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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Dec 05. 2017

대항해시대의 흔적 찾기

Day 135, 136 - 포르투갈 리스본 벨렘/벨렝(Belem)

2017.06.16, 17


라구스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리스본으로 돌아왔다. 버스 안에서 라구스에서 먹고 남은 천도복숭아를 먹었는데 여전히 꿀맛이었다. 원래 일정대로 리스본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다음날 바로 포르투로 이동하는 것이었다면 꽤 바빴을 오후였지만, 일정을 바꾼 덕에 오후는 느긋하게 보낼 수 있었다.

리스본 숙소에 짐을 푼 뒤, 거리를 걷다가 점심 겸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점심과 저녁 사이의 애매한 시간이라 미리 찾아둔 맛집 중 두 군데는 열려있지 않아, 결국 세 번째 장소로 향했다.

포트 와인 한 잔과 문어 구이를 주문했는데 문어가 굉장히 부드러웠다. 하지만 먹다 보니 문어 특유의 쫄깃한 맛이 없어 오히려 아쉬웠다. 포르투갈은 독특한 게, 이런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때면 빵, 치즈, 올리브 또는 샐러드 등을 기본으로 세팅해준다. 잘 모르고 가면 당연히 무료로 제공해주는 것인 줄 알고 먹게 되는데, 이때 먹은 건 나중에 계산서로 청구된다. 메인 메뉴가 나올 때까지 손대지 않은 건 도로 가지고 들어간다. 나는 웬만하면 손대지 않았는데, 묻지도 않고 세팅해버리는 것이 썩 기분 좋은 일도 아닌 데다, 안 먹으면 도로 들고 들어갔다가 다음에 오는 손님에게 몇 번이고 재활용할 것 같아 찝찝했기 때문이다.

맛은 괜찮았지만 조금 기름졌던 문어 구이의 느끼함을 멜론 맛 아이스크림으로 달래고, 처음 리스본에 왔을 때 발견했던 숙소 근처 전망대로 향했다. 철제 난간 때문에 사진 찍기 쉽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보이는 건물들의 붉은 지붕들과 하얀 벽면들이 예뻤다.

앞에 있는 분수대에 앉아 일기도 쓰고 카페에서 사 온 음료도 마시면서 시간이 가기를, 해가 밑으로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분홍빛으로 서서히 물드는 하늘과 어두워지는 전망을 감상하고 있으니 어느새 상 조르즈 성에 노란 불이 켜졌다. 짙은 푸른빛 하늘을 지켜보다 나는 숙소로 돌아갔다.


다음날 나는 리스본 벨렘(Belém) 지구에 가보기로 했다. 벨렘 지구는 유명한 제로니무스 수도원이 있는 곳으로, 시내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벨렘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트램을 타야 한다. 트램은 옛날식 전차 형태의 트램과 긴 현대식 트램 두 가지가 번갈아가면서 왔다. 작은 트램은 모든 것이 옛날 방식이었는데, 종점에서 회차할 때 운전사 아저씨가 밖으로 거울을 꺼내어 비추어 보면서 'ㅇㅇ행' 표시를 바꾸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작은 옛날 트램을 타고 싶었지만 사람이 금방 다 차서 나는 뒤따라 오는 긴 트램에 올랐다.

30~40분 뒤 벨렘에 도착했고, 나는 가장 먼저 벨렘 탑(Belém Tower, Torre de Belém)으로 향했다.

벨렘 탑은 이곳을 오가는 선박을 감시하기 위해 세워졌는데, 지하는 범죄자들을 가둔 감옥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포르투갈 대항해시대에 큰 역할을 한 장소이다.

건물이 멋있어서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줄이 너무 긴 데다 크게 당기지는 않아서 바로 발견 기념비로 이동하기로 했다. 더위를 식히려는지 강에 들어가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발견 기념비(Monument of the Discoveries, Padrão dos Descobrimentos)로 걸어가는 길. 멀리 보이는 4월 25일 다리 오른쪽으로 강 건너에는 예수상이 있다. 라구스에 가는 길에 버스 안에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남미에서부터 보았던 수많은 예수상과 마리아상들이 떠올랐다. 이곳은 그리 높지 않은 곳에 있었다.

