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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 추억 따라 걷는 파리

Day 151, 152 - 프랑스 파리(Paris)

by 바다의별

2017.07.02, 03


할아버지 장례를 위해 한참을 날아와 밤을 새우면서 정신없이 며칠을 보냈다. 장례식이 끝나고 오랜만에 집밥을 먹으며 내 침대에 누워 틈틈이 비행기표를 검색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너무나 편해져 있었다. 사람들은 갑작스레 귀국하는 것이 힘들었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다시 출국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 출국일을 고민하던 중 이대로 계속 있다가는 다시 못 나가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능한 가장 빠른 표를 예약했다.


한동안 유럽 테러 위협으로 심각했던 시기여서, 공항 카운터에서 유럽 아웃 티켓이 없으면 입국이 거부당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실제로 포르투갈에 입국했을 때 질문이 상당히 많았었다. 유럽에서 얼마나 있을 것인지, 뉴질랜드까지는 어떻게 갈 것인지(뉴질랜드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티켓이 있었다), 갈 돈은 있는지 등등. 그때 나는 이미 여행한 지 4개월 반이 지난 상태였고, 당신은 내가 집에 얼마나 가고 싶어 하는지 모를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테러가 일어난 적은 없었던 포르투갈의 입국 심사도 이토록 까다로웠으니 프랑스는 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예상을 뒤엎고 입국 심사는 입을 벙끗할 새도 없이 10초 만에 끝나버렸다. 남의 나라 안보가 걱정될 정도로. 어쩌면 포르투갈은 내가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를 거쳐 들어갔던 터라 더 빡빡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도착했다. 7년 반 동안 그토록 그리워하던 프랑스, 늘 다시 가고 싶어 하던 파리에.

DSC03001001.JPG 퐁피두 센터 (Centre Georges Pompidou)

파리는 내가 난생처음 밟았던 유럽 땅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지하철에서 냄새가 나도, 길에 개똥이 즐비해있어도, 나는 예쁜 것들만 보인다. 인종차별을 당하기도 했고 처음이라 서툴러서 마음고생을 많이 하기도 했지만 빛나는 에펠탑처럼 크고 작은 예쁜 풍경들과 간혹 마주치던 다정한 사람들 덕분에 그곳에 대한 기억은 늘 좋기만 하다. 게다가 당시 같이 있어주던 사촌언니, 이후 민박집에서 알게 된 친구들, 가을에 왔던 엄마, 겨울에 함께 다녔던 교환학생 친구, 그리고 연말을 함께 보낸 사촌동생과 그 친구까지. 나는 파리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알고 있고 내가 시선을 두는 곳들마다 이 사람 저 사람과의 추억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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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숙소는 퐁피두 센터 근처로 잡았다. 물론 내가 퐁피두 내부에 들어가진 않겠지만 지하철 타기 가장 좋은 위치여서 이곳으로 골랐다. 첫날은 정신없어서 푹 쉬었고, 둘째 날 본격적으로 나왔다.


