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23 - 호주 킹스 캐년(King's Canyon)
별을 보다 감은 눈을 떠보니 마지막을 장식할 킹스 캐년(King's Canyon)에 가는 날이 되었다. 어두운 새벽에 일어나는 날도 이제 딱 하루 남았다.
킹스 캐년은 아프리카에서 만났던 호주 친구들이 가장 추천했던 곳이다. 그럼에도 내 기대치는 그리 높지 않았다. 울룰루나 알았지 카타주타나 킹스 캐년은 그때 처음 들어보았고, 이미 캐년은 미국에서 아프리카까지 여러 군데 가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기대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곳이 진짜 하이라이트였다. 이후 친구들에게 울룰루를 보러 갔다가 킹스 캐년에 반하고 왔다고 말하게 되었다.
이곳 역시 원주민들에게 신성시되는 곳이라 정해진 루트 외에는 탐방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정해진 탐방로만으로도 놓치는 것이 없다고 느꼈다.
가다 보니 무슨 영화에 나온 곳도 있었는데, 모르는 영화여서 기억이 나질 않는다. 너도나도 마치 세상의 왕이 된 것처럼, 산 하나 정복한 것 같은 포즈를 취했다. 며칠간 조금 친해져서인지 이날은 특히나 분위기가 더 좋았던 것 같다.
킹스 캐년은 규모가 아주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볼거리가 꽤 있었다. 때로는 울퉁불퉁하고 때로는 매끈한 협곡의 절벽들이 인상적이었고, 물이 고여있는 곳도 있었다.
3일 연속 트레킹 중 계단이 가장 많아서 이곳이 상대적으로 가장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주 어려운 코스는 아니었다. 계단 오르막길에서는 힘들다가도 완만한 길이 대부분이어서 금세 숨을 돌릴 수 있었고, 가끔은 이렇게 탁 트인 절벽에 앉아 바람을 맞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탐방로는 낭떠러지 바로 옆을 걷게 되어있어서 가이드는 우리에게 끝에서 2m 정도의 거리를 두고 걸으라고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늘 규칙을 어기는 사람들은 있는 법. 사진에 잘 나오진 않았지만 절벽 끝에 걸터앉아 있는 용감한 사람들이 있었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데,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쨌든 우리는 안전하게 트레킹을 마쳤다. 초반에 많이 올라와서인지 마지막 코스는 계속해서 내리막이어서 가이드와, 다른 친구들과 이런저런 수다를 떨면서 수월하게 걸어내려 왔다.
캠핑장으로 돌아와 트레킹 중 뒤집어쓴 먼지를 씻어내고, 우리는 아쉽게도 두 팀으로 나뉘어 헤어졌다. 일부는 이곳에서 가까운 앨리스 스프링스(Alice Springs)로 향했고, 나를 포함한 나머지는 캠핑을 하루 더 하고 울룰루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며칠간 정들었던 친구들과 인사하고, 조금은 넓어진 차를 타고 우리는 또다시 이동했다. 가이드의 허락 아래 아웃백의 봄을 알리는 보랏빛 야생화를 한 움큼 꺾었다. 가이드는 어차피 1~2주 피어있는 꽃들이라고 했다. 먼지와 회전초들이 날아다니는 황량하고 위협적인 사막 속에서 만나니 반가웠다.
마지막 밤 캠핑은 부시 캠핑이었다. 부시 캠핑이라면 이미 아프리카에서 여러 번 해봤지만, 이렇게 소규모로 그것도 텐트가 아닌 스와그에서 하니 또 새로웠다. 보츠와나에서처럼 사자 울음소리가 나거나 잠비아에서처럼 하마가 지나가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곳에서는 개인 듯 늑대인듯한 딩고가 지나갔다.
가이드까지 여덟 명, 우리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파스타 정도 대충 해 먹을 수 있는 가스레인지와 저 멀리 냄새나는 변기 하나가 전부였다. 물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아웃백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자리 잡은 캠핑장 옆에는 멋진 언덕이 있었다. 그곳에 올라가니 세상의 중심에 선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작아지는 태양이 황야 속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저녁 메뉴인 파스타와 함께 낮에 산 맥주를 마시며 문명과 단절된 밤을 시작했다. 샤워도 세수도 양치질도 다음날의 몫으로 미뤄둔 채.
조금만 내려놓으면 불편함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캠핑,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의 마지막 밤은 내게 완벽했다. 모닥불 타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점점이 박혀있는 별들을 텐트 삼아.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아쉽지만 아웃백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 차를 타고 지나면서 붉고 푸름의 혼돈 속에 울룰루와 카타주타의 그림자가 보였다. 이곳에서의 시간을 정리하기에 최고의 광경이었다.
물론 마지막으로 본 일출도 그러했다. 며칠 연속 일출과 일몰을 보았지만 마지막은 언제나 소중하니까. 그리고 소중하게 여기길 다행이었다. 이것이 내 여행에서 마지막으로 본 일출이 되었으니 말이다.
# 사소한 메모 #
* 캠핑은 참 그리울 것 같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밤을 보내는 부시 캠핑은 더더욱. 여럿이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면 결코 하지 않을 일이니까.
*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라고 생각하면 불편함은 낭만이 되고 긴장감은 웃음이 된다.
* ♬ Shane Filan - You and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