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지 않는 방법

대만 여행 4 - 예류지질공원

by 바다의별

내게 가보고 싶은 나라가 생기는 순간은 대개 어떤 사진 한 장을 보고 나서다. 대만의 경우에는 예류지질공원의 사진이 그랬다. 어쩜 이렇게 생긴 곳이 있을까, 지명도 모르는 곳이었지만 너무나 신기하고 궁금했다. 본 적 없는 풍경을 향해 가는 길은 늘 설렌다.


해안가 공원에는 수천 년간 침식과 풍화를 통해 형성된 기암괴석이 바닷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워낙 모양들이 제각각이라 암석마다 재미난 이름이 붙어있다. 단순하게 생긴 편인 아이스크림 바위나 하트 바위에서부터, 공룡 같이 생긴 용머리 바위와 거대한 슬리퍼를 벗어 던져둔 모양으로 보이는 선녀의 신발 바위까지 다양하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건 단연 여왕바위다. 특정 각도에서 보면 올림머리를 한 듯한 고고한 여왕의 머리가 보인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클레오파트라, 네페르티티 등 여러 여왕이 빗대어지는 것 같다) 여왕바위가 인기가 많아서인지 근처에는 공주님 바위라고 이름 붙인 것까지 있건만, 그만큼의 인기는 없다. 모두가 여왕바위와 같이 사진을 찍고자 어마어마한 줄을 서서 기다린다. 우리는 그냥 먼발치에서 줌을 당겨 얼른 한 장 찍고 말았다. 여왕바위의 모양이 예쁜 건 맞지만, 해안가를 가득 메운 수많은 암석들, 그 전체적인 풍경 자체가 멋있었기 때문이다.

(좌) 예류지질공원 내려다 보기 / (우) 여왕 바위

수천 년간 형성된 오래된 곳에 겨우 수십 년 전에 태어난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들어 구경하고 있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나미비아의 데드블레이가 생각났다. 거의 천 년 된 나무들이 수분을 더 받지 못한 채로 뼈대만 남아 서 있는 곳. 한 곳은 나무들이고 한 곳은 암석들이니 서로 다른 존재들이긴 하지만, 오랫동안 자연이 만들어낸 장관이라는 점은 다르지 않다.


데드블레이에서 느꼈던 시간의 흐름을 이곳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같지만 같지 않게 흘러가는 듯한 시간. 예류지질공원은 앞으로도 다듬어지고 또 형성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은 다시 구경하러 온다고 해도 아마 크게 다른 모습을 보지는 못할 것이다. 인간의 시간과 달리 예류의 시간은 매우 느긋할 테니까. 자연은 천천히 작품을 다듬어간다.


자연에게는 그 무엇도 완성된 것이 아니라 ‘완성되어가는 중’이다. 자연에 비하면 인간이 만드는 것들은 대개 빠른 시간 내에 완성이 되곤 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관심이 줄어들면서 낡기 마련이다. 반면 자연에게 완성이란 없다. 오랜 시간 꾸준하게 작품을 만들어나가므로, 자연의 풍경은 낡을 틈이 없다.

(좌) 내 눈엔 고래꼬리 같은 하트 바위 / (중) 용머리 바위 / (우) 왼쪽 슬리퍼 같은 선녀의 신발 바위, 앞 쪽 구 형태인 지구 바위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늙더라도 낡지 않는 방법은 스스로를 미완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미완성이라고 생각하면 꾸준히 고민하면서 구석구석 들여다보게 되므로 쉽게 바래지 않는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생각은 자연에선 통하지 않는다. '원래 이런 모습'인 풍경은 없으니까.


꾸준히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며, 덜어야 할 것은 덜고 더해야 할 것은 더하며 스스로를 깎아내고 다듬는 사람들은 낡지 않는다. 조급해하지 않고 오늘 조각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할 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바로 영원히 빛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제각각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예류의 기암괴석들처럼, 나 역시 나만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빛나는 사람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연이 오랫동안 빚어낸 작품들처럼 오랜 시간 다듬어 매일매일 새로운 작품이 되는 그런 사람. 나는 낡지 않을 것이다.

예류지질공원의 다른 모습들
나미비아의 데드블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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