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떤 가해자의 나라

Day 170, 171 - 독일 베를린(Berlin)

by 바다의별

2017.07.21, 22


네덜란드 여행 후 폴란드로 향하는 길, 비행기보다는 기차가 좋을 것 같아서 딱 중간지점에 있는 베를린에 잠시 들러보기로 했다. 사실 오래전 프랑크푸르트와 하이델베르크 등 그 근교 도시들에 갔었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독일의 매력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도 독일은 굳이 포함시키지 않았고, 베를린 역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파리도 누군가에게는 그냥 냄새나는 도시이듯 미묘한 취향 차이인 것 같다.

DSC04726001.JPG

암스테르담에서 5시간, 베를린에 도착한 첫날은 숙소에서 푹 쉬기로 했다. 실질적으로 구경할 날이 하루뿐이었지만, 베를린은 왠지 보너스로 얻게 된 곳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급하지는 않았다.

DSC04725001.JPG

다음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여유롭게 나와, 숙소 앞 베를린 장벽의 흔적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뼈대만 남아있지만, 이들의 분단 역사를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다.

DSC04744001.JPG

그리고는 유명한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로 향했다. 이곳은 일부 남은 장벽에 아티스트들이 그림을 그려놓은 곳이다. 그림들이 독특하고 색감도 화려하고 강렬해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DSC04762001.JPG

사실 이 그림들보다 더 유명한 건 나이 든 두 남자가 키스하는 그림인 <형제의 키스>라는 작품인데, 그 작품을 구경하다가 그리고 그 앞에 모여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결국 사진은 찍지 않은 것 같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우습게도 가끔 사진 찍는 걸 까먹을 때가 있다.

DSC04774001.JPG

버스를 타고 알렉산더 광장(Alexanderplatz)으로 향했다. 보통 유럽에서 보기를 기대하는 아기자기한 광장이 아니라서 아쉬웠다.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한 뒤 남산타워가 떠오르는 TV타워를 향해 걸어보았다. TV타워는 왜 이름이 TV타워인가 했더니 TV송신탑이라고 한다.

DSC04781001.JPG
DSC04788001.JPG

그 앞에 있는 만국 시계도 재미있었고, 번지점프를 하는 건너편 빌딩도 볼만했다. 번지점프는 아니고, 아무래도 도심에서 하는 것이다 보니 안전상 양쪽에 줄을 매달아 방향과 속도를 조금씩 조절해 떨어지는 듯했다. 그럼에도 아찔했다.

DSC04793001.JPG

오전 내내 흐리더니 슬슬 날이 개기 시작했다. 흐린 날엔 웬만하면 우산을 챙겨 나오지만 가능하면 펼칠 일이 없기를 바란다. 알렉산더 광장에서 색감이 예쁜 성 마리아 교회를 지나, 베를린 돔(Berliner Dom)으로 향했다.

DSC04810001.JPG

베를린 돔은 베를린 대성당으로, 베를린에서 가장 큰 기대를 했던 곳이다.

DSC04812001.JPG

베를린 돔은 여러 박물관들이 모여있는 박물관 섬(Museum Island)에 있다. 시간적 제약으로 그 어떤 박물관에도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이곳만큼은 오랫동안 감상했다. 낡은 느낌도, 색도, 굉장히 묵직하게 느껴졌다.

DSC04819001.JPG

앞에는 분수가 힘차게 올라오고 있었고 뒤로는 TV타워가 빼꼼히 보였다.

DSC04827001.JPG

그 앞 풀밭 광장도 상쾌했다. 분수대와 돔이 잘 보이는 곳에 앉아 오랫동안 분수 소리와 종소리를 들었다. 대성당의 웅장함이 쉽게 떠날 수 없게 만들었다.

DSC04843001.JPG

날이 다시 흐려지기 전에 서둘러 다시 일어섰지만, 비를 피할 수는 없었다. 비는 오다 그치다 했는데, 한 번은 너무 심하게 폭우가 내려 니베아(Nivea) 매장에 들어가 한참을 구경하기도 했다.

