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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어느 날

Day 169 - 네덜란드 히트호른(Giethoorn)

by 바다의별

2017.07.20


네덜란드 여행 마지막 날. 원래는 친구가 추천해준 암스테르담 식당에서 팬케이크나 먹을까 했는데 아침 식사 중 갑작스레 히트호른에 다녀오는 것으로 계획이 변경되었다. 민박집이란 그런 곳이다.

나처럼 이날이 마지막 날이었던 분과 함께 갔다. 사실 민박집 주인께서는 며칠 전부터 이곳을 추천하셨는데, 우리가 계속 망설였던 이유는 암스테르담에서 히트호른까지는 꽤 먼 거리를 가야 했기 때문이다. 기차로 1시간 반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30분가량 가야 한다.

게다가 전날부터 비가 오고 흐려서 생각만큼 예쁘지 않을까 봐 걱정했던 것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모두 기우였다. 날은 흐렸지만 독특한 집들도, 정원의 꽃들도, 네덜란드의 베니스라 불리는 물길들도, 모두 예뻤다.

누군가의 지붕을 보며 감탄하고, 누군가의 정원을 사진으로 남기고, 누군가의 집을 다른 집과 이어주는 다리들을 건너다보니, 작은 배를 빌려서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운전대를 잡고 모는 것이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산책만 하고 가기에는 왠지 아쉬워졌고, 다행히 함께 간 분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곧장 마을 입구로 되돌아가 배를 빌리기로 했다. 혼자 갔다면 분명 산책만 하다 돌아왔을 텐데 둘이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배는 세 종류가 있었는데, 자동차처럼 핸들을 잡고 속력과 방향을 조종하는 것, 핸들 대신 뒤에 있는 모터를 잡고 방향을 조종하는 것, 그냥 노를 저으며 가는 것 중 우리는 핸들이 있는 배를 빌렸다. 가장 비싸긴 했지만 동시에 가장 안전한 방법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빌리는 시간에 따라서도 가격이 달라졌는데, 1시간 코스로 마을 내부만 보는 것이 있었고 2시간 코스로 마을 옆 호수에서도 시간을 보내고 올 수 있는 코스가 있었다. 우리는 일단 1시간 코스로 예약을 하고 혹 마음이 바뀌면 2시간을 타고 오기로 했다. 위 사진 속 배와 똑같은 배를 빌렸다.

평소 낚시가 취미라던 그분이 처음 절반을 먼저 운전하기로 했다. 마을 내부는 배가 많아서 꽤나 복잡했지만 호수로 나가니 배도 별로 없고 넓게 탁 트여있어서 좋았다.

나는 이런 풍경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2시간 코스로 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니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그런 고민도 잠시, 그분은 "여기 너무 좋은데요?"라고 먼저 말을 해주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마을로 돌아가자'라고 말을 하는 동행이었다면 굉장히 아쉬웠을 텐데, 다행이었다.

나는 모코로를 타고 물소리와 풀 소리만을 느낄 수 있었던 보츠와나의 오카방고 델타를 떠올렸고, 토론토에서 어학연수를 했었다는 그분은 내가 가보지 못했던 알곤퀸 국립공원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렇게 각자의 기억에 취해, 이곳의 고요함에 취해,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 갑자기 폭우가 내렸다. 내가 비를 맞지 않을 때에는 금방 그치는 것처럼 보였던 비가 내가 맞을 때에는 왜 이렇게 그치지 않는 것인지. 우산을 쓰고 있었지만 워낙 많이 쏟아져서 머리만 겨우 가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칠 듯하다가도 이내 또 쏟아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외딴곳에서 조그마한 배를 타고 비까지 맞는 것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우리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겨우 비가 그치고 나니 하늘은 쨍하게 맑은 날보다 예뻐졌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데, 하늘도 훨씬 예뻐지기 마련이다. 비 오는 날들을 계속해서 마주하고 나니,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보다는 비의 흔적이 뭉게구름으로 남아있는 하늘이 더 예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가 그친 뒤에는 내가 교대해서 배를 운전해보았다. 생각보다 예민해서 속도와 방향을 조절할 때 연습이 조금 필요했지만 어딘가에 부딪칠 염려가 없었으므로 자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배를 모는 것에 점차 자신감이 붙어 자동차 운전도 이렇게 쉬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마을로 들어오자마자 수많은 배들에 당황해 무려 4중 추돌을 일으키고 말았다. 후진하는 법을 몰라 급히 다시 교대했다. 역시 나는 운전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뱃멀미를 심하게 하는 내가 이렇게 직접 배를 몰아보게 될 줄이야. 역시 여행은 모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미래를 궁금해해서 계획 세우는 것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결국 살면서 즐거움을 주는 일들은 대체로 계획된 일들이 아니라 예상치 못했던 일들인 것 같다.

물론 히트호른에 오지 않았더라면 이곳의 매력을 몰랐을 테니 아쉬울 것도 없었을 것이다. 암스테르담 시내에서도 충분히 즐거운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흠뻑 젖게 된 순간 나는 팬케이크를 먹는 대신 배를 타게 돼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사소한 메모 #

* 여행 중에는 날씨를 훨씬 더 신경 쓰게 된다. 그만큼 예보도 자주 찾아보게 되지만, 하늘도 자주 올려다보게 된다. 하늘이 멋진 곳들은 특히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런 하늘들은 대체로 무언가를 쏟아낸 뒤에 볼 수 있다.
* ♬ Nickelback - Far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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