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97 - 크로아티아 자다르(Zadar)
2017.08.17
슬룬(Slunj)에서 자다르(Zadar)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10시 30분경에 버스가 있다고 해서 숙소 앞 정류소에서 기다렸더니, 그냥 지나가버렸다. 황당했지만 별수 없이 서 있다 그다음에 지나간 플리트비체행 버스에 올라 물어보니, 이곳에서 버스를 타는 것은 꽤 까다롭다고 했다. 슬룬은 별도의 버스 터미널이 없고 버스 한 대가 대기할 수 있는 간이 정류장이 하나 있는데, 그 정류장에서 설 때도 있고, 그냥 길 건너 도로에 설 때도 있다는 것이다. 그건 목적지 방향과는 상관없이, 기사 마음대로, 유턴을 해서 들르기도 하고 그냥 가던 길에 멈추어 서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두 곳 중 한 곳에 이렇게 배낭을 메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멈추었어야 한다고, 왜 그냥 지나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결국 나는 전날 갔던 플리트비체 입구에 다시 가서 2시간가량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 오후 1시 반이 되어서야 자다르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고작 1박 2일을 계획하고 간 자다르에 4시 반이 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작은 마을이라 볼거리가 많은 건 아니었지만, 예정보다 늦게 도착하다 보니 잠만 자고 떠나는 것 같아 아쉬웠다. 혹 호스텔에 자리가 있다면 하루 더 머물러볼까 했지만, 이곳은 자리가 없었고 다음날 스플리트 숙소는 취소가 안 돼서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주어진 시간 내에 열심히 보기로 했다. 숙소에 짐만 얼른 두고 다시 나와, 성 도나투스 성당(St. Donatus) 앞 로마 유적이 흩어진 길을 지나 바닷가로 향했다.
풀라나 로빈에서는 바다가 멀리 있던 탓인지 작게 느껴졌는데,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가로막고 있지 않은 탁 트인 바다를 넓게 볼 수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파도가 거세게 일고 있었는데도 그 속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6시가 다 된 시점이어서 해가 저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럽의 한여름은 최소 8시가 넘어야 저녁이 시작되었다. 제대로 된 일몰은 조금 후에 다시 와서 보기로 했다.
그다음에 향한 곳은 이곳의 명물인 '바다 오르간'. 파이프를 물속에 묻어, 파도가 파이프에 부딪칠 때마다 음악 소리가 나게 만든 곳이다. 바닥에는 파이프에서 이어지는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앞뒤로는 계단이 있어 사람들이 앉아서 파도 소리와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두었다.
중후한 느낌의 소리는 어찌 들으면 무섭기도 했다. 바닷물이 연주하는 오르간을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바람 소리 때문에 음악소리가 제대로 녹음되지 않은 것이 아쉽다.
이 독특한 것을 만든 건축가 Nikola Basic은 자다르의 관광 산업에 큰 공헌을 한 인물이다. 그는 바다 오르간과 더불어 자다르 해안의 또 다른 명물인 '태양의 인사'를 만들기도 했다.
'태양의 인사(Greeting to the Sun)'는 해가 지기 전까지는 그저 원형 바닥일 뿐이다. 하지만 낮에 저장해둔 태양열로 밤에는 색색의 조명을 내뿜을 것이니, 밤에 다시 확인해보기로 했다.
식사를 하기 전 자다르 시내를 마저 둘러보기 위해 정처 없이 걸어보았다. 작은 마을이니 걷다 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해 지도도 보지 않았다. 생각지 않은 아담한 풍경과 생각지 못한 화려한 문이 눈에 들어왔다.
요새와 같은 성벽을 조금 걷다가 다시 내려오니, 나로드니(Narodni) 광장에 이르렀다.
카메라를 맨 관광객들부터 편안한 웃음 속에 술 한잔 들고 있는 현지인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버스킹 하는 사람들까지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도 이 근처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지친 오전을 보냈으니 오랜만에 좋은 식당에 가서 식사하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 끼 정도는 좋은 식사를 하면서 여행했는데, 더위에 지쳤던 나는 크로아티아에서 식비로 정말 많은 돈을 썼다. 언젠가 과하게 아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애써 위로할 뿐이었다.
어쨌든 흥청망청의 서막이었던 자다르의 한 레스토랑에서 먹물 리조또와 모히또를 한 잔 주문했다.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조합이어서 다행이었지만, 리조또를 덜 짜게 해달라고 말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못 먹는 것이 없는 나도 이렇게 짠 음식은 완벽히 끝내기 어려웠다.
열량 보충과 염분 보충을 마치고 다시 바닷가에 가니 해가 제법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파도는 여전히 거칠게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석양, 일몰, 황혼, 낙조, 해넘이. 무어라 부르든 그 이름마저 아름다운 붉은빛이 돌바닥까지 물들이던 순간, 나는 자다르를 사랑하게 되었다. 여기서 여행을 잠시 멈추어도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으니까. 낮에는 쉼 없이 울려 퍼지는 바다 오르간 소리를 듣고, 저녁에는 바닥에 앉아 해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밤에는 태양의 인사에서 뛰어다니는 것은 내가 평소 생각하던 완벽한 오후, 그 자체였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세계에서 가장 멋진 일몰이라고 극찬했다는 사실 따위는 더 이상 내게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내 곁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그 소리는 모두 지워졌고 그 순간에는 오로지 태양과 그 태양을 바라보는 나만이 존재했다.
해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이곳은 쉽게 떠나지 못한다. 구름까지 분홍빛으로 물들인 태양의 마지막 순간이 끝날 때까지 바닷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 있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어두워지면, 사람들의 발걸음은 '태양의 인사'로 향한다. 낮에 태양으로부터 얻어 저장해둔 에너지를 태양이 사라지자마자 뿜어낸다. 낮에 고요했던 곳은 색색의 불빛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 메워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속을 걷고 있으니 마치 모두들 걸을 때마다 불빛이 나는 운동화를 신은 것처럼 보였다.
밤이 되니 도시는 새로이 살아나고 있었다. 성 마리아 수도원과 성 도나투스 성당도 서서히 불빛이 켜지고 있었고, 거리에는 석양을 보던 인파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밤을 즐기고 있었다.
환상적인 일몰을 천천히 곱씹으며, 나 역시 부드러운 밤바람 속 자다르의 분위기에 취해버렸다.
# 사소한 메모 #
* 세상 모든 석양을 수집해보지는 않았지만, 이곳은 나도 감히 최고라고 외칠 수 있을 것 같다.
* ♬ Bruno Mars - Just the way you 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