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예쁨과 아픔이 공존하는 도시

Day 175, 176 - 폴란드 크라쿠프(Krakow)

by 바다의별

2017.07.26, 27


느지막이 일어난 아침에 커피 한 잔으로 잠을 깨우고 밖으로 나갔다.

다소 들뜬 마음으로 숙소 근처의 성벽을 구경하다 구시가지 광장으로 향했다.

하늘이 푸르렀고 햇빛도 강렬해서 그 해를 가린 구름이 더 예쁘게 빛나고 있었다.

전날 밤 야경으로 먼저 만났던 광장을 낮에 다시 걸으니 새로웠다. 밤에는 보지 못했던 수많은 인파와 비둘기들이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확실히 크라쿠프는 바르샤바보다 북적거렸고 관광지 같았다. 바르샤바에서는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할 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한적하고 관광객이 많지 않았는데, 이곳에서는 잠시 서 있기만 해도 말을 거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광장 한가운데에 위치한 시장에도 들어가 보고 여러 사람이 앉아 있는 벤치에도 앉아있다가, 오랜만에 성당 내부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광장에 우뚝 서 있는 성 마리아 성당(St. Mary's Basilica)은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가야 하는데, 사진 촬영을 원할 경우 돈을 더 지불해야 한다. 폴란드 물가가 워낙 저렴해서 나는 그냥 돈을 지불하고 사진 촬영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역시 후회는 없었다. 반짝이는 성당의 내부는 눈으로만 보아도 충분히 멋졌지만 사진으로 남겨두어 이렇게 지금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참 좋다.

광장 구경을 마치고 구시가지 남쪽으로 걸어 내려가 보았다. 이곳은 바벨성(Wawel castle)인데, 이곳 역시 광장처럼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다.

바벨성은 13세기경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오랫동안 폴란드 통치자들의 거주지였다가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박물관은 더 이상 흥미가 생기지 않아서 웬만하면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나는 곧장 대성당으로 향했다.

우측에 보이는 것이 바벨 대성당(Wawel Cathedral)이고, 뒤로 살짝 보이는 우뚝 솟은 것이 지기스문트 종탑(지그문트 종탑, Sigismund Tower)이다. 마침 구름이 많이 드리워져 본래의 고풍스러운 모습에 위엄이 더해졌다.

왼쪽에 솟은 것이 지기스문트 종탑이다. 사실 나는 종탑에 올라갈 수 있는지 몰랐다. 알았다면 위에 올라가서 크라쿠프의 전망을 보았어도 좋았을 텐데, 오후에 있는 유대인 지구 무료 투어에 참여하고 싶어서 내부에는 들어가지 않고 광장 쪽으로 되돌아갔다.

가는 길에 바벨 성을 가로지르게 되었다. 내부에 들어와 보니 밖에서 상상했던 것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

이제 맑은 크라쿠프를 떠나, 어두운 크라쿠프를 구경했다. 크라쿠프의 유대인 지구인 카지미에쥬(Kazimierz)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배경이자 촬영지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유대인 교회당과 곳곳에 다윗의 별이 있는 이곳은, 나치의 대학살 이전까지만 해도 유대인들이 모여서 굉장히 잘 살던 곳이다.

유대인 지구에는 예쁜 카페들도 많이 있다. 영화 촬영지와 더불어 그런 골목들의 사진을 꽤 많이 찍었는데, 휴대폰에는 랜덤으로 일부만 옮겨두다 보니 남은 사진들은 이것뿐이라 너무나 아쉽다.

유대인 지구에서 다리를 건너면 게토(Ghetto)가 나온다. 유대인 지구가 곧 게토가 아닌가 했더니, 유대인 지구는 나치가 탄압하기 전에 그들이 정착하며 살던 곳이고 게토는 나치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주하게 된 곳이라고 한다. 지금의 게토는 과거의 모습이 거의 남아있지는 않다.

지나가다 발견한 건 폴란드인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이 되었을 때 그려진 벽화였는데, 평화를 상징하는 듯하다. 하지만 바티칸을 의미하는 종/확성기 아래의 사람들이 굉장히 맹목적인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또 반드시 긍정적인 의미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의미심장한 벽화다.

이날 최종 목적지는 바로 이곳이었다. 최종 목적지라고 하니 가슴 한편이 찡하다. 이 의자 조형물들은 희생된 유대인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유대인들이 모두 죽거나 수용소로 끌려가고 그들의 의자만 남은 걸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흐린 날씨에 의자들이 더욱 쓸쓸해 보였다. 꽤 큰 광장에 이렇게 수십 개의 의자를 설치함으로써 크라쿠프 한쪽에 그들만의 자리를 영원히 만들어둔 것 같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다시 광장에 들렀을 때는 비눗방울 아저씨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고 있었다.

나 역시 들떠서 온갖 크기의 비눗방울들을 구경했다. 차마 아이들처럼 아저씨를 쫓아다니지는 못했지만 빙글빙글 돌면서 둥둥 떠다니는 방울들을 계속해서 구경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들 비눗방울들에 신나서 광장이 시끌벅적했다.

그리고 정말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이번에는 성 마리아 성당 탑의 창문이 하나 열리더니 누군가가 트럼펫을 경쾌하게 연주하기 시작했다. 성 마리아 성당은 보통의 성당들처럼 종을 쳐서 시간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나팔수가 등장한다더니, 정말이었다. 크라쿠프 구시가지 관광을 마무리 짓는 소리였다.


# 사소한 메모 #

* 도시도 사람 같다. 여러 사건들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러니 현재의 모습뿐 아니라 과거의 모습도 봐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
* 나는 못 먹는 음식도 없고, 싫어하는 음식도 거의 없는데, 이상하게 폴란드 음식은 계속 실패했다. 딱 하나 완벽하게 성공한 메뉴는 다음 글에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반가워, 만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