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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배움의 사이에서

Day 157 - 프랑스 카르카손(Carcassonne)

by 바다의별

2017.07.08


툴루즈 둘째 날, 수녀님과 브라질 수녀님들과 함께 툴루즈 근교에 가게 되었다. 아침 식사 후 옹기종기 밴을 타고 이동했다. 날이 꽤 흐려서 걱정했는데 오전에는 그래도 맑아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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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정도를 달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카르카손(Carcassonne)이었다. 프랑스에서 파리와 몽생미셸 다음으로 가장 관광객이 많다는 곳이다. 예전에도 오려고 했으나 교통편이 애매해서 포기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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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이 이중으로 되어 있는 카르카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는 중세의 요새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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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 들어가 보면 몽생미셸이나 코트다쥐르의 생폴 드 방스(St-Paul-de-Vence)처럼 관광객들을 위한 마을 같다. 입구 근처에는 뻔한 기념품 가게들,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아기자기한 상점들과 카페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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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는 머릿속에서 그 상점들을 지우고 과거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나는 다리 위를 지나는 마차와 화려한 귀족들의 도도한 눈빛과 소박한 평민들의 발걸음을 상상해보았다. 그 속의 카르카손은 더욱 거대하게 느껴졌다.

DSC03594001.JPG 독특한 디자인의 신발 가게

물론 가게들이 반드시 본래의 것을 망치는 것만은 아니다. 어떤 가게들은 과거와 현대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자칫 고리타분할 수 있는 문화재를 조금 더 밝혀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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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골목들을 지나 우리의 목적지인 성당에 도착했다. 아담과 이브에서부터 쭉 족보처럼(종교적 입장에서 본다면) 그림이 이어지는 이곳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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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을 지켜주는 마리아가 있는 성당이라 나는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를 위해 조용히 기도하며 초를 두 개 밝혀두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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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목적지인 팡쥬(Fanjeaux)로 가는 길에는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팡쥬는 언덕 위에 있는 굉장히 작은 도시였는데, 이곳에 있는 도미니코 성인과 관련된 성지들을 방문하기 위해 들렀다. 이즈음에 이곳 근방은 온통 해바라기 밭이 되는데, 마침 언덕 위에 위치한 팡쥬 마을과 함께 보여서 날이 흐렸음에도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눈이 즐거웠다.

DSC03627001.JPG 노트르담 드 프루이유(Notre-Dame-de-Prouille) 수도원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들른 곳은 팡쥬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노트르담 드 프루이유(Notre-Dame-de-Prouille) 수도원이었다. 이곳 역시 도미니코 성인 관련 성지로서 도미니코 수녀회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도미니코 성인이 팡쥬 언덕 위에서 마을 아래를 내려다보던 중, 이곳에 번개가 쳐서 수도원을 짓기로 했다고 한다. 그만큼 도미니코 수도회와 수녀회에는 대단히 의미가 있는 곳이다. 그런데 사진을 보면 보통의 유럽 성당들의 디자인상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채워져야 할 곳들이 모두 벽돌로 채워져 있다.

DSC03675001.JPG 노트르담 드 프루이유(Notre-Dame-de-Prouille) 수도원 내부

여기에는 나름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최초의 수도원은 아마 부서진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하여 이를 복원하기 위해 수도사 한 분이 열심히 노력해 자금을 지원해주기로 한 사람을 찾게 되었는데, 그가 갑자기 죽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의 자식들은 도와줄 수 없다고 해서 한번 좌절이 되었고, 그다음에 찾은 또 다른 후원자 역시 비슷한 이유로 좌절이 되었다고 한다. 결국 너무도 오랜 시간 돈을 구할 수 없어 포기하고, 스테인드글라스로 화려하게 채우려던 부분을 모두 벽돌로 메웠다고 한다. 팡쥬 구경을 마친 후 이곳에서 수녀님들의 기도에 참여했는데, 내부도 여전히 미완의 상태인 것 같았다.


사실 종교라는 것을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신적인 존재가 있음을 믿을 때도 있고, 믿지 않을 때도 있다. 그 존재를 위해 쓰이는 돈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도 나는 잘 모르겠다. 종교적으로 의미 있는 곳을 스테인드글라스로 멋지게 복원해 신을 섬기려는 마음도 이해하는 한편 그런 돈이 있으면 지붕조차 없는 이들에게 쓰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다.

DSC03676001.JPG 노트르담 드 프루이유(Notre-Dame-de-Prouille) 수도원 내부

팡쥬 구경 후 오후에 다시 돌아와 이곳에서 수녀님들의 나지막한 기도 소리와 수도원 내부를 가득 메우는 맑은 노랫소리를 들었다. 천사들의 합창이 이런 것일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운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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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쥬에서는 비가 많이 내려 다니기 쉽지만은 않았다. 흐려서 전망이 아쉽지만, 건물이 거의 없는 탁 트인 전망이 오랜만이어서 인상적이었다. 도미니코 성인은 이곳에 서서 번개 치는 것을 보고는 노트르담 드 프루이유 수도원을 세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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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뿐 아니라 다양한 도미니코 수도회 성지들을 많이 갔는데, 수녀님의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의미가 깊었다. 무엇보다도 수녀님들과 함께 다니니 장소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의 사람들을 보고, 만나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팡쥬 시민으로서 성지들을 가꾸고 널리 알리고자 노력하시는 평범한 시민 아저씨, 성당을 구석구석 열심히 빗질하시던 할머니, 거리를 걷고 있던 수녀님들을 반기며 박물관 내부로 초대해준 큐레이터까지. 종교는 언제나 내게 의문이며 숙제 같은 것이지만, 이럴 때는 한없이 스며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DSC03646001.JPG 벽 안에 박혀 있는 벽시계

그런 고민들과 상관없이, 카르카손의 살랑이는 바람과 팡쥬의 빗방울들과 함께 한 기억들이 여전히 내게 선명히 남아있다는 것이 좋다. 점심 식사를 할 수저가 부족해 수녀님께서 식용 나뭇가지를 꺾어와 임시 젓가락을 만들어내신 것, 브라질 수녀님들을 씌워드리던 내 작은 우산이 바람에 몇 번이고 뒤집혔던 것, 중간중간 수녀님과 여행 얘기와 기숙사 친구들 얘기를 나눈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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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로 돌아가는 길에는 해바라기 밭에 잠시 들렀다. 전날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내려올 때에도 계속 보았던 해바라기 밭이었다. 이 지방 전역을 뒤덮고 있는 듯했다. 사진으로 표현되지 않는 그 샛노란 색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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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메모 #

* 먼 과거의 신비로운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가르침이, 누군가에게는 지표가 되어 계속해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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