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09 - 그리스 메테오라(Meteora)
더웠던 전날과는 달리 적당히 시원한 하루였다. 전날 저녁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아침 식사를 포기하고 늦게까지 푹 잤더니 훨씬 개운해졌다.
고대하던 메테오라에 가는 날, 숙소에서 조금만 차를 타고 들어가니 기괴하게 우뚝 선 바위들이 곳곳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바위들 사이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풍경이 더 멋있어졌다.
메테오라는 그리스어로 '공중의', '위에 있는', '높은' 등을 뜻한다. 땅에서 솟아올라온 거대한 바위들이 하늘과 매우 가까워서 붙여진 지명인가 보다. 운석을 뜻하는 영어 단어(meteor) 역시 이 그리스어에서 기원한다.
그리스의 메테오라가 유명한 이유는 그 독특한 지형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이 바위들 위에 자리하고 있는 수도원들이다.
위의 사진만 해도 세 곳의 수도원이 숨어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12세기 전후로 은둔 승려들이 이곳에 와 수도원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이렇게 높은 곳들이 아닌 깊숙한 동굴들 속에서 지냈다고 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중에는 바위들 위에 24개의 수도원들이 지어졌다고 한다. 현재는 그중 6개만이 운영 중이며, 각 수도원에는 평균 10명도 안 되는 인원이 지내고 있다고 한다.
하늘과 가까워지기 위해 수도원들을 이토록 높은 곳에 세운 것일까. 거친 지형만으로도 시선을 압도했지만, 곳곳에 세워져 있는 수도원들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지금이야 차로 근처까지 다가가 계단을 이용해 올라갈 수 있지만, 과거에는 사다리만이 유일한 수단이었다고 한다. 왜 이렇게 위험한 일을 했을까?
신을 믿기 때문에.
라고 가이드는 말했다.
관광객들에 개방된 수도원은 몇 안 돼서, 단체 관광객들이 굉장히 많이 몰려 있었다. 가장 먼저 방문한 수도원은 발람 수도원(Varlaam Monastery)이었다. 수도원 내에서는 무조건 무릎을 덮고 있어야 해서, 반바지를 입은 사람들은 모두 수도원에서 나눠주는 랩스커트를 둘러야 했다.
이 수도원에는 수직으로 이동하는 케이블카 비슷한 것이 있었다. 다른 수도원들에도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건 운반 및 거동이 불편한 승려가 이동할 때 사용된다고 했다. 케이블카가 올라오는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꽤 아찔했다.
우리는 수도원 앞에 펼쳐진 풍경을 감상한 뒤 내부의 예배당과 작은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예배당은 굉장히 오래된 느낌이었지만 벽부터 천장까지 황금빛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아쉽게도 모든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었다.
다음 목적지에 가기 위해 구불구불한 길을 되돌아 내려갔다. 아주 오래전 이곳에 처음 도착한 승려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걸어올라 왔을까?
두 번째로 향한 성 스테판 수도원(St. Stephen's Monastery)은 여성 승려들만 있는 곳이었다.
색색의 꽃들로 예쁘게 가꾸어진 정원이 인상적이었던 수도원이다.
여자들이 운영하는 수도원이라 그런지 남자들의 복장에 대해서도 매우 엄격했는데, 이전 수도원에서 무릎을 반쯤 덮는 반바지로 무사통과했던 남자들도 이곳에서는 입장을 제지당했다. 여자들처럼 허리춤에 무언가를 두르기도 했고, 부랴부랴 긴 바지로 갈아입고 오기도 했다.
내부는 마찬가지로 화려했지만 역시나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작은 예배당의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모습을 남기지 못해 아쉬웠다.
그렇지만 이날 그림 같은 풍경을 워낙 많이 봐서, 만약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다면 필름이 남지 않아 어차피 예배당의 모습은 찍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엄청난 자연과 더 엄청난 수도사들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점심은 칼람바카(Kalambaka) 시내로 돌아와, 그리스 가정식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갔다. 어차피 각자 돈을 내고 먹는 거라 어디서 뭘 먹든 상관없었는데, 다들 이 식당에 끌렸는지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 이곳에 모였다. 오랫동안 한 가족이 운영해온 식당으로, 뷔페식으로 원하는 메뉴를 몇 가지 골라 담아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메인 요리는 하나만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나는 주인이 추천하는 생선요리를 골랐다. 생선도 구운 채소도 모두 맛있어서 한 접시를 금방 비웠다.
식당에서는 우리가 다녀온 메테오라의 바위들 중 일부가 보였다. 위에서는 왜 이렇게 높은 곳까지 위험하게 올라와 수도원을 지었을까 생각했는데,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올라가 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사람 마음은 참 복잡한 것 같다.
# 사소한 메모 #
* 언젠가 이곳에서 일몰을 볼 수 있다면 정말 환상적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