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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들의 쉼터

Day 196 -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Plitvice) 국립공원

by 바다의별

2017.08.15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역시나 플리트비체(Plitvice) 국립공원이었다. 누구든 플리트비체의 사진 한 장이면 크로아티아 여행을 꿈꾸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관광객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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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낼 수 있는 최선의 부지런함으로, 숙소 앞에서 8시 20분 버스를 타고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입구에 9시경에 도착했다. 하지만 입장을 기다리는 줄은 이미 암스테르담 안네의 집 수준으로 길었다. 다행히 이곳은 계산대가 3개여서 1시간 정도 후에는 들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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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하얀 암벽들과 초록빛 나무숲 사이로 흘러내려가는 폭포 줄기들이 눈에 띄었다. 더운 날씨였지만 이곳은 풍경만으로도 꽤나 시원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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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걷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는데, 나는 상류와 하류를 모두 둘러볼 수 있는 가장 긴 코스(4~6시간 소요)를 선택했고, 그중에서도 하류에서 시작해 상류로 올라가는 C코스를 선택했다. 주로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는 코스는 H코스인데, C코스와 걷는 길은 같지만 방향이 반대인 코스이다. 내리막길이 많은 H코스가 더 수월하다고 들었지만, 누군가가 내게 C코스로 걷는 것이 풍경이 더 멋지다고 해서 그렇게 가기로 했다. 큰 차이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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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트비체는 내가 가본 곳들 중 가장 물이 맑았던 것 같다. 수중세계가 다 훤히 들여다보여서 물속에 들어간다면 수경 없이도 헤엄쳐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수영은 금지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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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내리막길을 따라가면, 가장 먼저 높은 폭포를 하나 마주하게 된다. 여러 갈래로 나뉘어 떨어져 물이 많은 폭포들보다 여려 보이지만, 그 줄기는 만만치 않게 강렬해서 소리가 세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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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트비체는 폭포의 이름도, 숲의 이름도 아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정식 이름은 'Plitvice Lakes National Park'로서, 숲 속에 호수들이 층층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걷는 내내 맑은 호수들과 호수 사이를 잇는 크고 작은 계단폭포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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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줄기가 떨어지는 곳을 조금만 벗어나면 고요해졌다. 매끄러운 나무들이 깔린 길을 걸으면 여행 온 사람들의 목소리와 바람에 비벼지는 나뭇잎들의 소리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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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나무들은 물론 하늘의 구름까지도 반사되는 거울 호수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이곳에서 얻는 것은 대단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깨끗한 평화로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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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곳에 고여있는 것 같아도 물은 빠르게 또는 아주 느리게 이동하고 있었고, 그래서 때로는 높은 곳에 있다가도 낮은 곳에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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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만났던 친구 에리카는 다리에 달의 주기 변화 문신이 있었다. 좋은 일들 뒤에는 나쁜 일들도 있고, 또 나쁜 일들 뒤에는 좋은 일들도 있다는 순환의 의미로 새긴 것이라고 했다. 힘 있는 물줄기들과 고요한 호수를 보고 있으니 그 친구의 담담한 문신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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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선착장에 도착했다. C코스는 하류 구경 후 배를 타고 호수를 가로질러 간 뒤 상류를 가볍게 트레킹하고, 마지막에 버스를 타고 입구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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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는 줄이 꽤 길게 서 있어서, 간단히 식사를 하며 숨을 돌리기로 했다. 인기 메뉴인 전기구이 닭과 감자튀김으로 아점을 해결했다. 맛은 좋았지만 햇빛을 받으며 먹겠다고 밖으로 나온 것이 잘못이었다. 벌이 자꾸만 꼬여서 허겁지겁 먹어야 했다. 어릴 적 벌에 쏘인 적이 있는 나는 그 어떤 벌레들보다도 벌을 무서워한다. 그냥 안에서 먹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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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 11시 반쯤 선착장 줄에 합류했고, 12시가 조금 넘어서 배를 탈 수 있었다. 배를 타는 것이 필수는 아니고, 조금 돌아서 걸어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배와 버스 탑승 각 1회는 입장료에 이미 포함되어 있었고 나는 주어진 것들을 모두 해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배를 타고 건너기로 했다. 청록색의 물을 가르며 울창한 숲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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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상류 트레킹을 시작할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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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이 찍어온 사진만 보고는 장엄한 풍경을 기대했는데, 막상 가보니 국립공원의 규모는 크지만 그 풍경은 웅장함보다는 잔잔한 아기자기함이 더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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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센 폭포만이 이곳의 주인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러 갈래로 흘러내리는 폭포에는 섬세한 아름다움이 있었고, 잔잔한 호수에는 투명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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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걸 보기 위함이 아니라, 깨끗한 자연을 느껴본다는 생각으로 걸어보면 좋을 것 같다. 요정이 머무는 곳이라고 불릴 정도로 정말 산뜻하고 예쁜 숲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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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나 깨끗하고 맑은지, 오리들이 공중 부양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물속이 훤히 보여 투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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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런 깊고 오래된 숲의 특성상, 한편에는 정글같이 스산한 곳도 있었다. 이곳을 며칠 전에 다녀간 친구는 요정보다는 괴물이 나올 것 같았다고 했는데, 아마 이런 곳들을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어찌 된 영문인지, 얽히고설킨 나무뿌리들 옆에 물이 콸콸 흘러들어가는 기묘한 구멍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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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괴물보다는 요정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청아한 이곳은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가장 예쁜 색만 일부러 추출해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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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입구 근처로 내려와 걷다 보면, 아마도 플리트비체에서 가장 유명한 풍경일 곡선 길을 내려다볼 수 있다. 내가 걸을 때에는 저만한 인파가 없었는데, 오후가 될수록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 저 속에서 걷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을 수 있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니 사람이 여럿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더 보기 좋았다. 이 높은 곳에서도 물속이 들여다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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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흙을 밟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잠시 차들이 많은 도시에서 벗어나 물고기와 나무가 가득한 숲 속에 있을 수 있다는 건 그 어떤 여행보다도 휴식인 것 같다. 본 것보다도 느낀 것들이 많아서 더 즐거운 숲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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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메모 #

* 압도하는 풍경보다는 스며드는 풍경이 더 많았던 곳. 잔잔하게 오래 남지 않을까.
* ♬ Mocca - I rem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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