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이 유튜브를 배회하던 어느 날, '덴마크 레고랜드 10분 안에 모두 둘러보기'라는 영상이 추천 영상 목록에 떠 있었다. 평소 유튜브로 여행 검색을 하는 편은 아닌데, 대체 어떤 알고리즘을 통해 나온 건지 오랜만에 웬일로 적절한 추천 영상이었다.
나는 평소 혼자 잘 다닌다. 여행도 혼자 잘 다니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도 혼자 식사하고, 커플이나 친구, 가족 단위로 오는 캠핑 투어에도 혼자 참여해 잘 어울려 지낸다. 세상 어느 곳에 혼자 있다고 해서 눈치 보는 편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세계여행 당시 딱 한 곳, '혼자 가기 창피해서' 지나쳤던 여행지가 있는데, 그곳이 바로 덴마크다. 정확히는 레고의 원산지(?) 덴마크에 위치한 레고 테마파크, '레고랜드'다.
덴마크를 통째로 지나쳐버린 데에는 덴마크의 비싼 물가도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보다는 주된 목적이었던 빌룬드의 레고랜드에 과연 내가 혼자 갈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섰던 것이다. 방문 후기를 찾아보니 대부분 가족 단위였고, 심지어 어떤 곳은 (일본 레고랜드의 디스커버리 센터와 같은 곳) 16세 이상 성인은 아이 없이 혼자 방문할 수도 없게 되어있었다. 결국 혼자 주눅이 들어버린 나는, 여우의 신포도처럼 '별로라는 후기도 많던데, 뭘.'이라는 생각과 함께 덴마크를 아예 건너뛰어버렸다.
덴마크 빌룬드 레고랜드 (사진 출처: 레고랜드 홈페이지)
왜 하필 레고랜드에만 가지 못했을까.
내게는 좋아하는 것이 아주 많다. 어릴 적 보던 <피너츠(스누피)> 만화책도, <반지의 제왕> 시리즈도, <해리포터> 시리즈도. 그래서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피너츠 작가 찰스 슐츠의 박물관에도 다녀왔고, 뉴질랜드 호비튼에도 다녀왔으며, 런던의 해리포터 스튜디오에도 다녀왔다. 찰스 슐츠 박물관은 사촌언니와 함께 갔고 호비튼은 가족과 함께 갔다 하더라도, 해리포터 스튜디오는 혼자서도 잘 놀고 왔다.
어쩌면, '추억하는 입장'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은 공간이라 더 당당했는지도 모른다. 1950년부터 연재한 <피너츠>는 여전히 많은 성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판타지의 클래식으로 여겨지는 <호빗>과 <반지의 제왕> 역시 마찬가지다. <해리포터> 역시 전 세계 남녀노소 사랑받고 있으니 말할 것도 없고.
그에 비하면 레고는 대개 현역 나이를 벗어나면 장난감의 한 종류로 분류되고 마는 물건이다. 물론 요즘은 레고로 만드는 해리포터, 레고로 만드는 심슨 시리즈 등 소장가치가 큰 다양한 상품들이 있어 일부 성인 마니아층도 취미로 즐기지만, 레고랜드는 그것과는 별개로 느껴졌다. 디즈니월드, 디즈니랜드는 많은 성인들이 방문하는 데에 비해, 레고랜드의 주된 방문객들은 사춘기 이전의 아이들이기 때문에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좌측부터 미국 찰스 슐츠 박물관, 뉴질랜드 호비튼, 런던 해리포터 스튜디오
그렇지만 갔다면 나는 분명 좋아했을 것이다.
찰스 슐츠 박물관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찰리 브라운 모형으로 달려가 끌어안자, 함께 가주었던 사촌언니는 '본 중에 제일 신나 보인다'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호비튼에 가던 날에는 아침부터 너무 들뜬 나머지 하루 종일 싱글벙글해서 아빠가 대체 얼마나 좋길래 그러냐고 몇 번을 물을 정도였다. 책과 영화에 나오는 반지의 제왕 지도를 사서 둘둘 말아 신줏단지 모시듯이 겨우겨우 비행기를 타고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지난해 혼자 런던의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방문했을 때는 오만군데서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하고, 심지어 돈 주고 사야 하는 빗자루 탄 사진까지도 찍으며 신나게 하루를 보냈다.
레고랜드도 분명 혼자 오는 관광객들이 있을 텐데, 무엇이 그렇게 신경 쓰였던 걸까. 과거의 내 소심함이 못내 아쉬워져 '레고랜드 둘러보기'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10분 길이의 영상을 보고 난 후기는, 가족 단위가 많은지 친구 단위가 많은지 그런 건 보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냥 수없이 많은 방문객들이 보일 뿐이었다. 그 사람들이 각자 몇 살이고 혼자 왔는지 둘이 왔는지는 내 알 바가 아니었다.
사실 사람들은 남의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대학생 때 여대생 기숙사에 살았는데, 외출할 때마다 서로 이옷이 나은지, 저 가방이 나은지 물어보고 봐주곤 했었다. 이리저리 입어보고 대보다가 결국 우리가 늘 내린 결론은 '아무도 안 봐'였다. 내가 무슨 옷을 입고 어떤 가방을 메고 어떤 표정으로 무얼 하든, 나만 신경 쓸 뿐 남들은 아무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나 보다.
막상 레고랜드에 갔다면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신나게 잘 돌아다녔을 것 같다. 그리고 혹시라도 창피하면 뭐 어떤가. 자고로 여행자란 창피한 일을 하기 최적화된 신분이다. 오늘 잠시 머물 뿐, 내일이면 떠날 사람이니까. 춤을 절대 추지 않는 내가 혼자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플라멩고 춤을 췄고, 엄마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복을 입고 탱고를 췄다. 레고랜드라고 다를 게 뭐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