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 나는 백수가 되었다
4년 9개월을 일한 회사를 떠났다. 대기업 대리였던 내 소속과 지위가 사라졌다. 그 속에 있을 때에는 남들과 똑같이 평범해지는 내 모습이 두려웠는데, 막상 그 안정적인 곳을 떠나니 군락지를 떠나 온 씨앗이 된 기분이다.
인턴을 제외하면 첫 직장이었다. 남들은 시원섭섭하겠다고 하지만, 사실 아직까지는 '시원'보다는 '섭섭'이 더 크다. 나는 회사가 싫어서 그만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시절도 있었고, 그 속에는 내 정신건강을 갉아먹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퇴사를 결정하던 시점에 나는 회사를 굉장히 즐겁게 다니고 있었고, 함께 일하던 팀 분들도 모두 너무나도 좋았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순 없겠지만, '세상에 그런 상사/동료가 어딨겠어' 하는데, 나는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외에도 시시콜콜한 모든 것을 함께 나눴던 동기들과, 단순히 부서 동료라고 칭하기 싫을 정도로 친해진 언니들도 둘이나 있으니 내가 회사에서 참 운이 좋았던 것은 분명하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로 둘러싸인 환경을 박차고 나가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세계일주'를 이루기 위해서. 무모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미래에 돌아봤을 때 후회하지는 않을 선택이라고 믿는다. 물론, 주변에서 응원해준 사람들이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선택이다. 나를 무조건적으로 믿어주고 지지해주시는 부모님께 가장 감사드리고, 나의 이런 점을 가장 사랑해주는 남자 친구에게도 감사하고, '너는 걱정 안 돼.'라고 말해주는 친구들에게도 감사하다. 그리고 나에 대한 자신감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좋은 말들만 해주시는 회사 사람들께도 감사드린다.
백수가 되었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앞으로 좋은 일들만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