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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돌리며

Day 198 - 크로아티아 스플리트(Split)

by 바다의별

2017.08.18


하룻밤 머문 자다르를 아쉽게 떠나, 스플리트에 도착했다. 사실 스플리트는 왠지 끌리지 않아서 그냥 지나칠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두브로브니크와 플리트비체만큼이나 '꼭 가는 곳'인 것 같아서 일정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 느낌은 잘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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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플리트에서는 저렴한 방을 빌렸는데 숙소 건물에 아무도 없었다. 2층의 어떤 여자가 올라오라는 손짓을 해서 올라갔는데, 알고 보니 그 건물은 또 다른 숙박업소였다. 영어가 서툰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통해, 내가 예약한 숙소 주인과는 사이가 좋지 않아 연락을 해줄 수 없으니 옆 골목의 바에 가서 물어보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땀에 흠뻑 젖은 옷 위에 배낭을 얹어 메고 바에 갔고, 그곳 주인이 연락을 취해줘서 겨우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요청대로 내 도착 예정 시간을 미리 보냈는데도 주인은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도착하자마자 어긋나는 기분에 예감이 좋지 않았다.

DSC07433001.JPG 성 도미니우스 성당 종탑

굉장히 더운 날씨였던 것도 지치는 데에 한몫했다. 겨우 들어간 방에서 정신을 차릴 시간이 필요할 정도였다. 한숨을 돌리고 물을 한가득 들이킨 뒤 올드 타운 구경을 나섰다.

DSC07436001.JPG 디오클레시안 궁전 (Diocletian's Palace)

스플리트는 내가 크로아티아에서 가본 가장 큰 도시였다. 대도시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시내도 꽤 넓었고 관광객들도 굉장히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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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은 오래된 느낌이 물씬 나서 좋았고, 그 속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의 감미로운 화이트 와인과 담백한 생선구이도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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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내가 스플리트에 갈까 말까를 고민했던 가장 큰 이유는 특별한 차별성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실제로도 나는 스플리트만의 매력을 찾지 못했다. 여행 한 달 반이 지났을 때쯤 퀘벡에서 느꼈던 권태로움을 이곳에서 다시 느끼고 있었다. 표현이 조금 이상하지만, 여행을 '열심히' 하지 않고 있었다. 많은 것들이 귀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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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했다가 실망했던 곳은 여럿 있었기 때문에 기대조차 많이 하지 않았던 스플리트에 대한 실망감으로 인해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이미 몇 주 전에 시작되었다가 이곳에서 절정에 이른 것일 테다. 그렇게 생각하면 스플리트를 들른 것이, 그래서 그걸 핑계 삼아 쉬었던 것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DSC07459001.JPG 성 도미니우스 성당(St. Domnius Cathedral)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유독 스플리트에서 식사와 간식으로 많은 소비를 한 것은 너무 더워서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많이 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는 것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해 먹는 것으로라도 즐거움을 얻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붉은 지붕들은 이미 체코에서 충분히 보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은 류블랴나나 로빈을 넘어설 수 없었으며, 내 마음은 여전히 자다르에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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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astery & Church of Our Lady of Health

그래서 어지간히 예쁜 건물을 보아도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고, 익숙한 풍경보다는 독특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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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근처 섬에 가서 스노클링을 해볼까 했지만, 당시 언제부터였는지 눈이 자주 가려웠고 재채기를 수시로 했기 때문에 바닷물에 들어가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런저런 고민 끝에 3박으로 계획했던 스플리트 일정을 2박으로 줄이고, 다음날에는 스플리트에 있는 대신 근교에 가보기로 했다. 자다르에서 스플리트로 오는 길에 성 하나를 보았고, 계속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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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한 점심 식사가 아직 소화가 되지 않아, 저녁은 과일주스와 아이스크림으로 대신했다. 그다지 맛있지 않은 레몬주스를 마시면서, 그래도 꽤나 예쁜 스플리트의 저녁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가 저무는 시간은 늘 아름다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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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해진 길을 따라 숙소로 돌아오면서, 문득 유럽 여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친 마음을 다잡고 캐나다에서 그랬던 것처럼 마음을 비우고 다시 힘을 내기로 했다. 길거리에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에너지를 받아, 내일부터는 조금 더 열심히 여행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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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메모 #

* 스플리트의 하루에서 가장 좋았던 건 아이스크림이 정말 맛있었다는 것이고, 가장 안 좋았던 건 숙소에서 와이파이가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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