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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바키아 맛보기

Day 185 -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Bratislava)

by 바다의별

2017.08.05


사촌동생의 인천행 비행기가 오후여서 나도 함께 빈둥거리다가 느긋하게 기차역으로 갔다. 이제 다시 혼자만의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아쉽지만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라 생각하고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Bratislava)로 향했다. 1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 곳이라 당일치기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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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에서 내렸을 때, 다른 유럽 국가들의 수도와는 다르게 비교적 어둡고 낙후된 분위기가 느낄 수 있었다. 알록달록했던 폴란드와 화사했던 체코와는 달랐다. 그래서 조금 위축된 상태로 우버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너무나 유쾌해서 기분이 금세 좋아졌다. 하루 겨우 머물렀을 뿐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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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에서 차로 20분가량 떨어진 곳에는 데빈 성(Devin castle)이 있다. 내가 브라티슬라바에 가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어느 책 속에서 보게 된 사진 한 장 때문에 온 것이었는데, 그 사진에서 보았던 것보다 멋져서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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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길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늘이 거의 없어서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탁 트인 주변의 풍경을 보며 조금씩 힘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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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오래되어 곳곳이 꾸준히 복원된 성이라서 내부에는 특별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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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오히려 그것이 이곳을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 강가의 절벽 같은 언덕 위에 고성의 뼈대만이 남아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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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남쪽에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도나우(Donau, 또는 다뉴브 Danube) 강이 흐르고, 서쪽에는 도나우 강의 지류인 모라바(Morava) 강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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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으로는 강이 흐르고, 건너편은 탁 트여있고, 성 주변은 은은한 색의 풀꽃들이 여린 바람에 미세하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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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웨딩촬영을 하는 커플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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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웨딩 촬영이 아니라 결혼식을 올리려는 것이었나 보다. 예식을 위해 놓인 벤치들에는 하얀 리본들이 달려있었다. 이런 용도로 빌릴 수도 있나 보다. 얼마나 로맨틱한 장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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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정차해 있는 버스에 올라타려고 하니 기사가 길 건너편에서 타야 한다고, 기계에서 티켓을 구입하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티켓은 90센트 정도였고 오로지 동전만 투입이 가능했다. 가지고 있는 모든 동전을 넣었지만 부족해 아무 가게에라도 가려던 찰나, 아까 그 버스가 회차에서 내 앞으로 왔다. 아까 그 아저씨는 사람들이 버스에 올라타는 와중에 직접 내려서 나에게 괜찮으냐고 물었다. 그래서 동전이 부족해 가게에 가려고 한다고 했더니 그냥 타라고 했다. 내가 우물쭈물하니 얼른 타라고 다시 한번 이야기했다.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일찍 더위를 피하게 해 준 아저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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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로 돌아와 브라티슬라바 성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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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웬걸. 이 더위에 데빈 성보다 가파른 계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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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땀을 잔뜩 흘리며 올라간 길 끝에서는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역 주변과 외곽은 조금 어두운 느낌이었는데, 이곳도 역시 붉은 지붕들이 모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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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며 박물관이며 모두 지겨워진 상태였기 때문에 이날도 성 내부 관광은 그냥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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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정원은 한 번씩 들러보았다. 매번 다른 꽃들, 다른 배치, 다른 동상들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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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위치한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한 후, 시내 골목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줄 서서 먹는다는 아이스크림 맛집에도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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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브라티슬라바 왕복 티켓은 구입일자로부터 3일 이내 아무 때나 탈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차 시간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시간에 얽매이지 않아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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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가보니 흥미로운 동상이 있었다. 처음에는 사람인 줄 알았다. '일하는 남자(man at work)'라는 동상인데 무슨 의도로 만들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맨홀에서 일하다가 휴식을 취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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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니 일명 '블루 처치(엘리자베스 성당, Church of St. Elisabeth)'라는 곳까지 왔다. 화려하나 푸른색은 아니지만 파스텔톤으로도 충분히 눈에 띄는 건물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성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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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라 결혼식이 한창이었다. 내부도 화려하지는 않지만 독특해서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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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광장으로. 브라티슬라바는 수도임에도 굉장히 소박하다. 서쪽의 코시체(Kosice)가 더 큰 도시라서 그런 듯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코시체도 방문해보고 싶고 슬로바키아의 자연 풍경도 구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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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왕복 16유로의 가치를 충분히 즐기고 왔던 당일치기 여행이었다. 데빈 성의 고독함은 기대 이상이었고, 밝음과 어두움이 곳곳에 공존하고 있던 브라티슬라바의 반전 매력도 뜻밖이었다. 그 속에서 만났던 다양한 친절도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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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메모 #

* 하루라도 슬로바키아에 가보길 참 잘했다. 사람이 북적거리지 않는 또 다른 동유럽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 여행에는 끝이 없으니 언젠가 이곳을 또 방문하게 될 날도 올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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