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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을 걷다

Day 154 - 프랑스 파리(Paris)

by 바다의별

2017.07.05


아침 식사 후 로댕 미술관(Musée Rodin)으로 향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다. 왜 안 가봤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때는 아마 좋았던 곳들을 반복해서 가는 것만으로 즐거웠기 때문에 새로운 곳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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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미술관은 실내 전시실과 실외 조각정원으로 나뉘어 있다. 나는 우선 실내 전시실부터 들어갔다. 입구에는 에로틱한 '키스(Le Baiser)'가 자리 잡고 있었다. 본래 '지옥의 문'을 위해 구상되었던 '키스'는 결국 전체적인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아 별도의 독립적인 작품이 되었다. 원래 작품은 대리석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후 청동 등 다양하게 복제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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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보다는 회화를 더 관심 있게 보는 편이라 오르세에 전시되어있는 그의 작품들도 자세히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곳에서는 처음으로 조각품들에만 집중해볼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정교함과, 그림에서는 보기 어려운 입체감에 매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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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작품들도 좋았지만 미술관 자체가 굉장히 예뻤다. 파스텔톤의 벽면과 깔끔한 창틀,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정원까지. 2층으로 나뉘어있어 고급 저택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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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전시해둔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마치 로댕의 작업실에 걸어 들어와 엿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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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의 제자이자, 뮤즈이자, 연인이었던 까미유 끌로델의 작품들도 일부 전시되어 있었다. 10년 가까이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사이였으나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던 연인. 위 사진은 끌로델이 자신을 떠나는 로댕을 원망하며 조각한 작품인 '중년(L'Age Mû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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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머지 작품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는 정원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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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보게 된 작품은 '지옥의 문(Porte de l'Enfer)'. 로댕이 평생을 쏟아부었다는 그 어마어마한 작품이다. 하나하나 살아있는 듯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상단에 위치한 '생각하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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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뒤편으로 들어가 보니 드문드문 더 많은 조각상들이 세워져 있었고, 이렇게 멋진 문과 연못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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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한 산책을 한 후, 마지막 작품을 보러 갔다. 미술관 입구에 서 있으나 마지막에 보기 위해 아껴두었던 '생각하는 사람(Le Penseur)'. '지옥의 문' 위에 앉아 있던 '생각하는 사람'은 독립된 작품으로, 로댕의 대표작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생각보다 컸고 굉장히 높은 곳에 올라가 있어 고개를 젖히고 감상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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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조각만 세세히 살펴볼 수 있었던 로댕 미술관이었다. 재료의 묵직함 때문에 막연하게 회화보다 무겁게 느껴졌던 조각들이, 생동감이 느껴져서 오히려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나중에 꼭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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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미술관에서 만난 혼혈로 보이는 프랑스인이 갑자기 내게 한국인이냐고 묻더니 로댕 & 오르세 미술관 통합 티켓을 건네주었다. 내일 파리를 떠날 거라서 오르세에는 가지 못할 것 같다며 내게 오르세에 갈 계획이 있으면 사용하라고 했다. 내가 한국인인 걸 어떻게 알았는지 물어볼 걸, 그는 티켓만 건네주고는 급한 듯 미술관을 나섰다. 아마 부모 중 한 사람이 한국계가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티켓을 받고 나니 오르세에 갈까 싶기도 했지만, 다음날로 남겨두고 에펠탑에 다시 한번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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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샹 드 마르스(Champ de Mars) 공원에 갔다. 생각해보니 나는 이곳을 겨울에 주로 갔던 것 같다. 분명 다른 계절에도 가기는 했었지만, 이렇게 예쁘게 꽃이 핀 모습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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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걸어오느라 더웠는데 붉은색의 꽃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주황색 꽃들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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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에펠탑에 올라가 본 일은 2번 정도 있었던 것 같다. 기나긴 대기줄과 인파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항상 느끼는 거지만 에펠탑에 올라가면 에펠탑이 보이지 않으니 파리의 반쪽짜리 전망만 보는 기분이다. 내가 도시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에는 잘 올라가지 않으려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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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도 가고 에펠탑까지 걸어가느라 다리가 아프기는 했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워서 샹젤리제까지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저 멀리 몽마르트 언덕의 사크레쾨르 성당(Basilique Sacré-Coeur)이 보였다. 몽마르트도 좋아하는 곳들 중 하나지만 이번에는 더 좋아하는 곳들, 더 그리웠던 곳들을 여유롭게 다니기 위해 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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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복잡한 샹젤리제 거리와 무게를 잡고 있는 개선문. 딱히 살 건 없어서 윈도쇼핑만 했다. 겨울이 되면 크리스마스 마켓이 자리 잡아 북적거리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올 겨울에는 마켓이 서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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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혁명기념일 때문인지, 샹젤리제 거리를 따라 국기가 걸려있었다. 어찌나 많이 걸었는지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반 녹초가 되어있었다.


그럼에도 저녁에 다시 나가야 했다. 이날만큼은 에펠탑의 야경을 꼭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마침 같은 도미토리 방을 쓰는 동생이 함께 가겠다고 해 동행이 생겼다. 독일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친구였는데 웃는 것도 말하는 것도 참 예뻤다.

DSC03379_1001.JPG 에펠탑과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안타깝게도 이날 저녁 찍은 사진들은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다 사라지고 말았다. 아마 내가 카메라에서 다 옮겼다고 생각하고 메모리를 다른 사진들로 덮어쓴 것 같다. 그래도 문명의 발달에 감사한 것은, 당시 촬영 후 무선으로 휴대폰에 전송해둔 몇 장의 사진들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1/5 크기로 화질은 좋지 않지만.

DSC03385001.JPG 앵발리드와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생각해보면 2009년 12월,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기 전 연말, 무지개 색으로 화려하게 변하던 에펠탑의 모습을 찍은 수십 장의 사진들도 다 잃어버린 바 있다. 그때는 지금처럼 무선으로 전송할 수 있는 기능은 없었지만 다행히 페이스북에 업로드한 몇 장의 사진이 유일하게 남아있다. 아무튼, 에펠탑의 야경과 내 사진은 뭔가 안 좋은 관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아니면 내 기억력이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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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와 오벨리스크에서 출발해 알렉상드르 3세 다리(Pont Alexandre Ⅲ)에서부터 에펠탑까지, 정확히는 샤이요 궁(Palais de Chaillot)까지 걸어갔다. 혼자가 아니니 서로 사진도 찍어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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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빛나는 드빌리 다리(Passerelle Debilly)가 유난히 예뻐 보였다. 노란색의 에펠탑과 대조되면서 달과 잘 어울렸다. 내가 그리워했던 파리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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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요 궁에 꽤 오래 걸터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정시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에펠탑도 보았는데, 그 사진은 휴대폰에 옮겨두질 않아서 남은 건 여기까지다. 아마 나는 노란색의 에펠탑을 가장 좋아해서 그랬을 것이다. 새벽 1시까지 기다리면 화이트 에펠탑을 볼 수 있다는데, 나는 오래전이지만 더 화려한 것들도 많이 보았기 때문에, 그리고 1시까지 기다렸다가 들어갈 체력이 없었기 때문에 적당히 보다가 들어갔다. 그럼에도 꽤 늦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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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메모 #

* 낭만적인 분위기에 설레고, 우아함에 도취되고, 열정에 사로잡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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