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83 - 오스트리아 빈 / 비엔나(Wien / Vienna)
2017.08.03
잘츠부르크에서 빈으로 이동했다. 사촌동생과의 여정이 마무리되는 도시이다. 일주일 간 동지가 있어 시끌벅적하고 든든했는데,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니 조금은 우울해지기도 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빈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향한 곳은 벨베데레(Belvedere) 궁전이었다. 숙소에서 가깝기도 했고, 내가 특히 이곳에 가고 싶어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벨베데레 궁전은 내가 빈에 가고 싶었던 유일한 이유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릴 적 어디선가 클림트의 <키스>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설렘이 잊히지 않는다.
벨베데레 궁전은 상궁과 하궁으로 나뉘어 있는데, 우리는 상궁에만 들어갔다. 상궁의 전시실에는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쉴레 그림이 가장 많았고, 모네의 그림도 몇 점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서 있던 곳은 단연 클림트의 <키스> 앞이었다. 엽서나 달력 등에서 봤을 때도 충분히 화려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실제 작품에는 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노란색을 비롯한 화사하고 따뜻한 색들, 그리고 반짝이는 금빛까지. 수없이 봐온 그림인데도 찬찬히 살펴보게 되었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와, 정원으로 향했다. 유럽 왕궁의 정원들이 대부분 그렇듯 데칼코마니 된 듯한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분수에서는 물줄기가 꽤 많이 나오고 있었지만, 더위를 식히는 데에는 눈곱만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더위에 취약한 나라서 여름이 점차 깊어지는 것이 두려워졌다. 이날도 역시 맥주를 마시러 갔다.
하궁 근처 유명한 가게인데, 특히 맥주가 유명하다. 우리는 각자 5가지 종류의 맥주를 맛볼 수 있는 샘플러를 주문하고, 식사로는 립을 골랐다. 체코에서 오스트리아까지 계속된 우리의 립 사랑이었다.
식사 후 유명한 빈의 오페라하우스에 갔지만 정해진 시간에 가이드와 함께 들어가는 것 말고는 구경할 방법이 없어서, 그냥 다음날을 기약하고 지나갔다.
시내 중심가로 들어서니 슈테판 대성당(Stephansdom)이 눈에 띄었다. 지붕이 아주 독특한 건물이다.
기본 형태는 고풍스러운 여느 유럽의 성당들과 다르지 않은데, 일부 지붕은 모자이크 형식으로 꾸며져 있어 독특했다. 색감이 현대적이어서 조금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묘한 지붕과는 달리 내부는 정통적인 웅장함을 고수하고 있었다. 외부만 봤을 때는 오히려 소박해 보였는데 내부는 화려했다. 지하에는 공동묘지인 카타콤도 있다고 한다.
성당에서 나와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걸었다. 오스트리아는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동유럽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은 동유럽보다는 서유럽이나 중유럽으로 구분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지리적, 역사적으로 생각했을 때 동유럽의 문화를 공유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막상 가보니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이런 거리와 건물들의 모습은 독일과 프랑스 등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는 거리를 구경하면서 쇼핑도 했다. 옷이 매일 땀에 흠뻑 젖지만 매일 빨래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반팔과 민소매가 더 필요했다.
든든하게 필요한 것들을 산 뒤, 야경을 보기로 했다. 하지만 해는 천천히 내려갔고 이날 특히 많이 걸었던 우리는 점점 지쳐갔다.
야경이 가장 유명한 시청 광장에서는 필름 페스티벌을 하고 있었다. 밤 9시부터 영화 또는 음악 공연을 상영하는데, 앞에 파는 음식들로 맛있는 냄새가 가득했다. 조금 더 어두워지기를 기다렸지만 시청사에 불빛이 들어오지 않아서 그냥 돌아갔다. 오페라하우스도 어두웠는데, 다음날 보니 우리가 너무 일찍 포기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랜만에 2만 걸음 넘게 걸은 탓이었다.
숙소에서 일찍 쉬려는데 같은 방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밤 12시가 넘었다. 한 달 넘게 함께 여행하며 사이가 좋지 않아진 친구들도 있었고, 장기 여행을 하고 싶어 하는 용감한 그렇지만 조금은 무모한 친구도 있었고, 모든 이들을 기분 좋게 해주는 에너지를 가진 친구도 있었다. 피곤해도 밤에 나누는 이런 수다들은 늘 즐겁다. 오늘을 공유하고 다음날을 계획하며,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보였을지 궁금해하며, 잠이 들었다.
# 사소한 메모 #
* 새로운 사람과 대화를 할 때마다 새로운 말을 듣게 되고 새로운 영향을 받게 된다. 그래서 여행이 인생을 바꿀 수도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