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59, 160 - 프랑스 보르도(Bordeaux)
2017.07.10, 11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오랜만에 만나는 보르도의 모습이 맑지 않고 흐려서 아쉬웠지만, 내가 이곳에 지낼 때에도 늘 맑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원래 계획대로 바쁘게 다녔다. 내가 살았던 곳, 다녔던 학교, 모든 곳들을 들렀다.
가장 먼저 트램을 타고 내가 살았던 건물에 갔다. 학생들을 위한 저렴한 임대용 숙소인데, 내가 살았을 당시에도 별다른 편의시설 없이 숙소 건물들만 덩그러니 있었다. 내 기억 속 건물은 더 컸는데, 다시 보니 생각보다 그 규모가 크지 않았다.
다음은 학교. 트램을 타고 가기도 하고 그냥 걸어가기도 했는데, 트램을 탄다 해도 정류장에서 꽤 걸어 들어가야 해서 웬만하면 걸어 다니곤 했다. 이번에도 폭우를 뚫고 학교까지 걸어갔다. 학교 건물은 많이 달라져 있었는데, 학교 이름이 바뀜에 따라 디자인도 달라져있었다. 그렇지만 학교 자체에는 큰 애정이 없었던 탓인지 조금 낯설었을 뿐, 딱히 아쉽지는 않았다.
트램 정거장은 그대로였으니 괜찮았다. 학교에서 트램 정거장까지는 15분 정도 풀밭을 걸어가야 한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이곳에서 트램을 타고 시내로 나가는 날들이 많았다. 보르도에 산 이후로 나는 트램이 있는 도시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바깥 풍경을 볼 수 있으면서 버스보다 덜 흔들리고, 지하철보다 깨끗해서 좋다.
그렇게 트램을 타고 전날 밤에 갔던 대극장 앞에 또 갔다. 날은 여전히 흐렸지만 비가 그쳐서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곳에 다시 온 이유는 점심을 먹기 위함이었다.
'랑트르꼬트(L'Entrecôte)'라는 식당에 갔는데, 파리의 유명한 '르 흘래 드 랑트르꼬트(Le Relais de l'Entrecôte)'의 체인점이라고 볼 수 있다. '앙트르꼬트'는 갈빗살을 뜻한다. 역시나 이날도 대기 줄이 있었지만, 다행히 20분 만에 앉을 수 있었다. 익숙하게 종종 갔던 이 식당의 스테이크가 우리나라의 한 방송에 나와 '권혁수 스테이크'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나와 그 시절 친구들의 추억이 얽힌 곳에 다른 누군가의 이름을 딴 별명이 생겼다고 하니 기분이 오묘했다.
식사 후 또다시 추억 찾기 놀이를 이어갔다. 정면에 보이는 곳은 보르도 대성당이다.
대성당으로 향하는 길에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몰라(Mollat) 서점이다. 파란 문틀과 창틀이 인상적인 곳. 예전에도 컸지만 지금은 더 확장한 것처럼 느껴졌다.
예전에도 그랬듯, 일부 서적에는 서점 직원들의 추천 메모가 붙어 있었다. 한국 서적으로는 김영하 작가의 소설 두 편에 붙어 있었고, 특히 <살인자의 기억법>에는 상상 이상의 소설이라고 강조되어 있었다. 옆에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도 놓여 있었다.
공사 중인 대성당은 아쉽게도 그냥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곳 앞에서도 종종 앉아있던 기억이 있다. 주말에는 이곳에 앉아있다 보면, 성당 내부에서 결혼식을 하는 것도 보곤 했다.
성당에 못 들어간 대신 성 카트린 거리(Rue Sainte-Catherine)가 시작되는 빅투아르 광장(Place de la Victoire)으로 향했다. 성 카트린 거리는 쇼핑 거리로 유명하다. 꽤나 긴데, 대부분 SPA 브랜드 또는 브랜드가 없는 저렴한 물건들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주로 위치하고 있다.
예전에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없었던 것 같기도 한 쇼핑센터도 지나고,
한가롭게 사람들이 산책하거나 앉아서 쉬는 작은 공원들도 지나서
오늘도 역시, 보르도라면 하루에 한 번은 방문해야 하는 '물의 거울(Miroir d'eau)로 발걸음이 향했다.
이날은 아이스크림에다가 카날레(Canelé)까지 사들고 갔다. 카날레는 보르도에서 주로 먹는 빵 종류로 쫀득쫀득하고 달착지근하다. 초콜릿이 덮인 것도 있길래 함께 사봤지만, 역시 오리지널이 더 맛있었다.
하루 종일 비가 오다 말다 해서 하늘에 구름이 가득했다. 그래도 그 틈 사이로 보이는 밝은 하늘색과 그 모든 것이 반사되는 물이 참 예뻤다. 구름이 가득했기에 반사된 풍경이 더 멋졌던 것 같다.
비가 와서 그런지 전날보단 물이 조금 더 차 있었다. 하지만 저녁에는 더 이상 비가 내리지 않아 밤의 야경은 전날 밤과 같아 아쉬웠다.
마지막 날, 나는 나와 같은 일정으로 같은 방을 썼던 호스텔 친구 니나와 꽤 친해져 있었다. 우리는 함께 물의 거울로 가서 1시간 정도 수다를 떨었다. 니나는 곧 공항으로 향해야 해서 떠났고, 나는 혼자서 점심을 먹고 조금 더 산책하다 공항으로 향했다.
오후는 생각보다 굉장히 피곤하게 흘러갔다. 우선 트램이 너무 늦게 오는 바람에 기차역에서 출발하는 공항버스를 놓칠 뻔했다. 트램에서 내리자마자 달려서 출발 2분 전에 겨우 탑승했다. 공항에 도착해보니 온라인 체크인을 했는데도 짐을 따로 부치는 곳도 없고 카운터도 겨우 두 개 열려있었을 뿐이라서, 1시간 반 가까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그렇게 고생해서 도착한 곳은 더블린이었으니,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더 이상 피곤하지 않았다. 아일랜드 역시 프랑스처럼 그리워서 다시 가는 곳이었기에.
# 사소한 메모 #
* 프랑스에는 그리운 곳들이 너무나 많다. 다시 찾고 싶었던 곳들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앞으로 보게 될 새로운 풍경들을 기대하며 떠난다. 언젠가 자동차로 일주를 할 날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