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의별 Dec 08. 2017

여유로운 포르투, 둘째 날

Day 138 - 포르투갈 포르투/포르토(Porto)

2017.06.19


포르투 둘째 날, 오전 내내 비가 내렸다. 비가 많이 온 것은 아니었지만 우산을 쓰고 다니기 번거로우므로 조금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 조금은 곧 1시간이 되었고 배가 고파진 나는 가장 먼저 식사를 하기로 했다.

프란세지냐(Francesinha)는 포르투갈식 샌드위치로 포르투의 대표음식이다. 식빵에 고기, 햄 등을 겹겹이 넣고 그 위에 계란과 치즈를 올린 후, 소스를 위에 붓는다. 그야말로 칼로리 폭탄이다. 맛은 있었지만 느끼해서 다 먹지는 못했다.

배를 든든하게 한 후 볼량시장(Bolhão)으로 향했다. 기념품도 구경하고, 느끼했던 식사의 후식으로 과일도 사 먹기 위해서였다. 굉장히 크고 활발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조용한 분위기여서 조금 실망했다.

그래도 이곳에서 산 납작 복숭아는 정말 달고 맛있었다. 아주머니가 친절하게도 크고 색깔이 좋은 것들로 골라주셨다. 8년 전 프랑스에 있을 때는 이런 과일을 본 적도 없었던 것 같은데 최근 몇 년 사이 유럽 여행 다녀온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일반 복숭아보다 달았다.

원래는 포르투에 오면 누구나 해보는 와이너리 투어나 리스본에서 보지 못했던 파두(Fado, 음악과 시가 결합된 포르투갈 공연 장르) 공연을 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어느 것도 그리 내키지 않았다. 시끌벅적했던 아프리카를 떠나고 반갑게 한국인들을 만났던 리스본을 지나 포르투에서 몇 달 만에 다시 완전한 혼자가 되니 조금 울적해진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장기 여행은 전체 여행 일정이 길 뿐, 내가 한 도시에만 오래 머무는 것도 아닌데 언제든지 이곳을 또 여행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 짧게 휴가를 갈 때보다 덜 열심히 다닐 수 있어 좋다. 누구나 다 하니까 꼭 해야 할 것만 같았던 와이너리 투어와 파두 공연도 그리 원치 않았던 내 마음을 깨닫고 나니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대신 카페테라스에 앉아 커피 한 잔에 에그 타르트를 먹으면서 해가 지기를, 더위가 가시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기운을 재충전한 뒤 숙소 뒤편에 있는 포르투 대성당으로 걸어올라 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성 로렌스 성당이 아래에 보였고, 그 옆으로는 해가 저물어가는 포르투 시내의 전경도 보였다. 

리스본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많은 붉은 지붕들이, 언덕을 뒤덮은 붉은 지붕들이 햇빛이 만든 그림자에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포르투의 대성당의 외부는 과하게 화려하지 않아 오히려 더 위엄 있어 보였다. 전날 배낭을 메고 숙소를 찾아 헤매면서 보았을 땐 너무 지쳐서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다시 보니까 굉장히 멋졌다.

대성당 외벽에도 곳곳에 아줄레주가 있었다. 대성당 주위를 한 바퀴 도는데 문득 생각해보니 동 루이스 다리(Dom Luis 1 Bridge)의 윗부분이 이곳과 비슷한 높이에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감을 믿고 주변 길을 따라 걸어보니 역시 다리가 나왔다. 건너편에 보이는 기다란 건물은 세라 두 필라르 수도원 (Mosteiro da Serra do Pilar)이다. 내부에 들어가 보아도 좋다던데, 힘들어서 그러지는 않았다.

다리 한쪽에는 푸니쿨라가 보였고, 그 옆의 집들은 굉장히 낡아 보였다. 이곳도 달동네가 있나 보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다른 한쪽에는 다 무너져 내린 집이 보였다.

그러나 늘 그렇듯, 잘 어우러진 전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작은 얼룩들은 가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그동안 봐왔던 관광지들은 좋은 것만 보여주기 위해 꾸며둔 곳들이니 그 나라의, 그 도시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루하루 힘겹게 생활하는 그곳의 또 다른 일부에 대한 건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으리라.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이 시기에 조금 공허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쩌면 해가 지는 것을 보며, 그 햇빛이 다 무너져 내린 집에 닿는 것을 보며, 더 우울한 생각이 들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곳의 풍경은 그런 아픈 일부에만 집중하기엔 너무나도 멋졌던 것 또한 사실이다.

어두운 곳이 있는 반면, 이렇게 밝은 곳들도 반겨주고 있으니까. 그런 곳들이 더 많으니까.

아쉽게도 역광이라 사진은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 해가 지기 전에 더 일찍 걸었어야 했나 보다. 그래도 눈에 담긴 풍경은 사진보다 예뻤고, 내가 기억하고 있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다리에서 내려와 도우루 강가에서 포르투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보통 이런 강가 레스토랑들의 음식은 훌륭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전망이 가장 마음에 드는 곳으로 골랐다. 기대를 안 해서 그런지 해산물 알리오 올리오는 생각보다 맛있었다.

그리고 내가 여름의 유럽을 여행하면서 생긴 또 하나의 습관, 1일 1 아이스크림을 이날도 달성하였다. 나는 달콤한 초콜릿 맛도, 고소한 피스타치오맛도, 상큼한 딸기맛도, 새콤한 레몬맛도 다 좋아하지만 언제든 가장 자신 있게 고르는 맛은 민트 초코맛이다.

전날 보았던 야경이 또 보고 싶었는데, 완전히 어두워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서 숙소에서 쉬다가 다시 나오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야경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 오후 1시 툴루즈행 비행기를 예약했던 것을 버리고 급히 오전 6시 마드리드행 비행기를 예약해야 했기 때문이다.


# 사소한 메모 #

* 공허한 기분에 더 울적해진 하루.
매거진의 이전글 야경이 아름다운 포르투에서의 첫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