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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초들이 신비로운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Day 225, 226 - 호주 케언즈(Cairns)

by 바다의별

3박 4일 일정의 울룰루-카타주타-킹스 캐년 캠핑을 마치고, 세상에서 가장 작은 공항으로 돌아왔다. 카운터에서 검색대 너머로 게이트가 보이는 울룰루 에어즈록 공항. 대부분의 일행은 브리즈번 또는 멜버른으로 향했고, 나는 조금 늦은 케언즈행이라 공항에서 꽤 기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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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케언즈는 갈까 말까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곳이다. 생각보다 거대했던 호주를 여행하기에는 일정이 조금 빠듯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래전부터 가고 싶어 했던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를 눈앞에 두고 가기가 아쉬워서 짧은 시간일지라도 일정에 끼워 넣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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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의 캠핑이 피곤하긴 했던 모양인지,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캠핑의 여파인지 매콤한 것이 먹고 싶어서 도착하자마자 한식당을 찾았다. 아주 훌륭한 건 아니지만 꽤 괜찮은 김치찌개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는 나무 위에서 바스락거리는 박쥐를 마주쳤다. 박쥐를 이렇게 밖에서 보는 게 처음이라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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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다음날 아침, 진짜 목적지인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 스노클링을 하러 갔다. 이왕 가는 거 제대로 보고 싶어서, 갈 때는 배를 타고 돌아올 때는 헬기를 타고 오는 것으로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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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컸지만 갈라파고스에서 고생했던 것처럼(사실 여러 곳에서 고생했던 것처럼), 나는 역시나 이곳에서도 멀미를 했다. 파도가 그리 셌던 것도 아닌데도 어지러워서 출발하자마자 반쯤 누워 억지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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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두 군데에서 각각 1~2시간씩 멈춰 섰다. 산호초가 가득한 얕은 지역이라 바다 한가운데에 하얀 파도가 경계 지듯 치는 것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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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복과 오리발, 스노클링 장비를 받았고 나의 체력을 믿을 수 없어서 아쿠아봉도 하나 받았다. 기다란 튜브 같은 것이어서 계속 입고 있는 구명조끼보다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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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간 바다는 굉장히 맑았는데, 사진에는 조금 뿌옇게 나왔다. 위치에 따라서 모래 때문에 조금 흐릿한 곳도 있었고, 여러 모양의 산호초들이 깨끗하게 반기는 곳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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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스쿠버다이빙을 즉석에서 배워서 해볼 수 있었는데, 멀미 때문에 그럴 정신이 없어서 나는 스노클링 밖에 하지 못했다. 물론 그럴 정신이 있었다 해도 깊은 바다에 대한 공포가 있는 나로서는 쉽게 시도해보지 못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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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멈춰 선 곳은 조금 더 깊어 보였다. 첫 번째 장소에서 많이들 힘을 빼서 그런지 오히려 두 번째 장소에서는 오래 수영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는 멀미 때문에 첫 장소에서는 오래 있지 않아서, 반대로 두 번째 장소에서 더 오래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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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것보다 물고기는 아주 많지 않았다. 물고기들의 크기와 색깔은 다양했지만, 그 수는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매일같이 이곳에 배가 몇 대씩 정박해 사람들이 스노클링을 하고 돌아다니는데 이곳에 물고기들이 자리 잡고 살기 쉽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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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이곳에서는 환상적인 산호초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거대 수조에 들어와 있는 듯하기도 했다. 혹여 산호초들이 오리발에 걸릴까 봐 조심해야 할 만큼 얕았다가도, 어느 순간 수중 절벽을 만나 까마득한 어둠을 마주하기도 했다. 무서워서 오래 있지는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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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와 바닷물의 오염 등으로 산호초들도 많이 죽어가고 있다는데, 안타까울 따름이다. 더 훼손되기 전에 이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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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스노클링을 하고, 헬기를 타러 갔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가 궁금해서 예약한 것인데, 뱃멀미를 또 한 번 겪지 않아도 되니 일석이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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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에서 보는 모습도 멋졌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의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아름다웠다. 바닷속 모습이 훤히 보이는 데다 그 위를 덮는 물 색이 여러 가지 섞여있는 것이 절묘하게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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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는 처음 타봤는데, 수직으로 떠서 전혀 무섭지도 어지럽지도 않았다. 오히려 발밑으로 환한 바닷물이 보이는 것이 재미있었다. 직접 보면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멋진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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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운데 조그마하고 외롭게 솟아있는 하얀 섬과, 그 주변을 꾸미는 바닷속 지도 같은 산호초들의 모습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비로웠다. 이런 신비로운 모습을 모든 사람들이 오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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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를 제외하고도 케언즈 근교에는 볼거리들이 꽤 많지만, 나는 과감히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다음날에는 하루를 늦게 시작해 갯벌이 된 케언즈 바다의 모습도 보고 거대한 펠리컨들과 다른 종류의 큰 새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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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언즈에는 해변이 없고, 해안가 바로 옆에 인공 수영장이 있다. 케언즈 바다에는 악어가 살고 해파리들도 자주 출몰하기 때문에 수영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인공 수영장은 깔끔하고 한가했지만, 이미 하루 종일 바닷속에서 놀았기 때문에 더 이상 수영에 흥미는 없었다. 나는 그저 동네를 산책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방전된 체력을 복구하기 위해 푹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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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메모 #

* 영원한 것은 없다. 내가 보고 온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는 지금 아주 조금은 작아졌을지도 모르고, 내가 보고 온 아프리카의 코끼리들도 지금은 개체 수가 줄었을 것이다. 영원할 순 없어도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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