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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 것, 생각하기를 멈추지 말 것

Day 176 - 폴란드 오시비엥침 (아우슈비츠)

by 바다의별

2017.07.27


'다크 투어리즘'이란 비극적인 역사 현장이나 재해, 재난 현장을 방문하는 여행을 뜻한다. 뉴욕의 9·11 테러 현장이나 우리나라의 서대문형무소 등을 떠올리면 되는데, 아마 세계적으로 가장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 장소는 아우슈비츠 나치 수용소(Auschwitz)일 것이다. 폴란드어로는 오시비엥침(Oswiecim)이라 불린다.

DSC05167001.JPG 수용소 입구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뉴욕에서도 느꼈지만, 이런 곳에 서 있으면 복합적인 감정이 밀려온다. 참혹한 현장을 보고 역사를 배우기 위해 온 것임에도 이걸 보는 것 자체가 아픔을 구경하는 것 같아서 희생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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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목격하러 온 거예요.

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이런 심정을 알아차린 듯, 가이드는 투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강조했다. 여러분은 이곳에 관광하러 온 것이 아니라, 역사를 목격하러 온 것이라고.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 끔찍함을 확인하러 온 증인들이라고.


글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이곳이 간직한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잔혹했다. 지금은 전시실로 사용되고 있는 수용소 건물들 하나하나에 들어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희생자들이 겪어야 했던 일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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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유대인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이 유대인이었으니 이렇게 쓴다) 수용소에 도착하면 줄을 서서 '분류되기를' 기다린다. 건장한 젊은이들은 노동을 하는 곳으로 끌려가고, 나머지는 '샤워실'로 가게 된다. 나치군은 그들에게 씻기 전 각자의 짐과 옷을 잘 관리할 것을 지시한다. 그들은 각자의 가방에 큼직하게 이름을 적고, 샤워 후 다시 입어야 할 옷 또한 조심스레 벗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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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그들이 두고 간 가방과 옷들이 모두 20분 뒤면 유품이 되리라는 것을. 죽은 이들의 짐가방들이 전시된 곳에서 나는 가장 큰 분노와 비통함을 느꼈다. 가방뿐만이 아니었다. 이리저리 짓밟힌 그들의 신발과 새로운 곳에서 살게 될 것이라며 열심히 싸 왔을 식기들까지. 대부분의 것들은 모두 사진 촬영이 가능했는데 숨이 막혀 셔터를 누를 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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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촬영이 불가능했던 건 가장 충격적인 것이었는데, 죽은 여자들의 머리카락을 모아둔 것이었다. 여자들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나치는 이들의 머리카락으로 직물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군인들의 양말 등을 짰다. 혹 머리카락이 전시된 모습이 궁금한 사람은 구글에서 검색하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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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에는 끔찍한 사진들도 많이 있었다.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서는 끔찍한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꺼버렸다면, 여기서는 가이드 통솔에 따라 단체로 다니는 것이다 보니 중간에 무언가를 보지 않거나 듣지 않기란 쉽지 않았다. 간혹 아이를 데리고 온 관람객들도 보였는데, 만일 중고생 이하의 어린아이들이 이곳을 제대로 관람한다면 교육이 아니라 트라우마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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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 밖으로 나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위 사진 속 벽은 '총살의 벽'이라 불리는 곳이다. 근처에는 양팔을 묶어 매달아두는 고문 기구도 있었는데, 그렇게 몇 시간을 바닥에서 떨어져 위에 매달려있으면 팔이 탈골되기 일쑤였다고 한다. 탈골된 사람에게는 일을 시킬 수 없으니 결국에는 총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그 밖에도 1㎡ 남짓 되는 방에 대여섯 명을 적게는 3일에서 많게는 3주 이상 세워두는 고문도 있었다고 한다. 서대문형무소에서도 비슷한 고문 기구들을 봤었는데, 육체와 정신을 한 번에 무너뜨리는 정말 극악무도한 형벌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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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과 저녁에는 점호를 하는데, 이것 역시 꼬투리를 잡아 고문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인원수가 모자라다는 이유로,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19시간 넘게 세워두는 일도 있었고 한겨울에 신발도 없이 맨발로 서 있게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극소량의 식사와 과로로 인해 조금만 길게 서 있어도 쓰러져 죽는 일이 허다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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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투어는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와 제2수용소로 나누어 진행되는데, 제1 수용소 투어가 끝날 때쯤 모두들 표정이 극도로 어두워졌고 불안해 보이는 사람도 있었으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초반에 종종 있었던 질문도 어느 순간 끊기고 모두 조용했다. 물론 뉴욕 9/11 메모리얼 파크에서 봤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웃고 떠들며 승리의 V자를 만들어 셀카를 찍는 멍청이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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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제1수용소 투어를 마친 우리는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Auschwitz-Birkenau)라 불리는 제2수용소로 향했다. 제1수용소가 박물관 같았다면 제2수용소는 당시의 참혹함을 보다 더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제2수용소에 놓여 있는 철로는 유대인들을 '운반'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가이드의 말을 빌리자면, 철도가 여기서 끝나듯 희생자들의 꿈과 삶도 이곳에서 모두 끝이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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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침대를 각 층에 6~7명씩, 총 20명이 썼다고 하니 지옥이 있다면 이곳이 지옥일까. 그 어디에도 꼿꼿하게 앉아있을 수 있는 곳이 없으니 마치 관 속 같았다. 이 밖에도 가스실에서는 가스가 없는데도 숨이 막혔고, 화장터에서는 아무것도 타고 있지 않은데도 눈물이 글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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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만 1백50만 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수용소는 유럽 전역에 천 개 이상 만들어졌고, 나치는 그렇게 2백7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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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 독일 태생의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녀는 홀로코스트를 주동했던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면서, 나치의 학살에 가담한 사람들이 광적인 정신이상자가 아니라 그저 상부의 명령에 따른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아이히만의 정신상태는 지극히 정상이었으며, 오히려 누구보다도 법을 잘 지키며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홀로코스트에 가담했고, 심지어 적극적이었으며, 전후에도 그 어떤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누구나 내면 속에 비인간성, 혹은 비인간성이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시험대에 오른다. 그렇기에 건강한 환경과 반복된 학습이 매우 중요하며,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에 맹목적으로 휩쓸리지 않을 신념이 필요하다. 한나 아렌트의 말에 의하면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그러니 어떤 상황이 닥쳐도 생각하기를 포기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기를 멈추지 말 것. 언제나 능동적인 자세로 의문을 가질 것. 다시는 이런 역사가 세상 어디에서도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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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메모 #

*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이곳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 '(우리는) 볼 수는 있지만 보지는 않는 눈먼 사람들.' -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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