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겨울을 좋아한다. 눈이 오는 날도 좋고,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는 것도 좋고, 색색의 크리스마스 불빛들도 좋다. 도톰한 스웨터와 목도리의 촉감을 좋아하고, 가방 대신 코트나 패팅에 달린 깊은 주머니에 이것저것 넣고 다닐 수 있는 간편함도 좋다. 그리고 일단 더운 것과 땀나는 것은 질색이라, 추운 날씨도 내게는 딱이다. 어릴 때부터 쭉 그래 왔다.
지도를 무슨 색으로 칠해야 하는지도 아직 모르지만 아이슬란드에는 가고 싶어했던 6살 아이
불과 몇 년 전에 발견한 것이지만, 나는 이미 만 6살에 아이슬란드에 가고 싶어 했다. 당시 내가 직접 종이를 엮어 만들었던 나에 대한 책 속에, 가장 가고 싶은 나라를 적는 란에 '아이슬란드'라고 적어둔 것이다. 그 나이에 아이슬란드라는 나라는 어떻게 알았는지도 신기하다. 군데군데 구겨졌지만 여전히 끈으로 잘 묶여있는 오래된 종이뭉치 속에는 나중에 커서 피겨스케이터가 되고 싶다고 적은 부분도 있었다. 겨울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리고 어릴 때 눈이 많이 내리는 곳에 살았기 때문에 추위와 눈과 얼음을 좋아하게 된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이슬란드 여행을 다녀온 뒤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어린 시절의 내 꿈을 절반이나마 실현시켜준 것에 대해 어찌나 뿌듯하던지.
바닷가의 뜨거운 햇살 아래 휴양할 때보다 아르헨티나에서 빙하 트레킹을 하고 알래스카에서 오로라를 볼 때 더 행복했던 나는, 여행하면서 다음 장기여행을 계획했다. 바로 겨울에 하는 겨울나라 일주. 10월에서 2월까지, 알래스카와 캐나다에서 출발해 유럽을 거쳐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돌아올 것이다.
<대략적인 일정>
10월: 알래스카, 캐나다
11월: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덴마크
12월: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1월: 시베리아 횡단 열차
"미쳤어?"
여름에 더운 곳을 여행하면 그러려니 하는 사람도 겨울에 추운 곳을 여행한다고 하면 미쳤냐고 한다. 한겨울에 눈보라 치면 여행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일부러 가을에 살짝 걸쳐본 것인데도 주변 지인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눈보라 치는 캐나다 퀘벡시티에서 공항으로 가는 길, 알래스카로 향한다고 하니 그 추운 곳에 뭐하러 가냐고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던 우버 기사가 생각난다. 어쩌면 내가 여름에 더운 곳을 여행하는 사람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리라. 자고로 겨울왕국은 겨울에 여행해야 제맛인 것을! 겨울에 가야 눈이 쌓인 풍경도 실컷 볼 수 있고, 밤에는 오로라도 볼 수 있고,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마켓도 볼 수 있단 말이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여행 막바지에 타면 피로가 쌓여 힘들 것 같지만, 많은 고민 끝에 위와 같은 일정 안이 나왔다. 나는 오래전부터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싶었고, 그래서 최적의 시기를 늘 고민했다. 한겨울의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가 가을의 단풍과의 접전 끝에 겨우 승리했다. 연중 1~2월에만 그 위를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이 매력적이었다. 그렇다고 1월이나 2월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 여행을 시작할 수는 없다. 북유럽을 크리스마스 시즌에 여행하고 싶고, 상대적으로 인프라가 부족한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를 겨울 한복판에 여행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알래스카와 캐나다를 여행할 때는 가을이 살포시 걸쳐졌으면 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곳에서 여행을 시작할 수 없다면 가까운 곳에서 마무리를 하는 것이 좋으므로, 블라디보스토크와 반대 지점인 알래스카와 캐나다를 출발지로 정했다. 이곳을 늦가을에 여행하고 싶은 이유는 지난번에 3월에 여행했을 때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곳곳에 눈이 쌓여있는 시기라 갈 수 있는 곳들이 제한적이었다. 아직 눈이 덜 쌓일 10월 끄트머리에 다시 가서 조금 더 구석구석 둘러보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캐나다의 유명한 단풍도 직접 보고 싶다. 동화 속 풍경 같았던 퀘벡시티도 다시 방문하고, 왠지 모를 환상이 있는 알곤퀸 국립공원과 캐나다 최동단 뉴펀들랜드 주에도 들러 다양한 풍경을 보고 싶다.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있다면 캐나다 본토와 그린란드 사이에 있는 배핀 아일랜드에서 협곡과 빙하도 보고 싶다.
