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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Dec 18. 2017

잠시 쉼표

Day 139

2017.06.20


포르투갈에 있을 때 내 휴대폰은 정지된 상태였고,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만 메신저 등을 이용하며 한국에 있는 가족들,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포르투에서의 둘째 날, 야경을 보기 전에 잠시 숙소에 들어갔고, 내 휴대폰은 숙소 와이파이에 연결되자마자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돌아가셨어. 연락 줘'


사실 오전에 엄마와 잠시 통화했을 때, 요양원에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응급실에 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위급상황은 아니니 지금은 괜찮으시다는 말도. 하지만 올해를 넘기긴 힘드실 것 같다는 말도. 그래도 이렇게 반나절 만에 갑자기 돌아가실 줄은 상상도 못 하였다.


나는 부모님과 통화를 한 뒤 호스텔 로비에 혼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울었다.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채 눈물을 훔치고 있으니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힐끔거렸다. 오래 아프셨고 워낙 연세도 많으셔서 조만간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나는 가족과 함께 울고 있을 상황을 생각했던 것 같다.


적당히 추스른 뒤 비행기표를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건 오전 6시 비행기, 마드리드와 아부다비를 거쳐 한국에 다음날 낮 12시에 도착하는 편이었다. 발인 전날 도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어서 곧장 결제하고, 방으로 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세 시간 정도 잔 뒤 새벽 3시에 우버를 불러 공항에 갔다.


나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다음날 한국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부모님과 친척분들을 만났고, 감사하게도 빈소에 찾아와 주거나 연락해준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갑작스레 들어오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며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사실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포르투라는 작은 도시에서 한국까지 24시간 안에 갈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굉장히 엄격하고 무뚝뚝한 군인이셨다. 늘 옳은 일을 선택하는 원칙주의자셨고 내가 아는 가장 부지런하고 성실한 분이셨다. 매일 일기를 쓰셨는데,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와 일본어로도 꼬박꼬박 적으시던 분이다. 흔히 말하는 옛날 분이셨음에도 다양한 해외 경험으로 글로벌한 입맛을 가지고 계셨고 생각 또한 보통의 그 나이대 분들에 비해 깨어있으신 합리적인 분이었다. 할머니께는 한없이 다정하고 낭만적인 사람이셨고 두 분 다 정정하실 때는 늘 손을 꼭 잡고 걸어 다니셨다. 그렇게 두 분은 우리 아빠를 포함한 6남매를 기르시며 긴 세월을 함께 하셨다.


마지막 인사를 드릴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나에겐 할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는 장소가 이 세상에 한 곳 더 늘어났다. 편히 쉬고 계시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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