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99 - 크로아티아 스플리트(Split) 근교 클리스(Klis)
전날 자다르에서 버스를 타고 스플리트로 오는 길에 유독 눈에 띄었던 곳이 있었다. 구불구불 산길을 타고 내려오는데, 길 옆 우뚝 솟은 돌산 위에 성이 하나 있던 것이다. 너무나 멋져서 열심히 지도를 검색해보았고, 그곳이 클리스(Klis)라는 요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촬영지이기도 했다.
클리스 요새 근처에는 솔린(Solin/Salona)이라는 고대 로마 유적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작은 마을이 있어서, 두 곳을 함께 다녀오기로 했다. 정보도 별로 없었고 버스도 자주 없었지만, 정류장에 있던 친절한 소녀들의 도움으로 솔린으로 가는 버스에 탈 수 있었다. 클리스까지 가는 버스는 주말에 거의 운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선 가까운 솔린부터 가기로 했다.
유럽에서 가장 더웠던 날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날을 꼽겠다. 그만큼 너무 뜨겁고 습해서 이러다 내가 녹아 없어지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유적지는 멋지긴 했지만 곧 쓰러질 정도의 더위에 허덕이면서 구경할 정도로 멋진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관광객은 나와 어떤 가족 하나가 전부였다.
그래서 나도 유적들을 서둘러 둘러본 뒤 그늘 아래 앉아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바로 클리스 요새로 이동하기로 했다.
멀지만 이곳에서도 클리스 요새가 보였다. 전날 보았던 모습과 비슷했다.
버스 정보는 구글 지도에도 없고 사람들마다 말이 달라서, 그냥 우버를 불렀다. 어차피 더위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곳 역시 더운 건 여전했지만 다행히 지대가 높아서인지 바람이 아주 희미하게 종종 불어왔다.
이곳은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용의 어머니 대너리스 타가리엔이 정복한 미린의 성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내부는 다른 곳이나 그래픽으로 촬영한 것 같고, 외부의 모습은 클리스 요새에서 촬영한 것이다.
전에는 입장료가 20쿠나였다는데, <왕좌의 게임> 촬영지가 되고부터 두 배인 40쿠나(약 7천 원)로 올랐다. 입구 앞에서도 전망은 얼추 볼 수 있어서 그곳에서 발길을 돌려 나가는 관광객들도 많았지만, 나는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갔다.
전날 멀리서 보았을 때는 돌만 있는 것 같았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나무와 덩굴이 많았다. 성벽 돌 틈 사이로 풀이 자랄 정도로 오랫동안 방치된 듯한 요새는 신비로운 드라마에 잘 어울리는 듯했다.
입장료와 우버 비용이 꽤 들긴 했지만, 전날 버스에서 본 것만으로 찾은 관광 지치고는 꽤 성공적이었다. 요새는 작지만 인상적인 관광지였고, 전망도 좋았다.
뒤로는 아기자기한 마을이 보였고 앞으로는 멀리 스플리트와 바다가 보였다.
내려올 때는 요새 옆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가 보았다. 가팔라서 순식간에 아래에 도착했다.
주말이라 모두들 집 안에서 쉬고 있었는지 거리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역시나 스플리트로 돌아가는 것도 우버를 불러야 했다. 몇 번을 요청해 겨우 잡힌 우버를 타고 스플리트로 무사히 돌아갔다. 우버 기사가 크로아티아인 여자 친구를 따라 이곳으로 온 이탈리아인이었는데 굉장히 유쾌한 사람이었다. 이곳에 볼 게 있느냐고 물어서 드라마 촬영지라고 했더니 자기도 다음에 와봐야겠다고 했다.
하루 종일 더위에 시달렸으니, 스스로에게 수고했다는 의미로 멋진 저녁 식사를 선사했다. 스테이크와 맥주, 달콤한 초콜릿 케이크 디저트까지 정말 배부른 식사를 하고 푹 잠이 들었다.
# 사소한 메모 #
* 추위가 그립고 눈이 그립고 겨울이 그립다. 다 벗는다고 해서 고온다습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차라리 껴입으면 조금이라도 따뜻한 겨울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