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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Nov 27. 2017

리스본에서 다시 시작

Day 131 - 포르투갈 리스본(Lisbon)

2017.06.12


나이로비에서 새벽 비행기를 타고 카사블랑카로, 카사블랑카에서 리스본으로. 일찍 일어난 데다 이동 시간이 길어 피곤했지만 시차가 없어 저녁에 도착하니 기분은 괜찮았다.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붉은 지붕들과 바다가 참 예뻤다. 유럽 시작 지점으로 포르투갈을 선택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7년도 더 된 이야기이지만, 나는 프랑스에서 1년간 교환학생 생활을 한 적이 있다. 나의 전공 및 복수전공과 상관없는 경영대학교로 간 데다, 심지어 첫 학기에는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진행되는 수업들이 대부분이어서 나는 공부보다는 여행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사실 앞에서 열거한 이유들이 아니라도 교환학생들은 대부분 열심히 여행을 한다. 그때 스페인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 나는 같은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포르투갈에 대해 알 수 없는 환상이 생겼다.

리스본은 축제 기간이라서 시내에는 차가 들어가지 못해, 원래 하차해야 하는 정거장보다 두세 정거장 일찍 내려야 했다. 밤에 하는 퍼레이드 때문이었는데, 퍼레이드의 실상은 매우 시시했다. 나는 반강제적으로 배낭을 메고 리스본 시내를 구경하며 예약해둔 민박집을 찾아가야 했다. 새벽 비행기라 위아래 따뜻하게 입고 있었는데 귀찮아서 공항에서 옷을 갈아입지 않은 것을 금세 후회했다.

리스본은 7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다.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 드디어 숙소 문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느릿느릿 걸어 올라왔음에도 숨이 턱까지 차올라 헉헉거렸다. 가벼운 몸으로는 그렇게까지 길지도, 가파르지도 않은 골목길이었지만 스웨터와 기모 바지 차림으로 배낭까지 앞뒤로 메고 있던 나에게는 엄청난 신고식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물을 두 잔 들이켰다. 민박집 주인은 친절하게 설명을 시작하셨는데, 직접 제작한 지도에는 각종 명소와 주요 대중교통 노선, 맛집까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러나 설렘도 잠시, 나는 설명을 들으면서 굉장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전망을 볼 수 있는 엘리베이터

아프리카에 있던 기간 동안에는 아무것도 예약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대부분의 일정을 일시불로 깔끔하게 사전에 결제했고, 모든 건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아이처럼 따라 움직이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나는 잠시 내 본분을 망각하고 있다가, 뒤늦게 탄자니아 잔지바르에 도착해서야 내가 여름 성수기 유럽 여행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행히 포르투갈을 여행한 경험이 있던 친구 아만다의 도움을 받아 생각보다는 빨리 급하게 일정을 계획하고 주요 숙소를 예약할 수 있었다. 아만다는 나에게 남부 라고스(Lagos)에 꼭 가라고 했고, 리스본은 하루 이틀이면 충분히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민박집에 도착해서 보니 리스본 근교의 신트라(Sintra)에 가보고 싶어졌다.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막상 급하게 본격적인 계획을 세울 때에는 잊고 있던 지명이었다. 리스본에서 2박을 한 후 라고스에 갔다가 다시 리스본에 와서 1박을 하기는 하지만, 신트라와 리스본 시내를 모두 볼 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결국 나는 라고스에서 돌아올 때 1박을 더 늘려 2박을 하는 방안으로 일정 조정을 고민해보기로 했다. 

일단 무엇이든 식후경이니 저녁식사라도 하러 나갔다. 민박집 주인이 정어리 축제라서 곳곳에서 정어리를 구워서 판다고 귀띔해준 순간부터 나는 배가 고파졌기 때문이다. 정말로 골목마다 정어리를 밖에서 직화로 굽고 있었고, 언덕 계단마다 테이블을 놓고 손님을 받고 있었다. 다 비슷하겠지만, 오히려 그 사실이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식당을 쉽게 정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언덕길을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이제는 아무 데나 앉아서 시원한 맥주로 더위라도 식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한 영국인 부부가 이곳 맛있다며 나를 불러서 그들 옆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포르투갈을 너무나 좋아해서 이번 여행이 몇 번째인지도 모르겠다는 부부였다.


포르투갈 맥주 슈퍼복(Super Bock)을 마시면서 식사를 기다렸다. 땀 흘린 뒤에 마신 맥주는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맥주를 허겁지겁 거의 다 마셨을 때쯤, 정어리 4마리에 기본적인 야채와 샐러드가 곁들여져 나왔다. 맛도 괜찮고 가격도 꽤 괜찮았다. 다만 정어리를 포크와 나이프로 발라먹어야 하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젓가락이 훨씬 편한데.

식사 후 아이스크림 맛집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한 바퀴 쓱 둘러보았다. 몇 년 전 마카오에 갔을 때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타일 바닥이나 건물들이 떠오르는 시내 풍경이었다. 저녁 8시 반이었지만 날이 환해서 대낮 같았다. 물론 그만큼 덥기도 했지만. 피곤해서 제대로 둘러보기는 힘들었지만 내가 그토록 돌아오고 싶던 유럽에 7년 만에 돌아왔다는 사실이 자꾸만 나를 걷게 만들었다.


# 사소한 메모 #

* 2010년 2월 이후 처음 밟는 유럽 땅!
* 여름이라 일찍 어두워지지 않는 건 결코 돌아다니기 쉬운 요소만은 아니다. 그만큼 늦은 시간까지 더울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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