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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Sep 04. 2023

계획대로 되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대만 여행 8 -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화산 1914 문화창의산업원구까지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건 단순한 운 때문이기도 하고, 예상치 못했던 변수 때문이기도 하고, 계획을 덜 꼼꼼하게 세워서이기도 하다. 완벽하게 흘러가는 여행이란 없기에, 대부분의 경우 신선한 반전을 경험하게 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셋째 날 첫 일정은 국립고궁박물관이었다. 사실 나는 박물관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꼭 보고 싶은 나만의 이유가 있지 않은 다음에야, 집중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워낙 그 큰 규모와, 큰 규모에 비해 소박한 크기의 소장품으로 꽤나 유명해, 고민 끝에 시간을 할애하기로 했다. 박물관은 시내 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택시를 타고 다녀와야 했다.


소박한 소장품이라 함은, 자그마한 배추와 동파육이다. 정말 조그마한 작품들인데, 매우 정교하게 조각해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취옥백채라 불리는 옥 배추는 반은 흰색 반은 녹색의 옥을 가지고 흰색의 줄기와 녹색의 배춧잎을 표현했고, 육형석이라 불리는 동파육은 겹겹이 쌓인 것처럼 보이는 갈색 옥을 돼지고기 살과 껍질로 표현했다. 창의성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갔을 때는 아쉽게도 배추는 다른 박물관으로 전시를 간 상황이라, 동파육만 볼 수 있었다. 둘 중에서 사실 난 배추가 좀 더 궁금했는데, 그래도 두 가지 모두 못 보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이 정도면 절반의 운은 있었다. 실제로 보니 그 정교함이 더욱 놀라웠다. 직접 가서 보기를 잘한 것 같다.

(1) 동파육 / (2) 아편 담았던 병들 / (3) 이탈리아 출신 화가가 그린 그림

게다가 박물관에는 대표 소장품 외에도 볼거리가 많았다. 실제로 대만고궁박물관은 소장품이 굉장히 많아서, 다 보려면 50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걸 모두 상시 전시하지는 못하고 주기적으로 교체 전시하고 있으니, 어쩌면 50년보다도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다.


특히 눈에 들어왔던 건 아편을 넣고 다녔다는 병들이었는데, 하나하나 개성 넘치고 예뻤다. 기념품 가게에서 모조품을 팔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러진 않아서 아쉬웠다. 상아공이라는 것도 신기했는데, 공 속의 공이 17개까지 있는데 제각각 움직일 수도 있다고 한다. 현대에서 이를 재현해서 만들어보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동양적인 서양화 같이 퓨전 느낌이 나는 그림도 있어 신비로웠는데, 실제 이탈리아 출신 화가가 중국에 와서 그린 거라고 했다.


박물관은 그 자체뿐 아니라 그 앞에 있는 정원도 정말 매력적이었다. 규모가 생각보다 컸는데 산책하기 정말 좋았다. 물도 흐르고 나무도 많았는데 그중에는 연리지도 있었다. 날이 흐려서 좀 더 신비로운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정원 산책을 마지막으로 천천히 박물관을 떠났다.

국립고궁박물관 앞 정원

점심 식사를 예약해 둔 ‘점수루’에 바로 가기엔 시간이 아직 일러서, 식당 근처 2.28 평화공원에 들르기로 다. 대학살의 아픈 역사를 추모하는 기념공원인데, 박물관 앞에 서 있는 택시 기사님한테 2.28 평화공원으로 가달라고 하며 중국어로 적힌 구글 맵까지 보여드렸으나 이해하지 못하셨다. 한 명 두 명 기사들이 더 몰려와 열띤 토론을 하더니 결국 마지막에 온 기사님이 자기가 안다며 우리를 데려가주셨다. 중국어를 이해한 건 아니고 상황상 그랬다.


평화공원에서 잠깐 산책 후 점심을 먹고는 중정기념당에 갔다. 인생 밀크티를 찾은 곳. 이날은 2.28 평화공원에서 중정기념당을 거쳐 화산 1914 문화창의산업원구까지 걸어갔다. 그렇게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그저 스쳐 지나갈 생각이었던 중정기념당도 생각보다 엄청난 규모에 압도되어 장개석의 동상이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 왔다. 비가 온다고 했지만 비는 오지 않고 구름은 껴서, 다행히 많이 걸어도 지칠 날씨는 아니었다.

중정기념당

중정기념당에서는 쇼핑으로 유명한 동먼과 융캉제 쪽을 들렀다가 (우롱차 몇 가지 시음하고 아무것도 사지 않았지만) 화산 1914로 향했다. 시간이 남을 경우에만 들러야겠다고 후보지쯤으로 생각했던 곳이었는데, 생각보다 저녁 일정 전에 여유가 꽤 있어서 구경해 보기로 했다. 원래 대만에서 가장 큰 양조장이었던 곳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예전에 캐나다 토론토에서도 비슷한 장소에 갔던 적이 있다. 술을 만들었던 곳은 으레 이렇게 문화 공간으로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는 모양이다. 술 또한 문화의 중요한 일부분이라서 그럴지도.


초록색 아이비 같은 것들로 뒤덮인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음악 및 마술쇼 등을 하고 있었다. 주말이라 가족, 친구 단위의 방문객들이 많았다. 이리저리 구경하다 보니 한 건물 내에서는 무료로 사진전도 하고 있었다. 그저 건물 내부면 시원할까 싶어 슬쩍 들어가 본 사진전에는 대만 국립공원들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번 여행은 무리하지 않고 타이베이 근교만 다녔지만 우리도 다음엔 중부의 화롄이나 남부의 가오슝까지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기에, 어떤 멋진 풍경들이 있는지를 엿볼 수 있어 좋았다. 기대 이상으로 엄청난 사진, 엄청난 풍경이 많아서 이곳에서는 대만의 다음 여행을 계획할 수 있었다. 사진을 사진 찍으며 다음에 갈 곳들을 점찍어 두었다.

화산 1914 문화창의산업원구

그리고는 남은 저녁 일정을 이어가기 위해, 버스를 타는 것이 나을지 지하철을 타는 것이 나을지를 고민했다. 그런데 잔디밭에 앉아 휴대폰을 열어 지도를 확인하는 순간…. 남은 계획이 모조리 엉망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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