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여행 1 - 그 시작
얼마 전, 부모님과 대만 여행을 다녀왔다. 코로나 이후 첫 해외여행이었다. 코로나 이후에도 해외 출장은 5번을 다녀왔으니 첫 해외 방문은 아니지만, 출장은 여행과 본질적으로 다르므로 여행이라는 건 좀 더 설레는 의미로 다가왔다. 게다가 해외 출장은 모두 미국과 싱가포르만 번갈아가며 다녀온 것이기에, 새로운 나라에 다녀오는 것도 대단히 오랜만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가는 해외여행으로는 더더욱 오랜만이고.
곧 만료되는 일부 항공 마일리지를 해결하려고 검색하다 보니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상반기 중에 부모님과 셋이서 짧게 다녀올 만한 곳들 중 자리가 남은 곳이 타이베이뿐이었다. 나는 처음 방문해 보는 것이고, 부모님은 예전에 스탑오버로 고작 8시간 머무셨던 경험만이 있어 새로운 설렘을 주기에도 딱이었다.
속전속결로 여행지를 결정하고 항공권을 예매했지만 예매 이후 몇 가지 우여곡절과 사건사고가 있었다. 정말 오래 기다렸던 여행이었는데 '정말 갈 수 있을까' 걱정되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 몇 년을 기다렸는데 못 가면 몇 달만 더 기다리지 뭐'라는, 이전이면 절대 할 수 없었을 관대한 마음도 아주 작게 피어올랐다. 그런 마음 덕분인지 다행히 문제없이 잘 다녀왔다.
대만 여행을 처음 계획했을 때부터 내 기대가 가장 컸던 곳은 라오메이 해변이었다. 라오메이 해변은 바위에 붙은 해조류들이 만들어내는 초록빛 장관으로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누구나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연중 3~5월 초까지만 볼 수 있고, 썰물에만 볼 수 있다.
우리는 4월 말에 방문했으니 운이 나쁘면 해조류들이 더 이상 없는, 회색빛 풍경만을 볼 수도 있었다. 게다가 짧은 일정 중 썰물 때를 맞춰갈 수 있을지도 약간은 조마조마했다. 제주도에서 광치기 해변이 늘 그런 모습인 줄 알고 밀물 때 갔다가 파란 바닷물만 보고 잠시 어리둥절했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광치기 해변은 성산이 보이는 풍경 자체만으로 예뻤지만, 라오메이는 어떨지 몰랐다.
결과적으로는 운이 좋게도, 우리는 이렇게나 멋진 풍경을 봤다. 손가락처럼 가닥가닥 나뉘어있는 바위 위를 촘촘하게 메운 초록빛의 싱그러운 해조류들. 파도는 계속 크고 작게 밀려들어 내 키만큼이나 높이 철썩이기도 했다. 좋은 시기에 잘 맞춰갈 수 있을까 했던 고민들이 보람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순간 앞에 서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를 떠올려보게 되었다. 좋은 건 늘 기다림 끝에 오듯, 이 여행도 기다림 끝에 얻은 행운이었다.
당연한 듯이 1년에 한두 번씩 해외여행을 다니던 이전, 심지어 거리낄 것 없이 세계여행을 다녔던 2017년. 그러나 계획하면 어디든 갈 수 있었던 여행들이 더 이상 마음만으로 되지 않았던 지난 몇 년 간. 당연하게 누리던 걸 누리지 못하게 될 때, 우린 비로소 그게 당연한 일이 아니었음을 안다.
앞으로 또다시 이렇게 서로가 단절되는 시기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런 것과는 무관하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 멋진 풍경들을 마주하고 있는 그 순간순간들이, 엄청나게 많은 변수를 뚫고 내게 주어진 것임을 잊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