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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Nov 28. 2017

알록달록한 신트라와 시원한 호카곶

Day 132 - 포르투갈 신트라(Sintra), 호카곶(Roca)

2017.06.13


전날 밤 고민 끝에 리스본 일정을 하루 더 늘리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이날은 근교 신트라(Sintra)에 다녀오기로 했다. 아침 식사 후 민박집 주인으로부터 상세한 설명을 들은 후, 기차역으로 향했다. 사전 준비가 없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친절한 민박집이었다.

리스본 기차역

신트라까지는 40분 정도 기차를 타고 가서 그 안에서는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신트라 기차역에서 내려 버스를 기다리는데 같은 민박집에 묵는 친구를 만나 이날 하루 같이 다니게 되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무어 성(Castelo dos Mouros, Castle of the Moors)이었다. 이곳은 중세 시대에 북아프리카에서 이베리아 반도로 건너온 이슬람 세력, 무어인들이 지은 성이다.

듣던 대로 성벽을 올라가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이곳을 걷고 나면 페나 궁전(Palacio de Pena, Pena Palace)을 걷기 싫어질 거라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성벽 계단도 꽤 길게 이어져있었고, 무엇보다 덥고 습한 날씨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멋진 전망이 늘 보상이 되어준다. 

성벽 계단을 따라 쭉 올라가 보니 저 멀리 페나 궁전도 보였다. 빨강과 노랑으로 칠해진 원색의 궁전이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무어 성벽에서 내려와 페나 궁전으로 이동할 차례. 버스를 타고 이동해도 되지만 우리는 걷기로 했다. 사실 나도 그냥 천천히 걸어가고 싶었는데 이날 동행한 친구도 걷는 걸 좋아해서 내게 먼저 걷자고 해주어 고마웠다.

미리 찾아본 사진에서 보았던 것처럼, 페나 궁전은 실제로도 레고 장난감 같았다. 날이 맑아서 원색이 더 예쁘게 보였다.

주로 왕실의 여름 별궁으로 쓰였다는데, 알록달록한 색감이 여름과 잘 어울렸다. 그동안 봐왔던 성들과는 다른 의미로 화려해서 재미있었다.

궁전 내부보다는 밖이 더 예뻤던 것 같다. 공사 중인 부분도 많아서 절반 정도밖에 보지 못했다. 내부보다는 밖에서 더 오래 시간을 보냈다.

정원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원이라기보다는 숲 같았다. 더 깊숙이 들어가면 더 예뻤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신트라 시내와 호카곶(Cabo da Roca)도 보아야 했기에 적당히 둘러보다가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마을 자체도 크게 볼 건 없었지만, 붉은 지붕들이 예뻤다. 아몬드 크림이 들어간 디저트와 에그 타르트도 사 먹었다. 아몬드 빵은 너무 달아서 중간중간 탄산수로 중화시켜주어야 했다.

시간이 남으면 동굴 정원으로 알려져 있는 헤갈레이라 정원에도 가고 싶었는데, 바쁘게 다니고 싶지도 않았고 피곤해서 리스본에 일찍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시내를 적당히 둘러본 뒤 호카곶에 가는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다시 신트라 역으로 향했다.

유럽의 최서단이라는 호카곶은 신트라 역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도착한다. 절벽이 다 비슷하겠지 싶어서 큰 기대를 하지는 않고 단지 최서단이라는 의미를 느끼고 싶어 간 것이었는데,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멋졌다.

탁 트여 있어 시원했고, 하루 종일 땀 흘리다 이곳에서 바람을 맞으니 쾌적했다. 

세차게 부는 바람에도 난간 밖을 벗어나 절벽 끄트머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 몇몇 있어서 꽤 아찔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곳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나는 그런 끔찍한 이야기가 아니라도 이런 곳에서 늘 조심하는 편인데, 어떤 이들은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도 자신만만하다. 제발 모두들 조심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길이 나 있는 곳으로만 걸어 조심스레 파도가 거센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무언가 익숙한 느낌이 들어 생각해보니 제주도 같았다. 여행하면서 보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바다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제주도에 다녀온 지도 꽤 된 것 같아 한국에 가면 꼭 제주도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초록빛이 가득해 우도 느낌이 나기도 했다. 내가 걸어가는 걸 뒤에서 그 친구가 찍어줬는데, 역시 한국인이 사진을 가장 잘 찍어주는 것 같다.

호카곶의 아름다운 해안 절벽은 나로 하여금 알가르베(Algarve) 해안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해안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호카곶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신트라 기차역으로, 그리고 기차를 타고 리스본으로 돌아왔다. 리스본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는 둘 다 꾸벅꾸벅 졸았다. 마주 앉은 사람들이 너무 시끄러워서 제대로 잠을 잘 수는 없었지만. 우리는 간단히 저녁을 먹고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로 가는 길에 전망을 보기 좋은 곳을 발견했다. 저렇게 시내 전경 지도까지 세워둔 것을 보면 예전에는 난간까지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밑에서 공사를 해서인지 앞을 다 막아버렸다. 철조망 틈 사이로 카메라 렌즈를 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조금 더 줌을 당겨보니 노랗게 빛나는 상 조르즈 성(Castelo de Sao Jorge)까지 잘 볼 수 있었다. 며칠 뒤 리스본에 돌아오면 이곳에서 해가 지기 전 풍경도 보겠노라 다짐했다.


# 사소한 메모 #

* 민박집에 가면 이런 게 좋다. 길지 않게, 일정이 맞는 날 딱 하루, 부담 없이 함께 다닐 친구가 생긴다는 것.
* 그리고 한국인이 사진도 가장 잘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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