DSC04849001.JPG

그렇게 비를 맞기도 하고 피하기도 하다가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 gate)에까지 도착했다. 이날 이곳에서는 LGBT(성적 소수자) 퍼레이드가 있어서 사람이 더 많았다.

DSC04852001.JPG

빗길을 뚫고 더 멀리까지 걸어갈 자신은 없어서, 베를린 시내 배회를 마치고 내가 꼭 가고 싶었던 곳, 홀로코스트 메모리얼(Holocaust Memorial)로 향했다.

DSC04861001.JPG
DSC04867001.JPG

전시실은 지하에 위치해 있고, 입구 앞에는 2천여 개의 회색 블록들이 서 있었는데 무덤 같은 느낌이었다.

DSC04869001.JPG

두려움에 떨던 사람들의 일기나 편지 내용들이 전시되어 암스테르담에서 갔던 '안네의 집'이 떠올랐다. 또한 유대인 가족들의 사진을 전시해 하나의 가족이 어떻게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는지, 이중 누가 어디서 죽었는지에 대한 것들까지 설명되어있어 더욱 가슴 아팠다.

DSC04873001.JPG

전시실 한구석에는 어두운 방이 하나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화면에는 희생자 이름, 출생연도와 사망연도가 나타났고 독일어와 영어로 번갈아가며 간략하게 그 사람의 사연이 흘러나왔다. 이런 방식으로 지금까지 6년 넘게 상영 중이라는데, 지금도 계속해서 희생자들의 정보,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있다고 하니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다.

DSC04875001.JPG

가장 기억에 남은 건, 바로 이곳이다. 수화기를 들어 각 수용소 별로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볼 수 있었다. 전부 다 들어보려고 했는데 너무 끔찍하고 소름 끼쳐서 4개까지밖에 듣지 못했다. 가장 가슴이 아팠던 건 자신의 어머니와 두 아들과 함께 수용소에 들어갔던 한 여자의 증언이었다. 수용소에 도착하자마자 이들은 두 개의 팀으로 나뉘게 되었는데, 한쪽은 노동을 할 사람들, 다른 한쪽은 노약자들로 모았다고 한다. 그녀의 둘째 아들은 너무 어려서 바로 노약자 그룹으로 가게 되었고, 첫째 아들과 어머니 역시 그녀가 강력히 이야기해 그쪽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은 노동을 하게 되더라도 자식들과 어머니는 편히 있기를, 자신의 자식들을 어머니가 돌봐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그쪽은 가자마자 다 죽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당시 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던 군인이 웃으면서 곧 몇 주 후에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했다는데, 정말 모르고 한 소리였을까 알면서도 끔찍한 거짓말을 한 것일까? 그 여자는 자기 잘못이 아님에도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괴로워해야 했다.

DSC04877001.JPG
DSC04878001.JPG

그런 끔찍한 이야기들을 읽고 들은 뒤 밖으로 다시 나오니 비가 한 차례 내렸다 갔음을 알 수 있었다. 빗물에 색이 더욱 짙어진 이 회색 무덤들은 더욱 아파 보였다. 나는 자연스레 일본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폴란드에서 아우슈비츠에 가볼 생각은 했어도, 이렇게 베를린에서, 가해자의 나라에서 이런 전시를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언론을 통해 종종 들었어도, 이렇게 자신들의 만행을 가감 없이 인정하고 반성하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려는 모습을 직접 보니 그 느낌이 또 새로웠다.

DSC04889001.JPG 포츠담 광장(Potsdamer Platz)에 있는 한반도 통일을 염원하는 통일정

진실은 외면한다고 없어지지 않고, 가해자가 입을 열지 않는다고 해서 피해자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의 잘못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을 달갑게 여길 자는 없다. 그러나 마주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비난을 각오하면서도 용서를 구하고 반성을 하는 것이다. 그러기를 원한다.


DSC04822001.JPG
# 사소한 메모 #

*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다 둘러본 뒤 밖으로 나와 처음 들었던 생각 - "아, 여기 독일이었지?"
* 이번 여행 가장 감명 깊은 순간들 중 하나를 독일에서 찾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언젠가,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