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사정도 있다

대만 여행 3 - 은하동

by 바다의별

대만에서는 택시투어를 많이 한다. 타이베이 근교에 볼 게 많아서, 아예 택시를 예약해 반나절 혹은 하루종일 주변 일정을 소화하는 방식이다. 대부분 많이들 가는 장소로 ‘예스진지’라는 이름으로 묶여 불릴 정도로 얼추 정해진 코스가 있는데 (예류, 스펀, 진과스, 지우펀), 나는 나와 부모님이 관심 있는 곳들만 넣어 맘대로 코스를 짰다. 그렇게 결정된 게 은하동 - 라오메이 - 예류 - 지우펀이었다.


은하동은 절벽에서 암석 위로 떨어져 흩어지는 듯한 엷은 폭포, 그리고 그 옆에 지어진 사원이 유명하다. 특히 사원에서 폭포 쪽을 바라보고 찍는 포토스팟이 유명하다. 거기까지 가기 위해선 밑에서 계단길을 꽤나 걸어 올라가야 한다. 물론 어마어마하게 오래 걸리는 건 아니고 15~20분쯤 걸었던 것 같다. 더운 날씨에 계단이 계속되니 조금 지치긴 했지만 나무가 가득한 숲길 풍경이 너무나 예쁘고 상쾌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올라간 은하동은 사진과 영상으로 보고 기대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사원이나 폭포가 특별히 화려하진 않다. 그저 잔잔하고 동화 같을 뿐이다. 하지만 여행지는 그럴수록 감동적이다. 과하지 않고, 동네에 이런 곳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장소. 실제로 동네에 이런 곳이 있으면 자주 오르락내리락할 것 같다. (동네에 이런 곳이 없으니 함부로 내뱉는 중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 복장이 좀 불편했다는 것이다. 치마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허벅지에 크게 화상을 입은 나는 당분간 바지를 입지 못한다. 그러니 언제 어디를 가든 치마만을 입는다. 그나마 여름이라 다행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평소에는 바지를 주로 입는 편이라서, 갑자기 매일매일 치마를 입으려니 처음엔 적응이 잘 안 되었다.


거의 3달이 지난 지금은 이제 일상생활에서 치마를 입는 건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으나, 산 속에서까지 치마를 입어야 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특히나 자칫하면 땅에 쓸리는 긴치마를 입고 땀을 흘리며 계단길을 오르는 건 꽤나 불편했다. 탁 트인 반바지를 입고 싶었다. 은하동 이후 바닷가인 라오메이와 예류에 갈 때는 바람이 불 때마다 치마가 뒤집히지는 않을까 불안하고 조심스럽기도 했다.


문득 어느 겨울에 설악산에 갔던 때가 떠올랐다. 비록 긴 트레킹 코스는 아니었지만 눈 오는 날 치마에 하이힐을 신고 등산하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면서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누군가는 이날 은하동으로 올라가는 나를 보면서 같은 생각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겉으로만 보이는 모습에 우리는 얼마나 금방 판단을 내리고 평가를 해버리는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사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던 과거의 나를 반성했다.


내가 보는 시야가 전부가 아니다. 겉으로 잘 드러나 보이지 않아도 그 너머에 진실이 숨어있을지도 모르는데, 그걸 참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매일 치마를 입는 이유가 치마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다리를 다쳐서일 거라고, 같은 경험이 있지 않고서야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타인에게도 그렇게 상상초월의 사정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내가 그런 입장이 되어보니 이제 진심으로 알겠다.


한바탕의 짜증-반성-깨달음을 거쳐 은하동에서 내려왔다. 불편한 계단길이었지만, 새로 산 치마 덕분에 은하동에서의 사진은 예쁘게 잘 나온 것 같아서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치마를 이렇게 많이 입어보겠나. 이것 또한 경험이다. 좋은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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