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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Sep 05. 2023

대만 여행, 마지막 반전

대만 여행 9 - 마지막 이야기

(이전 글에서 이어짐)


사실 당초 계획은 타이베이 시내 일정을 금요일인 첫날 소화하고, 일요일인 셋째 날에는 박물관에 들렀다 단수이에 가는 것이었다. 원래 예보에 따르면 우리가 머무는 내내 비가 온다고 되어있었기 때문에 어느 날에 어딜 가든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출발 일주일 전쯤, 첫날에만 비가 오지 않는다고 예보가 바뀐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운 좋게도 머무는 내내 비를 한 방울도 맞지 않았다.) 이왕이면 비가 오지 않을 때 단수이를 돌아다니는 것이 더 편할 것 같아, 막판에 셋째 날과 일정을 맞바꾸었다. 어차피 전날 하루종일 투어를 하고 나서 다음날 또 단수이까지 가는 건 무리일 수도 있었기에, 그때까지만 해도 일정을 잘 바꾼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대만이 일요일에 쉬는 곳이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인기 있는 맛집들은 주말에 더 오래 장사할 줄 알았지... 하지만 웬걸. 내가 계획했던 우육면 맛집, 후추빵 맛집은 모두 일요일에 닫는 곳들이었다. 그걸 화산 1914에서 방향 검색하다 알게 되었으니 패닉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대만에는 딱히 저녁에 술을 마시는 문화가 없다고 한다. 아마 그렇기에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일요일 저녁은 더더욱 일찍 들어가는가 보다.

타이베이 시내

어쨌든 셋째 날 저녁 계획은 원래 우육면과 후추빵을 사 먹고 칼 마사지를 받고 소화를 조금 시킨 뒤 야시장에 들렀다 오는 것이었지만, 모든 것이 틀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우육면은 먹어야지 싶어 급하게 다른 후보지들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몇 개 후보지로 적어놨던 곳들 모두, 그제야 검색해 보니 일요일에 문을 닫는 곳들이었다. 왜 미리 검색하지 않았을까 스스로를 탓했지만 이미 늦었다. 결국 가족 셋이 열심히 검색해 숙소에서 멀지 않은, 일요일에 여는 식당을 한 곳 드디어 찾아냈다. 후추빵은 딱히 대안이 없었지만 우육면이라도 먹으면 되었다.


그렇게 코스를 조금 변경해, 우리는 먼저 칼 마사지부터 받으러 갔다. 뭉툭한 칼로 몸을 두들기는 형태의 마사지인데, 나는 사실 겁이 많아서 안 하고 싶었지만 막상 가서 보니 궁금해졌다. 아빠는 전신 코스, 나와 엄마는 간단히 상체만 하는 코스로 받아보았다. 의외로 시원했고 정해진 시간도 넘겨가면서 열심히 해줬다. 가끔 조금 아플 때도 있었지만 힘 때문에 아픈 것이지 칼날이 느껴지는 건 아니었다. 관광객들을 대하는 대만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일본어를 잘해서, 여기서도 아플 때면 엄마가 옆에서 일본어로 ‘약하게’ 등의 말을 해주었다. (영어보단 일본어가 잘 통했다)


마사지 후에는 야시장으로 걸어가 구아바 주스를 하나 사 마셨다. 보통 설탕 들어간 기성품은 달고 맛있고 상큼하던데, 이건 아주 밍밍했다. 원래 구아바란 그런 것인데 그동안 설탕맛에 속은 것인지도 몰랐다. 야시장에 더 볼거리도 많았겠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복잡하기도 하고 하루종일 걸어 다녔더니 피곤해서 한 바퀴만 둘러보고 나왔다.

(1) 칼 마사지 / (2) (3) 닝샤 야시장

그리고는 아까 찾아둔 우육면 가게로 향했다. 그런데 일요일 저녁에 여는 곳이 거의 없어서일까. 도착해 보니 1시간을 넘게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주변에 딱히 있을 곳도 없었고 우리는 너무 피곤했다. 그쯤 되니 그냥 다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그래서 우육면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숙소 근처에 있던 펍에 가서 피자나 나초 같은 걸 먹기로 했다. 구글맵에 정보는 없었지만 근처 투숙객들이 있으니 영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거기도 영업을 하지 않았고... 결국 최종적으로 들어간 곳은 숙소 근처 퓨전 태국 식당이었다. 일요일 저녁에 영업을 하고, 자리도 있었으니 다행이었다. 게다가 태국 음식을 실패하긴 어렵지!라고 생각했으나... 태국 향신료에 대만 향신료가 섞여 음식 맛이 오묘했다. 먹을수록 특유의 향이 더 강해졌는데, 평소 현지식에 거리낌 없는 엄마가 가장 잘 드셨고, 나와 아빠는 조금씩만 먹었다. 그나마 곁들여서 한 모금씩 마신 현지 맥주는 맛있었다. 하나는 리치 맥주였는데, 아까 구아바 주스에서 기대했던 달달한 맛이 났다.

(1) (2) 대만의 태국 퓨전 바 / (3) 호텔 조식의 우육면

결국 우육면은 다음날 호텔 조식으로 먹었다. 그래도 조식이라는 마지막 기회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우리가 머문 호텔은 뷔페식이면서도 매일 요리 하나씩은 주문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마지막날 조식에는 우육면을 주문했다. (그동안 주문하지 않은 건, 바깥 식당에서 맛있는 걸로 먼저 먹기 위함이었다) 그래, 대만의 우육면 맛은 대충 이런 거구나. 뜨끈한 국물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다음에 가면 어느 식당에서든 맛있게 먹어줄 것이다.



다음 대만 여행에서는 사진전에서 봤던 여러 지역의 멋진 곳들까지 다니면서, 먹고 싶었던 식당에서 우육면과 후추빵을 먹고, 그토록 원했던 우롱차를 사갈 것이다.


여행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이유는, 여행지가 다시 오라고 붙잡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아쉬움이 남아야 또 가니까. 한 번에 완벽한 여행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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