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센과 치히로 행방불명>의 배경으로 알려진 지우펀.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 따르면 정확히 이곳이 배경은 아니고 그저 유사한 분위기의 여러 장소들을 참고했다고 하나, 그럼에도 여전히 영화 같은 풍경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길은 좁고 사람은 너무 많아서 지옥펀이라는 애증의 애칭으로도 불리지만, 그래도 그 아기자기한 느낌이 마음에 들어 나 역시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어두운 밤에 등불이 켜지는 모습이 이곳의 하이라이트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대부분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해 주전부리를 즐긴 뒤, 해가 지고 난 뒤에 불이 켜진 모습까지 보고 타이베이로 돌아가는 편이다. 우리도 그랬다. 이날 택시 투어의 최종 목적지가 지우펀이었다.
등불이 가득한 계단길로 가려면, 대개 상점들이 즐비한 골목을 통과해 간다. 가는 길에 유명한 땅콩 아이스크림도 먹어 보고 음료수도 사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누가크래커 등을 살 계획이 있었기에,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 골목 쪽으로 향했다. 역시나, 상점 골목 입구에는 단체 버스 투어를 통해 온 듯한 인파가 상당히 많이 모여있었다.
물 한 모금하고 들어선 골목은, 마치 좁은 터널처럼 위로는 천장이 막혀 있었고, 양옆에는 상점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그 사이 좁은 길에는 관광객들로 가득했는데, 들어가면 갈수록 길은 더 좁아지고 사람은 더 많아졌다.
좋아하지도 않는 취두부 냄새가 진동하는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밀착하며 걸어가려니, 가슴이 턱 막히면서 숨 쉴 공기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평소 약간의 폐소공포증이 있는 데다, 당시 컨디션마저 별로 좋지 않았던 나는 이미 하루종일 약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고, 좁은 공간에 들어서니 그 통증이 더욱 심해졌다.
되돌아나가기엔 이미 많이 들어온 상황이라, 일단은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가다 보면 샛길이 있지 않을까 하고. 그리고 다행히, 옆에서 빛이 한줄기 들어오는 게 보였다. 나는 길도 모르면서 일단 그쪽으로 서둘러 나가 버렸다. 부모님도 빠르게 뒤쫓아오셨다. 어둡고 좁은 골목을 순식간에 벗어나니, 전망이 내려다 보이는 공간이 나왔다.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골목 끝에는 공기가 가득했다. 우리는 잠시, 지우펀 내부가 아니라 바깥을 바라보았다. 그것도 좋았다. 먼발치의 바다와, 평범하고 소박한 건물들, 그리고 아주 드문드문 보이는 천천히 걷는 사람들. 한적한 길을 조금 산책하다 달달한 버블밀크티를 마시며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잠시 앉았다. 서늘한 바람에 비로소 살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뜬금없이, 그러나 내 딴에는 꽤나 논리적으로, 스누피가 떠올랐다.
나는 어릴 때부터 스누피를 좋아했다. 선 몇 개로 그려지는 강아지 스누피와 둥근 머리 아이 찰리 브라운이 좋았다. 원하면 작가도, 변호사도, 전투기 조종사도, 그 무엇이든 되던 스누피가 좋았다. 덕분에 그때부터 ‘부캐’를 접하게 된 나는, 스누피처럼 수많은 부캐를 가지는 것을 꿈으로 삼기도 했다.
그런 스누피에게는 폐소공포증이 있었다. 늘 자기 집 안이 아니라 지붕 위에 누워있는 건 그 때문이라고, 작가가 어디선가 밝힌 적이 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스누피에 대한 나의 애정은 더욱 커졌다. 같은 것을 두려워한다는 건, 같은 것을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공감대 형성에 중요한가 보다.
지우펀에서 스누피를 떠올렸다. 스누피가 지우펀에 온다면, 나처럼 이곳으로 달려 나왔을 것 같다고. 그러고 나서 안도할 것이다. 갇혀야만 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에. 좁은 집에도 문이 있고 지붕이 있듯, 가득 찬 길에도 끝이 있으니까.
잠시 딴생각을 하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답답하면 어떻게든 나갈 구멍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다닐 용기가 생겼다. 어차피 애초에 지우펀에 오자고 한 건 나였지만, 못 보고 가면 부모님께도 아쉬운 일이었을 텐데, 다행이었다.
한숨 돌리는 사이에 이미 켜진 등불은, 짙어지는 어둠 속에서 점차 더 밝게 빛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원해졌던 마음이 등불을 보자 따스해졌다. 그리고 그 따스함을 느끼기 위해 인파도 모여들었다. 그 틈을 타 얼른 상점 골목으로 돌아가 보니, 꽤 한적해져 있었다. 땅콩 아이스크림은 끝내 사 먹지 못했지만, 누가 크래커는 양손 가득 사 왔다. 이 정도면 성공적인 지우펀 방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