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을 헷갈린 어느 아침

찾은 적 없지만 주어진 상쾌함

by 바다의별

평일 아침 8시 5분. 나는 요즘 주로 8시-5시 근무를 하고 있어, 이 시간이면 밤 사이 온 이메일들을 바쁘게 확인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날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왜? 집에 뭐 두고 갔어?"


일하고 있어야 할 딸의 전화를, 엄마는 조금 당황스러워하며 받았다.

"나... 출근 못 했어."

"왜? 무슨 일 있어?"

"그게... 졸다가 지하철 잘못 내려서. 9시 출근하기로 했어."

"허 참... 아이고. 근데 그거 한 번 놓친 걸로 8시까지 못 갔어?"

"그건 아니지. 어찌어찌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고 가긴 했는데..."

"근데?"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탄 거 있지? 하하."

"뭐? 푸하하, 바보 아니야?"

"그니까. 바보인가 봐, 나."


회사까지는 세 번의 지하철을 탄다. 3년째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예전에 딱 한번, 내릴 곳보다 먼저 내린 일은 있었다. 하지만 뒤이어 오는 지하철에 다시 오르면 되었기에 별 문제는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출근 시간을 못 맞춘 것은 처음이었다. 한 꼬이니 두 번이 꼬이고 세 번까지 꼬여 버린 것이다.



열심히 뛰어도 8시 출근은 불가능했으므로 깔끔하게 9시에 출근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회사가 아닌 근처 공원과 가까운 곳에 내렸다.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은 햇빛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조금은 따가워, 공원 내 나무 그림자가 진 벤치를 하나 골라 앉았다. 보통은 사무실에서 근무 시작 전에 빠르게 해치우곤 하는 두유와 빵을 꺼내 여유롭게 먹기 시작했다.


식사를 하며 가장 먼저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저 앞에서 날아오르는 새떼였다. 수십 마리의 새들이 두 갈래로 나뉘어 반대로 날다가 방향을 틀어 화려하게 만나기를 반복했다. 새들에 대해서는 지식이 없지만, 보기에는 스포츠 같기도 했고 놀이 같기도 했다. 눈앞의 모니터를 한참 들여다보고 있어야 할 시간에 꽤나 먼 곳을 바라보는 기분은 매우 개운했다. 내 눈은 마우스 커서가 아닌 새떼를 따라다니 새로운 풍경을 담았다.


주변에는 대체로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공원을 정비하는 사람들도 왔다 갔다 했다. 트레일러 같은 것을 타고 지나가며 주변을 훑는 사람들도 있었고,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공원 안 나무 데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앉은 벤치의 나무 데크를 이리저리 밟아보며 어긋난 지점을 찾아 표시해두었다. 꽤나 자연스럽게 방치된 것처럼 보이던 공원을 그렇게 구석구석 관리한다는 사실은, 평일 오전에 이렇게 한 자리에 앉아 있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두리번거리는 만큼 반대로 나를 호기심에 슬쩍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얇은 셔츠에 운동화 차림, 배낭을 옆에 두고 빵과 두유를 먹으며 책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은, 어쩌면 가족들에게 차마 해고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오늘도 집을 나선 사람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아무렴 어떤가. 공원에서 책을 읽는 일은 어떤 상황에서 보든 여유다. 나는 직장이 없어 보일지라도 오전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인 것이다.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여러 마리가 한 번에 날아오르는 소리,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 나뭇잎들이 비벼대는 소리, 스트레칭하는 사람들의 기합소리, 통화 소리, 가벼운 대화 소리, 이따금 나타나는 풀벌레 소리. 상쾌함을 설명할 때에는 이런 것들이 전부 묘사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늘 진 자리를 고른 덕에 차가운 공기까지 완벽한 가을의 상쾌함이었다.


8시 40분, 나무 그림자를 벗어나 햇빛이 강한 흙길 위로 향했다. 그늘이 어둡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갑자기 화사한 햇빛을 마주하니 눈앞이 어른거렸다. 왠지 잠깐의 꿈에서 황급히 깬 기분이었다. 여전히 구름은 한 점도 보이지 않았고, 태양만 조금 더 높은 곳에 올라가 있었다.


그날 아침 약 30분 동안 나는 평소 속보로 지나치던 공원을 만끽했다. 아마 이런 아침은 한참 뒤에나 또 주어질 것이다.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5분마저도 소중해지는 평일 오전, 일부러 계획한다 해도 이루기 어려운 일이니까.


여유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오는 것이었다. 강제로 주어지는 여유도 충분히 달콤했다. 내가 스스로 찾지 않을 때에도, 종종 이렇게 억지로 주어지길. 의도하지 않은 잠깐의 일 덕에 은 것이 많 가을 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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