딱히 계획도 없었다. 파리에서 머무는 동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들만 찾아갈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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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향한 곳은 숙소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노트르담 드 파리 대성당(Notre-Dame de Paris). 내가 파리에서 두 번째로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천주교 신자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독실한 편은 아닌데, 그럼에도 유럽의 성당들에 갈 때면 그 웅장함에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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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 그런지 앞에 꽃들도 많이 피어있었다. 성당의 내부에 들어간 기억은 많지 않지만, 이 정면을 좋아해서 자주 걷기도 하고 앉아있기도 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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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곳에 갈 때면 늘 필수 코스처럼 들렀던 셰익스피어 앤 코(Shakespeare & Co.) 서점까지. 서점은 전보다 확장이 되어있었고 옆에는 카페까지 있었다. 서점 내부는 너무나 붐벼서 통로를 지나가는 것조차 버거웠는데, '사진 촬영 금지'라는 문구도 붙어있었다. 2층에는 오래된 타자기와 그 옆에 종이들이 쌓여있어 사람들이 한 두 줄씩 재미로 타자기를 치다 갔는데, 지금은 타자기를 쓰지 못하게 막아놓고 전시만 하고 있었다. 사업이 잘 되니 확장을 했을 것이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타자기 앞에 모여있을까 봐, 혹은 타자기가 고장 날까 봐 막아둔 것일 테지만, 어느 겨울밤 친구와 함께 타자기로 '로미오와 줄리엣' 속 한 구절을 열심히 두들기며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던 것이 이제는 추억에만 머물게 되었다는 사실이 나는 괜히 섭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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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베르 조셉(Gibert Joseph)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 반가웠다. 이곳에서 노란 스티커가 붙은 책들을 골라 샀던 기억이 난다. 노란 스티커가 붙은 책은 중고서적들인데 대부분 새책 같았다. 안도현 작가의 '연어' 프랑스어판도 이곳에서 발견해 샀었다. 끝까지 읽지는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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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동네 거리들을 정처 없이 배회하다 점심식사를 한 후,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장소에 가기 위해 센 강을 따라 이리저리 다리를 건너며 좌안과 우안을 모두 걸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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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어느새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 앞에 도착했다. 루브르는 4번 정도 갔던 것 같은데 맨 처음 갔을 때 내부에서 길을 헤맸었다. 직원에게 'OO번 전시실이 어디인지' 물어봤다가 '지금 있는 여기에요'라는 답변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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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보다는 오르세를 더 좋아하는 나라서, 그리고 복잡한 곳에 가고 싶지는 않아서 미니 개선문을 따라 튈르리 공원(Jardin des Tuileries)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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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는 관람차가 있었다. 항상 있던 것인지, 때때로 서 있었던 것인지, 이상하게도 관람차가 없는 풍경도 있는 풍경도 모두 익숙했다. 예전에는 겨울에만 보았던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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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에는 역시나 여름답게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가장 그리워했던 유럽의 모습은 이런 풍경이었던 것 같다. 여유로운 평일 오후를 즐기는 사람들, 관광객들. 어떤 이들은 책을 읽고 어떤 이들은 샌드위치를 먹고 어떤 이들은 그림을 그리며 어떤 이들은 누군가와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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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처음 파리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이곳에서 어떤 프랑스인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던 적이 있다. 서툰 프랑스어 실력으로 대화의 반 이상은 그냥 웃기만 했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한국 영화에 굉장히 관심이 많으셨는데, 당시 나는 박찬욱 감독을 포함하여 몇몇 이름만을 알아들었을 뿐, 할아버지께서 정확히 어떤 이야기를 하셨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표정을 봐선 극찬을 한 것 같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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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오늘의 최종 목적지는 이곳이 아니니, 다시 한번 걸어본다. 건너편에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이 보였다. 교환학생 1년 동안 파리에 올 때마다 꼭 들른 곳이 오르세였다. 아마 열 번도 넘게 들어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매번 작품의 위치가 조금씩 바뀌기도 하고 다른 지역으로 대여되었던 작품이 돌아오기도 해서 새로웠던 곳이다. 이번에는 마지막 날에 들러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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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 뒤쪽으로 드디어 오늘의 최종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파리에 온 첫날이면 당연히 에펠탑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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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을 볼 수 있는 장소는 매우 다양하지만, 나는 이 각도를 가장 좋아한다. 센 강에서 가장 화려한 다리인 알렉상드르 3세 다리(Pont Alexandre Ⅲ)와 함께 보이는 에펠탑이 좋다. 금색으로 화려한 다리와 다리에 비해서는 소박하지만 높이 우뚝 선 에펠탑이 어딘가 모르게 조화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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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에 올라가 센 강을 내려다보면 가장 쉽게 구별이 가능한 다리가 바로 이 다리이다. 나머지 다리들은 대부분 밋밋하기 때문이다. 해질 무렵 마찬가지로 금빛으로 치장된 돔이 있는 앵발리드(Les Invalides)를 바라보며 다리 반대편에 서 있으면, 길이 반짝 거려 참 예쁘다. 위 사진 속에는 저 멀리 앵발리드의 돔이 살짝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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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걸어갈까 고민하다 이왕 걷기 시작한 거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무리하지는 않는 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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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을 사이에 두고 샤이요 궁(Palais de Chaillot)과 샹 드 마르스(Champ de Mars)가 마주 보고 있다. 두 곳 모두 유명한 뷰포인트이다. 이날은 굳이 다리를 건너지 않고 샤이요 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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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맑아서, 구름이 예뻐서 에펠탑이 더 멋졌다. 100년 전에는 이게 흉한 고철 덩어리 취급을 받았다는 것이 볼 때마다 믿기지 않는다. 이렇게 우아한 고철 덩어리가 또 어디 있다고!

DSC03083001.JPG 2017년 여름의 에펠탑과 샤이요 궁
DSCN9192001.JPG 2009년 가을의 에펠탑과 샤이요 궁

예전에는 이곳에 분수가 예쁘게 올라왔는데, 이번에는 분수를 볼 수 없어 아쉬웠다. 공사 중이라 그런지,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을 일부 막아놔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도 한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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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여전히 사람은 많았다. 그리고 여전히 에펠탑은 예뻤다. 파리의 상징이자 프랑스의 상징, 낭만과 아름다움의 상징이며, 내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조물인 에펠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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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메모 #

* 파리는 언제나 나를 들뜨게 한다. 처음 도착했던 그때도, 다시 갔던 그때도, 사진을 보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 ♬ Carla Bruni - Quelqu'un m'a 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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