(좌) 캐나다 알곤퀸 국립공원 (Photo by Chelsea Lin, Unsplash) / (우) 그린란드 타실라크 (Photo by Filip Gielda, Unsplash)
그렇게 북미의 늦가을을 여행한 후에는 유럽으로 향할 것이다. 지리적으로는 캐나다에서 곧장 그린란드로 향하는 것이 가까워 보이지만 그린란드 직항은 아이슬란드나 덴마크에서 출발하는 것 말고는 없으므로 아이슬란드에 먼저 들를 것이다. 아직 아이슬란드에도 가보지 못한 곳들이 있으니까. 그러나 역시 하이라이트는 그린란드다. 세계여행을 할 당시 예산 부족으로 깔끔하게 포기했는데, 내 신혼여행 희망 지역이기도 할 만큼 오랫동안 열렬하게 가고 싶었던 곳이다. 그린란드에서는 여러 도시를 이동하기보다는 한두 곳에 1주일씩 머물러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보통 휴양이라고 하면 리조트에 바닷가나 수영장을 떠올리는데 겨울의 휴양은 어떤 것인지 경험해보고 싶다.
그린란드 여행을 마치고서는 덴마크를 거쳐(레고랜드!) 노르웨이로 이동할 것이다. 노르웨이의 멋진 산맥을 하이킹하고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몸을 녹이다 핀란드로 갈 것이다. 핀란드는 예전에 아이슬란드를 여행할 때 수도인 헬싱키만 스탑오버로 들러 쇼핑만 잔뜩 하고 왔던 기억이 있다. 당시 마음 같아서는 산타마을이 있는 라플란드에 가고 싶었으나, 시간 부족으로 가지 못했다. 이왕 가는 거 산타가 활동하는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에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느끼며 유럽 여행을 마무리 짓고 싶다. 가능하다면 에스토니아나 라트비아와 같은 곳들도 가고 싶지만, 가고 싶다고 모두 갈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알고 있기에 우선은 최소한의 계획만 세워본다.
여행은 북미에서 북유럽을 거쳐 러시아에서 마무리될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시작해 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올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내릴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타보고 싶었던 만큼 그린란드 못지않게 기대되는 지점이다. 중간중간 러시아 여행을 곁들이면 최소 5주 이상 예상해야 할 것 같다.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 되겠지만 알래스카에서 탔던 12시간짜리 기차의 창밖에 펼쳐졌던 설국을 떠올리면 벌써부터 로맨틱하게 설렌다. 차디 찬 바람과 눈보라를 뚫고 얼음 호수 위도 달린 뒤, 작년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에서 맛있게 먹었던 작은 식당에서 여행의 마지막 식사를 하고 돌아오고 싶다.
(좌) 3월의 알래스카 철도 / (우) 10월의 아이슬란드 스카프타펠 빙하 트레킹
본격적으로 여행을 준비하다 보면, 그리고 여행 중에도, 일정은 얼마든지 바뀌겠지만, 최종 일정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간에 언젠가 꼭 한번 겨울 일주를 해보고 싶다. 아직은 상상만 하는 단계지만 이곳저곳 일정에 넣었다 뺐다 하며 고민하는 것 자체로 벌써 즐겁다. 첫 장기여행은 서툴고 피곤할 때도 많았지만, 두 번째는 좀 더 낫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리고 저 일주가 부디 '첫 번째' 겨울 일주이기를 바란다. 언젠가는 남극 여행도 하고 싶고, 한여름에 백야 속에서 하는 북반구 여행도 해보고 싶으니까. 두 번째 겨울 일주는 아마 첫 번째 겨울 일주를 하는 동안에 계획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