발견 기념비는 항해왕으로 불리는 엔리케의 사후 500주년에 세워진 것으로, 15-16세기 포르투갈 대항해시대를 기리는 기념비이다. 수많은 탐험가와 성직자, 작가, 후원자들이 입체적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대표적으로 인도로 가는 해양 항로를 개척한 바스코 다 가마와 최초로 세계 일주를 한 마젤란이 있다.

흔히 이곳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도 조각되어있다고 알고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콜럼버스는 리스본에 살았던 적은 있으나 본래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인 데다 에스파냐 여왕의 후원을 받아 항해를 성공한 인물로, 포르투갈 출신 인물들만이 조각된 이 기념비에 그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기념비 앞에는 대항해 시대에 걸맞은 세계 지도가 그려져 있었는데 나 역시도 가서 우리나라가 그려진 부분을 찍어보았다.

숙소에서 먹은 한식 아침식사가 든든했는지 배가 고프지 않아 제로니무스 수도원(Jerónimos Monastery, Mosteiro dos Jerónimos)으로 바로 이동하기로 했다.

오전보다는 줄이 줄어들어 있어서 생각보다 많이 기다리지 않고 입장할 수 있었다. 현재 수도원이 있는 자리에는 본래 다른 성당이 있었는데, 1497년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로의 항해를 앞두고 선원들과 함께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이후 1501년에 짓기 시작하여 100년 후에 완공된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마누엘 양식 건물이다. 1755년 리스본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큰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입장하자마자 회랑과 안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되었다. 이런 양식은 스페인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여러 번 보았음에도 볼 때마다 장식에 따라 새롭고 아름답다.

2층에서 내려다본 수도원 내 산타마리아 대성당은 웅장하고 엄숙했다.

성당 내에는 바스코 다 가마의 묘도 있었다. 다른 곳에 있던 묘를 이곳으로 뒤늦게 옮겨온 것으로 알고 있다. 발견 기념비에서도, 이곳에서도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바스코 다 가마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수도원에서 나와 간식을 먹기 위해 유명한 에그타르트 가게에 갔다. 가게 내부에 사람이 너무 많아 북적거려서 테이크 아웃해 근처 스타벅스에 가서 먹었다. 위에 뿌려먹을 설탕과 계핏가루를 주는데 계핏가루가 맛있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굉장히 부드러웠다.

벨렘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해양박물관이었다. 원래 이곳에 거북선이 가운데에 전시되어있어 한국인들에게 유명해졌다고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혹시나 해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지만 창고에 넣어둔 것인지 역시나 없었다. 입구에서 물어보고 들어갈 걸.

벨렘에서 다시 트램을 타고 리스본으로 돌아오는 건 꽤나 힘들었다. 계속 작은 트램이 꽉 차서 오는 바람에 거의 1시간 가까이 서서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겨우 타서 앉았는데도 괴로움이 계속되었다. 냉방시설이 고장 난 것인지 트램 내부가 너무 더웠던 것이다. 하루 종일 걸으면서 흘린 땀보다 트램 안에서 30분간 흘린 땀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덕분에 저녁식사 장소도 바로 바꾸었다. 그 상태로 리스본 시내의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너무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푸드 마켓. 유명한 식당들이 들어와 푸드코트 형식으로 판매하는 마켓이었는데, 음식을 파는 곳도 있고 맥주를 파는 곳도 있었다.

나는 문어밥과 흑맥주로 저녁식사를 해결했다. 마카오에서 해물밥을 처음 먹었을 때 생각보다 별로 맛이 없어서 실망했었는데, 문어밥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맛있었는데 양이 많지 않아서 아쉬웠다.


하루 종일 엄청나게 덥더니,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를 맞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음날 포르투로 가는 길이 험난하지 않기를 빌었다.


# 사소한 메모 #

* 만일 내가 15-16세기 유럽에서 남자로 태어났다면, 탐험가였을까? 작가였을까? 성직자는 아니었을 것 같다.
* 벨렘 탑 앞을 지나가는데 어떤 여자가 말을 걸면서 스커트를 어디서 샀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잔지바르에서 산 노랑&초록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샀다고 하니 아쉬워하면서 너무 예쁘다고 말해주었다. 화려해서 자주 입진 않았지만, 더운 곳에서 가끔 입을 때면 말을 거는 여자들이 있어서 괜히 기분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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