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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류블랴나

Day 189, 191 - 슬로베니아 류블랴나(Ljubljana)

by 바다의별

2017.08.09, 11


류블랴나(Ljubljana)라는 도시의 이름은 '사랑받는다'는 뜻의 슬라브어에서 유래했다. 이름마저 예쁘구나,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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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에서 류블랴나까지 버스로 7시간 가까이 걸렸다. 오전에 버스 터미널로 향하는 길에 트램을 잘못 타는 바람에 한참 고생했다. 서울 지하철 1호선도 인천행 수원행이 있는데, 그런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탓이었다. 어쨌든 배낭을 메고 한참을 뛰어 겨우 버스에 탑승한 나는 류블랴나에 도착하기도 전에 녹초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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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날 저녁에는 구경하지 않고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숙소로 가는 길에 마주쳤던 용이 왠지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이 다리 너머에 있는 류블랴나 시내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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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 입구의 드래곤 브릿지는 네 마리의 용들이 지키고 있었다. 용은 류블랴나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다. 용과 관련된 전설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은 그리스 신화 속 영웅인 이아손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류블랴나에 최초로 정착한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이아손은 흑해의 왕으로부터 황금 깃털을 훔쳐 와 류블랴나 근처에 사는 용을 물리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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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품점들을 포함해 곳곳에서 용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는데, 도시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로맨틱해서 그런지 몇천 년 전에는 이곳에 용들이 정말로 날아다녔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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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점차 류블랴나 구시가지의 매력에 빠져들었을 때쯤, 이곳의 명물인 삼중교(Tromostovje, Triple bridge) 앞에 도착했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는 다리인데, 최초에는 다리가 하나만 있었지만 교통혼잡으로 인해 그 양쪽에 다리를 두 개 더 놓았다고 한다. 지금은 세 개의 다리가 모두 보행자 전용으로, 정면에 있는 분홍색 수도원과 함께 류블랴나의 대표적인 얼굴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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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다리가 여러 개 겹쳐있을 뿐인데, 수도원의 색이 분홍색일 뿐인데, 나는 이 풍경을 계속 보려고 주위를 몇 바퀴나 빙글빙글 돌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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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긴 시간 이동해와서 피곤했는데도, 숙소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류블랴나'라는 이름에는 주문이 걸려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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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럴 때가 있다. 왠지 오늘 내가 다른 날보다 예쁘게 느껴져서 기분이 좋은 날. 이날은 맑은 날씨에 예쁜 도시 속을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안에 있는 나까지 예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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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의 이름 속에 사랑이 있는 이유는, 그만큼 이곳이 방문자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일 테다. 이보다 더 멋진 이름이 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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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하며 조금 더 어슬렁거리니 금세 어두워졌다. 언덕 위 류블랴나 성에 은은한 불빛이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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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니 더 붐볐다. 더위를 피해 실내에 있던 사람들이 어둠이 내려앉는 것을 보고 거리 밖으로 나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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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류블랴나에 도착하기도 전에 피곤했는데, 뭉친 어깨를 마사지하며 일찍 자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피로와 결심은 언제 사라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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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류블랴나를 좋아하게 된 건, 어쩌면 이곳을 상상하며 그 이름을 몇 번 되뇌던 때에 이미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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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이 남겨둔 사랑을 손으로 가볍게 스치며 느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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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날에는 근교의 블레드 호수에 다녀왔고, 마지막 날에는 다시 류블랴나 시내를 돌아다녔다. 이날은 아침부터 몸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오전에는 쉬고, 오후가 다 되어서야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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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이 좋기로 유명한 카페에 가서 식사 아닌 식사를 했다. 붉은 지붕들은 질리지도 않았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류블랴나 성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번 올라가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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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까지는 푸니쿨라를 타도 되고, 걸어도 된다. 더우니까 푸니쿨라를 타기로 하고 왕복표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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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생각보다 아담했다. 몸이 좋지 않으니 무리하지 않기로 하고, 내부 구경보다는 전망을 구경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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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만 구경하고 다시 푸니쿨라를 타고 내려가려고 했는데, 전망을 보는 순간 푸니쿨라를 타러 다시 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천천히 걸어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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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의 붉은 지붕들과 조금 더 멀리 있는 몇몇 높은 건물들, 그리고 이 모든 걸 둘러싸는 산들이 이곳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보여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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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드 호수가 보고 싶어 슬로베니아에 갔지만, 류블랴나가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언젠가 소중한 사람과 함께 꼭 다시 가고 싶다. 그때는 나도 다리에 자물쇠 하나 걸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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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메모 #

* 언젠가 슬로베니아 일주를 하고 싶다. 궁금한 곳들도 끝이 없는데, 또 가고 싶은 곳도 이렇게 또 한 곳 늘어난다.
* ♬ Begin Again OST - Lost 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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