화려한 밤을 보내겠다 해봤자, 캠핑장에 있는 바에 가서 술 마시는 게 전부였지만.
이곳에는 두 권의 재미난 책이 있다. 한 권은 'If I phone my mum now, wil she be home? (지금 엄마한테 전화하면 엄마가 집에 있을까요?)', 다른 한 권은 'How many animals in the Big Five? (빅 5 에는 동물이 몇 가지가 있죠?)'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책의 질문은 시차 관련해서 누군가가 가이드에게 물어보았다는 질문이다. 두 책 모두 멍청한 질문들을 모아둔 것으로, 이곳 캠핑장에 오는 관광객들이 여행 중에 들은 멍청한 질문들을 직접 펜으로 적어 넣어 채워지고 있었다.
정말로 멍청한 질문(비가 오면 동물들은 밖으로 안 나오나요?)도 있고, 무례한 질문(아시아인들은 찢어진 눈으로 잘 보이나요?)도 있고, 웃긴 말실수도 있다. 나도 투어 중에 말실수한 것이 하나 있는데 아만다가 신나서 적어놓았다. 내 본명을 적지 않았으니 걱정 말라면서.
우리는 맥주도 마시고, 이링가에서 마셨던 아마룰라 핫초코를 떠올리며 주인 분께 비슷하게 부탁해 마시기도 하고, 정체 모를 칵테일도 마셨다. 이럴 때 빠질 수 없는 술 게임까지. 다음날 가이드는 우리에게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 사소한 메모 #
* 동물을 보는 운은 타고 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 진정으로 살아있는 동물을 보기 위해서는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 비로소 빅 5 (사자, 코끼리, 코뿔소, 버펄로, 표범)와 어글리 5 (흑멧돼지, 하이에나, 대머리독수리, 대머리황새, 윌더비스트) 모두를 보는 쾌거 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