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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Dec 07. 2017

야경이 아름다운 포르투에서의 첫날

Day 137 - 포르투갈 포르투/포르토(Porto)

2017.06.18


나는 숙소를 정할 때 항상 위치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언제나 뒤따라오는 고민이 있다. 돌아다니기 좋은 위치, 즉 중심가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이동하기 편한 위치, 즉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으로의 접근성이 좋은 곳을 택할 것인가. 같은 가격이면 모든 짐을 어깨에 지고 다녀야 하는 여행의 특성상 후자를 택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므로 전자를 택한 후 배낭을 메고 과거의 나를 저주하기도 한다.


포르투에 예약한 호스텔은 저렴하고 위치도 좋으면서 시설도 깨끗해 보였다. 문제는 이곳이 버스터미널에서 꽤 떨어져 있었다는 점. 나는 사전에 별생각 없이 버스를 예약했는데, 버스터미널은 중심가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숙소가 있는 중심가까지 가기 위해서는 도보로 25분을 걸어야 했다. 트램을 탄다고 해도 1 정거장 정도 갈 수 있을 뿐, 결국 도보 20분. 배낭을 메고 있을 땐 이상하게 가만히 서 있는 것보다 차라리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 편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트램도 이용하지 않고 그냥 도보로 이동했다. 중간중간 계단까지 있어서 죽을 맛이었다.

겨우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조금 쉬다가 도우루(Douro) 강가로 걸어 나왔다. 가까워서 좋았다. 날이 흐려서 아쉬웠지만 물이 흐르는 도시는 언제나 아름다운 법이다.

강가에는 이렇게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즐비해 있었다. 점심을 대충 먹은 상태였던 나는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고는 도시 다른 쪽으로 걸어가 보기로 했다.

며칠 전까지 축제 기간이었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곳곳에 가랜드가 걸려있었다. 덕분에 날이 흐린 가운데서도 밝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렐루 서점으로 가는 길, 상 벤투 기차역(São Bento, Saint Benedict)에 들렀다.

상 벤투 역이 관광명소로 유명한 이유는 아줄레주(Azulejo) 타일로 장식된 벽화 때문이다. 아줄레주는 그림을 그려 만든 포르투갈의 도자기 타일 양식인데, 유명 건축물들과 레스토랑, 가정집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내가 본 타일들은 대부분 푸른색이어서 아줄레주라는 말이 푸른빛을 뜻하는 'Azul'에서 나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아랍 단어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이슬람 문화의 타일 양식을 토대로 발달한 것이라고. 상 벤투 역은 푸른 아줄레주들 덕에 내부가 아주 화려했고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도 여럿 보였다.

역 앞 도로는 포르투 시내에서 가장 차가 많이 다니는 길이라고 하는데, 6월 말임에도 아직 극성수기가 아니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복잡해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골목길을 따라 렐루(Lello) 서점으로 갔다. 포르투에 오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마 이 서점이었을 것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저자 J.K. 롤링은 이곳 계단에 서서 해리포터 이야기를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명세 때문인지 4유로의 입장료가 있었는데,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면 그만큼을 할인해준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엘 아테네오(El Ateneo)보다는 훨씬 작은 크기였지만 충분히 상상력을 자극할 만한 인테리어였다.

서점에서 나와 성당 쪽으로 걸어갔는데, 성당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기 보다는 다른 데에 목적이 있었다.

바로 사진 속 사람들이 곧 지나갈 초록색 문이 있는 저 좁은 건물이다. 세상에서 가장 좁은 건물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얼핏 보면, 아니 사실 자세히 보아도, 건물 같아 보이지 않고 평범한 벽처럼 보인다. 하지만 왼쪽의 카르메리타스(Carmelitas) 성당과 오른쪽의 카르모(Carmo) 성당 사이를 가르는 하나의 건물이라고 한다. 수녀들과 수도사들이 딱 붙어 지내지 못하도록 사이에 건물을 지은 것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효과적이었을지는 모르겠다.

슬슬 어두워지기에 저녁식사를 하러 도우루 강가로 걸어내려왔다. 동 루이스 1세 다리(Dom Luis 1 Bridge)를 건너가 야경을 보기로 했다.

위로도 지나갈 수 있는데 이미 강가로 내려온 시점에서 도로 올라가기가 귀찮아서 그건 다음날 하기로 하고, 이날은 밑으로 건너갔다.

내가 있던 곳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점점 더 예뻐 보였다. 그래서 다들 다리를 건너가서 풍경을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나 보다.

워낙 흐린 날이었음에도 해가 지려고 하니 마지막을 불태우는 약간의 햇빛이 보이기도 했다.

저녁으로는 튀긴 대구요리를 먹고, 바람이 불어 서늘해진 강가에 앉아 더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하늘은 점점 짙어졌고, 강물은 도시의 불빛을 받아 빛나기 시작했다. 듣던 대로 포르투의 야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노란 불빛들로 물든 도시와 그 앞에 있는 작은 보트들까지 하나하나 그림 같았다.

제대로 된 야경을 보고 있으려니 비로소 내가 유럽에 왔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유럽은 아기자기한 낮의 모습도 사랑스럽지만, 마천루 없이 은은하면서 동시에 강렬한 밤의 풍경 또한 매력적이다.

다시 숙소 방향으로 걸어서 돌아오면서, 그냥 다 좋은 하루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흐려서 마음까지 조금 어두워지려 했으나 밤에 이토록 밝게 빛나는 모습을 보게 되니 다시 가슴이 설렜다.


# 사소한 메모 #

* 리스본 민박집 도미토리에서 아주머니 두 분을 알게 되었다. 두 분 다 적어도 50대 후반으로 추측되는데, 두 분이서 한 달간 스페인&포르투갈 자유여행을 오신 것이었다.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 인연을 포르투 시내에서 또 마주쳤다. 지금은 무얼 하고 계실지 궁금하다.
* 여행을 떠나오면서 산 트레킹화를 리스본 민박집에 두고 오고 말았다. 더워서 가벼운 운동화만 신다 보니 신발장에 넣어두고는 깜빡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아쉽고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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