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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망졸망, 아기자기

Day 180,181 - 체코 체스키 크룸로프(Cesky Krumlov)

by 바다의별

2017.07.30, 31


프라하에서 체스키 크룸로프로 이동하는 날, 정말 정신없는 오전을 보냈다. 프라하에 버스 터미널이 두 곳이 있다는 걸 몰랐던 나는, 당연히 내가 내렸던 터미널에서 다시 타면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아무래도 동생과 함께 있으니 내 긴장이 잠시 풀렸던 것 같다. 엉뚱한 터미널에 갔다가 다시 제대로 된 곳으로 가기까지 시간이 촉박해 어찌나 마음을 졸였던지. 다행히 겨우 버스를 탈 수 있었지만, 동생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래도 버스에 타서 다시 긴장이 풀렸는지 흥건해진 땀을 제대로 식히기도 전에 잠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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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키 크룸로프에서도 한인 민박집에 머물렀는데, 방이 정말 좋았다. 방마다 100년 넘은 가구들로 채워져 있었던 500년 된 건물은 아기자기함과 고풍스러움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었다. 오래된 가구들로 방은 우아했고 창밖으로 체스키 성도 보여서 전망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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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는 워낙 작아서 금방 다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뜨겁도록 더웠지만 풍경이 예뻤으니 참을 수 있었다. 우리는 굉장히 작은 광장에 들러 즉석 아이스크림을 먹고 체스키 성으로 향했다. 얼린 과일을 고르면 바로 우유 등으로 추측되는 것과 함께 갈아서 셔벗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어주는 방식이었다. 뛰어난 맛은 아니었지만 시원해서 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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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이 북적거리는 '이발사의 다리'를 건너 체스키 성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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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사의 다리'라는 이름이 붙게 된 데에는 다소 잔인한 이야기가 얽혀 있다. 이곳 영주의 아들(또는 왕의 아들)이 이발사의 딸에게 반해 결혼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정신병을 앓고 있었고, 결국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자신이 죽인 것을 잊어버린, 혹은 잊은 척한 그는 이곳 마을 사람들 중 범인이 있다며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한 명 한 명 죽이기 시작했고, 결국 희생자 딸의 아버지인 이발사가 자신이 죽였노라 거짓 자백을 함으로써 마을 사람들을 지켜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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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여러 버전으로 전해지는 것 같은데, 어떤 버전에서는 이발사의 딸이 살기 위해 탈출에 성공하지만, 정신병에 걸린 남자는 그녀를 잡기 위해 이발사를 대신 잡아들여 고문하였고, 결국 그녀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돌아와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고도 한다. 어느 쪽이든 참 잔인하고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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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키 크룸로프 성은 프라하 성 다음으로 체코에서 큰 성이라고 하지만, 프라하 성만큼 화려하지 않아서인지 그 규모가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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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곳만의 독특한 점은, 해자(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판 곳)에 곰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중세 시대부터 곰 사육장으로 이용되었다는데, 환경이 열악해 보여 곰이 안쓰러웠다. 두 마리가 있다고 들었는데 한 마리밖에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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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체스키 크룸로프의 전망을 볼 차례. 프라하에서 감동했던 붉은 지붕 가득한 시내가, 이곳에서 또 한 번 감탄을 자아냈다. 규모가 더 작은 데다 강물이 흐르고 있어서 더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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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을 볼 수 있는 좋은 장소들이 곳곳에 많이 있었다. 특히 좌측의 체스키 성 탑과 우측의 성당을 함께 볼 수 있는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줄을 서야 했다. 기다리는 줄이 꽤 길었지만 모두들 각자 필요한 시간만을 적당히 보내고 자리를 비켜줘서 훈훈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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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트인 전경도 보다가 이렇게 엿보기도 하면서, 우리는 체스키 성 곳곳에서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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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도 역시 한국인은 많았다. 특히 프라하에서 당일치기로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큰 도시가 아니니 둘러보는 데에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프라하에서 편도로 세 시간 이상 걸리다 보니 가능하면 여유롭게 1박을 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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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탑에는 오를 생각이 없었으므로, 정원을 산책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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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건 없었지만 나는 언제나 이런 정원, 공원들이 좋다.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든 이런 나무 그늘과 벤치를 마주할 때면 집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는 이런 울창한 공원 근처에 살아본 적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전 세계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이라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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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겸 저녁 식사로는 보헤미안 음식을 먹었다. 'Old Bohemian feast'라는 메뉴의 이름에 걸맞게 닭고기와 각종 야채, 훈제 소시지 등이 골고루 담겨있었다. 특히 도톰한 감자전 같은 음식이 맛있었는데, 마늘향이 나서 좋았다. 나중에 집에서 감자전 해 먹을 때 다진 마늘을 넣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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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불리 식사까지 마친 우리는 더위를 피해 방 안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하지만 잠시는 오래가 되었고, 어느새 밖은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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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잠들기는 아쉬우니 야경이라도 볼까 싶어 다시 나가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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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골목은 깜깜했다. 이 시간에 성이 열려있을 리는 만무할 테고, 우리는 제자리걸음을 하다가 광장으로 향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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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디든 광장은 중심지라 그런지 다른 곳들보다는 밝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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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야경은 볼 게 없다며 일찍 들어가 잤는데, 다음날 마을 중심지 근처 전망대로 올라가 보니 이곳에서 야경을 보았다면 더 볼만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체스키 성 말고도 조금 높은 지대에만 서 있으면 꽤나 예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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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키 크룸로프를 떠나기 전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동네 한 바퀴를 돌기로 했다. 멀리 보이는 체스키 성 탑을 기준 삼아 강가를 따라 걸었다. 그냥 떠나기엔 너무나 아쉬운 동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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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마을 뒤쪽을 걷다가 서로 수화로 대화하는 여자 관광객 세 명을 보았다. 어쩌면 그중 한 명은 비장애인일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종종 영어를 못해 여행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하는데, 말하고 듣는 게 어려운 사람들도 이렇게 여행하고 있으니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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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에서의 마지막 점심은 프라하에서 맛있게 먹었던 립과 매쉬드 포테이토, 그리고 체코 맥주로 했다. 이 식사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체코를 떠나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어딜 보아도 아름다웠던 체코를 떠나는 마음은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오스트리아의 풍경들도 체코만큼이나 멋졌고 음식도 체코의 음식만큼이나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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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메모 #

* 강가에서 보트를 탈 수 있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첫날 시원하게 타봤을 텐데 아쉬웠다.
* 둘이 다니니 뭐든 두 배다. 보이는 것도 두 배, 느껴지는 것도 두 배, 신나는 것도 두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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