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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알가르베 해안 산책

Day 133, 134 - 포르투갈 라구스/라고스(Lagos)

by 바다의별

2017.06.14, 15


아프리카에 있던 나는 캠핑의 습관이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었는지, 괘씸하게도 아침 9시 표를 끊어놓았다. 전날 신트라에 다녀오느라 고된 하루를 보냈는데, 짐 정리를 한 후 늦게 잔 탓인지 심지어 늦잠을 자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큰 배낭은 리스본에 두고 가기로 한 것이어서, 나는 작은 배낭만을 메고 힘껏 달렸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표시대로 나왔는데 버스 터미널을 찾지 못해 결국 3명에게 물어보았다. 그래도 다행히 버스는 에어컨도 빵빵하고 와이파이도 잘 터져서 편하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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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도착한 라구스(Lagos)! 포르투갈 남부의 알가르베(Algarve) 해안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사실 이곳의 존재는 아프리카에서 만난 친구 아만다 덕분에 알게 되었다. 아만다가 참고하라고 보여준 단 두 장의 사진으로 나는 고민도 없이 이곳에 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DSC02473001.JPG 바타타 해변

해안 절경을 보기 위해 온 것이기는 하지만, 이날은 숙소에 짐을 풀고 우선 동네 구경을 먼저 하기로 했다.

DSC02482001.JPG 반데이라 요새

마을 중심가로 걸어가는 길, 바타타 해변(Praia da Batata, Batata Beach)과 반데이라 요새(Forte da Ponta da Bandeira, Bandeira Fort)를 지나갔다. 바타타 해변을 보면서 알가르베 해안을 잠시 맛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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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굉장히 작아서 사실 구경할 거리도 많지 않았는데, 아기자기해서 걸어 다니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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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이 늦어져서 배가 고픈 나머지 나는 샹그리아 한 잔을 시켜놓고 치킨 윙을 한 접시 비운 뒤, 해물 리소토까지 먹었다. 스페인의 달달한 샹그리아를 떠올리며 주문한 것이었는데, 포르투갈의 샹그리아는 주문을 받고 나서 포트 와인(포르투갈 와인, 대개 일반적인 와인보다 알코올 도수가 높다)에 과일 등의 재료를 넣어 만들어주는 것이라 깊은 풍미가 없었다. 이곳만 그런가 싶어서 나중에 다른 곳에서도 두 번 더 주문해보았지만 결국 실패했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은 언제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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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하얀 건물들이 굉장히 깨끗하게 느껴졌고 덩달아 더위도 덜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았다. 리스본이나 신트라만큼 거리에 관광객이 많지 않았고 그중 동양인은 더더욱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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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면서 한국인을 만나면 무척이나 반가우면서도, 반대로 한국인이 전혀 없는 동네에 가면 나만 아는 여행지에 온 것 같아 묘한 쾌감을 느낄 때가 있다. 특히 한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인이나 일본인도 잘 마주치지 않는 곳에 있을 때면 때로는 외로우면서도 때로는 오히려 편안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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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구스 시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노예시장 박물관(Slave Market Museum, Antigo Mercado de Escravos)으로, 옛 노예시장이었던 곳을 박물관으로 개조한 곳이다. 라구스는 유럽에 처음으로 노예를 들여오기 시작한 도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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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2511001.JPG '노예의 길(Slave Route)' 위에 있는 포르투갈어 사용지역들

박물관 자체는 볼거리가 많지 않았지만, 이렇게 자신들의 잘못된 과거를 전시해두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어난 끔찍한 일들에 대해 우리는 아직도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했는데, 이들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다 못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전시해두고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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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나는 본격적으로 해변을 구경하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가장 먼저 도나 아나 해변(Praia Dona Ana)의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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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멋진 해변을 보자마자 바닷물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나는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될 소중한 카메라를 들고 있었으므로 그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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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해안을 따라가는 산책이 끝나면 숙소에 가서 짐을 두고 반드시 이곳에 다시 와서 수영을 하겠노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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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수영을 하고 싶었으므로 나는 서둘러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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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숨어있는 해변에서 하루 종일 노는 것도 너무나 행복해 보였지만, 이곳을 다시 찾아올 자신도 걸어내려갔다 다시 올라올 용기도 내게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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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더워서 걷기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대부분 평지라 괜찮았다. 그리고 5분에 한 번씩 멋진 절경이 펼쳐졌으니 힘든 것도 모르고 걸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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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렇게 바닥이 훤히 보이는 바다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옥색부터 짙은 푸른색까지, 정말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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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가르베 해안은 라구스뿐 아니라 포르티망(Portimao), 파로(Faro) 등을 거쳐 꽤 길게 이어지는 해안선인데, 내가 라구스에 오기로 결정한 건 바로 이곳, 피에다데의 곶(Ponta da Piedade)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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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야 이 멋진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있다. 물론 나중에 올라오는 것이 더 두려운 내리막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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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대했던 마지막 목적지였던 만큼, 기대에 부흥하고도 남는 충분한 감동을 선사해준 곳이다. 사실 이 풍경 하나만을 바라보고 라구스까지 내려왔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곳 외에도 멋진 풍경을 너무나도 많이 볼 수 있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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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선 보트 투어도 하고 있었지만 썩 내키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얼른 물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나는 이곳에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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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바라보는 것도 멋지지만 역시 물속에 들어가야 제맛이다. 혼자서 하는 물놀이는 같이 하는 물놀이보다는 심심하지만, 땀 흘린 뒤에 들어가는 시원한 물속은 다시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천국 같다. 나는 물에 동동 떠서 해안 경치를 실컷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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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메모 #

* 마을도 예쁘고 바다도 예쁘고 심지어 사람들까지 친절했던 동네.
* 사실 해안 산책은 원대한 계획의 절반밖에 이루지 못했지만, 그 더위에 그늘도 없는 길을 따라 걷는 건 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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