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74, 175 - 폴란드 크라쿠프(Krakow)
2017.07.25, 26
바르샤바에서 버스를 타고 6시간 반 정도 지난 뒤 크라쿠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째 이동하는 날마다 폭우였다. 그래도 크라쿠프에는 이슬비만 가볍게 내리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크라쿠프 호스텔은 여행 중 묵었던 숙소들 중에 가장 재미있는 숙소였다. 6인실 혼성 도미토리가 하룻밤 2만 원도 채 되지 않았고, 거기다 조식에 석식까지 제공해주니 무료 숙박이나 다름없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숙소에서 제공해주는 맥주로 술 게임을 하다가 밤 11시가 되면 쉴 사람들은 쉬고, 아쉬운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 술집들을 돌아다니다 오는 것이 매일 밤의 풍경이었다.
첫날 저녁 피곤했던 나는 식사만 함께 하고 들어가서 쉴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술 게임에도 참여를 하게 되었고, 그 뒤에는 같은 방을 쓰는 친구가 자꾸만 꼬드겨서 결국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덕분에 내가 크라쿠프에서 맨 처음 보게 된 풍경은 반짝이는 야경이었다. 비록 휴대폰으로 촬영해서 화질이 좋지는 않지만, 오래전 프랑스에서 처음 만났던 친구가 추천해주었던 바로 그 여행지에 이제야 서 있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나는 늘 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여행하면서 깨달은 건 항상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이었다. 때로는 조금 외롭더라도 조용히 혼자 있고 싶을 때도 많았고, 지나치게 적극적인 사람을 만나게 될 경우 오히려 피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한두 명을 만나는 것은 좋아하지만, 애매한 불특정 다수와 함께 단체로 무언가를 하는 것은 그다지 즐기지 않았다.
그런데 네덜란드와 독일에서는 한인 민박에 있었고, 바르샤바에서는 호텔방에 홀로 있다 보니 오랜만에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하는 호스텔이 반가웠다. 저녁 식사를 하며 몇몇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게임을 통해 더 많은 친구들과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면서 밤중에 다 같이 술집까지 가게 된 것이다. 그날 많이 취했던 우리는 누군가 말 한마디만 던져도 깔깔거리며 웃었다. 가라오케가 있는 술집에서 누군가 자신 있게 노래를 불렀을 때는 모두가 알지도 못하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망설이던 나를 계속 부추겨서 데리고 나온 친구는 대만에서 온 스물두 살 타미였는데, 동그란 눈이 어찌나 귀여웠던지 같이 가자던 그 표정을 쉽게 외면할 수가 없었다. 같은 날 도착해 같은 방을 쓰다 보니 며칠 사이 굉장히 친해졌다. 혼자 한 달간 동유럽 여행을 하러 온 그 아이는 이날 아주 신나게 놀더니 결국 과음을 하고 다음날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그래도 어려서 그런지 내가 떠날 때까지 타미는 밤마다 이 축제에 열심히 참가했다. 그리고 내가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했던 마지막 날, 내 짐 사이에는 엽서가 한 장 꽂혀 있었다. 밤새 놀다 새벽 3시에 들어온 타미가 내게 엽서를 쓰고 잔 것이다. 그 후 나는 다른 도시에서 답장을 보내주었다.
친구와 함께 온 도미닉은 특유의 영국 억양이 매력적이었고 배려심도 넘쳤다. 신사의 나라라는 영국에 직접 갔을 때에는 신사를 만나지 못했는데, 이곳에서 만났던 도미닉은 처음으로 만난 영국인 신사였다. 목소리도 좋아서 여러 명이 모여있을 때에도 그가 말을 하면 왠지 모르게 고개가 그쪽으로 돌려지는 힘이 있었다. 내 여행에 가장 크게 관심을 가졌던 친구이기도 한데, 게임을 하다가도 생각나는 게 있으면 계속 내게 질문세례를 하곤 했다.
미국에서 기타를 메고 온 친구는 매일 거리로 나가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는데, 매일 저녁 그가 얼마를 벌어왔는지 물어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그 외에도 농구선수만 한 키의 노르웨이 친구도 있었고, 아프리카에서 만났던 친구들만큼이나 유쾌했던 호주 친구도 있었고, 술만 마시면 흥을 주체할 수 없던 네덜란드 친구도 있었다. 평소 한국에서는 누구를 만나더라도 웬만해선 밤 12시를 넘기지 않는 내가, 처음 만난 사람들과 함께 새벽 2시의 크라쿠프 광장을 뛰어다녔다.
뛰어다닌 것 말고 또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다음날 우리는 서로를 다시 마주칠 때마다 각자의 사진첩에 몇 장의 사진이 새로 생겼는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누가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날 밤 우리는 각자의 휴대폰으로 의미 없는 셀카를 정말 많이 찍었다. 내 사진첩에는 42장의 새 사진이 저장되어 있었다.
# 사소한 메모 #
* 사람을 만난다는 건 조금의 양보가 필요한 일이다. 나는 늘 내 시간을 양보하는 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막상 양보하고 나면, 내가 잃은 것은 별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새로운 사람이든 오래된 인연이든,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대체로 낭비일 수 없는 선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