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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Sep 16. 2024

애정과 열정은 사랑을 끌어들이고

뮤지컬 <맘마미아>

* 결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뮤지컬을 만드는 일은 대부분 줄거리에서부터 시작된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든, 책이나 영화 등 기존에 있던 것을 변형한 이야기든, 노래를 만드는 건 대개 그 이후의 일이다. 먼저 대략적으로나마 이야기의 뼈대와 주요 등장인물들을 정해두어야 해당 작품에 어떤 음악이 필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크박스 뮤지컬(*1)의 경우에는 반대로, 노래에서부터 제작이 시작된다. 그것도 아주 유명한 노래들에서부터. 주크박스 뮤지컬이라는 이름 자체가 이미 잘 알려진 대중적인 노래들을 넘버로 활용하는 데에서 왔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주크박스 뮤지컬인 <맘마미아> 역시, 1970~80년대 활발히 활동했던 스웨덴의 레전드 그룹 아바(ABBA)의 노래들로 이루어졌다.


<맘마미아>를 탄생시킨 제작자 주디 크레이머는 어느 날 아바의 노래 'Winner Takes It All'을 듣다가, 문득 아바의 노래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Winner Takes It All'은 사랑이 끝난 후에 자신을 떠나버린 이에게 담담하게 마음을 전하는 노래다. '사랑은 승자가 독차지하는 게임'이라고 노래하는 가사는, 두 사람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크레이머도 그 속의 이야기들에 끌렸던 것 같다.


그는 곧 아바의 멤버 베니 안데르손과 비요른 울바에우스에게 다가가, 히트곡들을 엮어 뮤지컬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둘은 처음에는 약간 시큰둥했지만 그래도 곧장 거절은 하지 않았다. 크레이머는 그 정도 반응이면 되었다고 생각하고, 이후 하루종일 아바의 노래들을 반복해서 들으며 이야기를 구상해 갔다. 훗날 크레이머에 의하면, 그 두 사람을 설득하는 데에만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몰두하던 어느 날, 그는 아바의 노래들이 'Dancing Queen'과 같이 비교적 젊은 사람이 부를 법한 발랄한 노래들과, 이 모든 발단이 된 'Winner Takes It All'과 같이 좀 더 삶에 경험이 많은 사람이 부를 법한 노래들로 구분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그리스의 섬에 살며 호텔을 운영하는 엄마 도나와 딸 소피에 대한 이야기가 탄생하게 되었다.



<맘마미아>는 소피의 결혼식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엄마 도나와 단둘이 잘 살아온 소피는, 갑자기 결혼식을 앞두게 되자 평생 알지 못했던 아빠를 궁금해한다. 아빠의 손을 잡고 결혼식에 함께 입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어느 날, 엄마의 옛 다이어리 속에서 자신을 임신했을 즈음 만났던 세 남자의 이름을 발견하게 된다. 만나면 누가 자신의 아빠인지 알아볼 수 있으리라 믿고, 소피는 그들 셋을 모두 결혼식에 초대해 버린다. 초대를 받은 샘, 해리, 빌은 모두 수락해 섬을 찾아온다. 소피가 자신의 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결혼식을 아빠와 함께 하려면 우선 아빠가 누군지를 알아야겠지만, 소피는 일단 초대한 다음에 아빠를 찾아내려 한다. 이 범상치 않은 순서라니, 위에서 읽은 것 같은 기시감이 들지 않는가. 노래 위에 이야기를 얹듯, 소피는 그렇게 자신의 결혼식에 아빠 찾기를 더해버린다. 결국 아빠가 누군지 정확히 알아내지는 못하지만 세 남자는 저마다 아빠를 자처하고, 소피에게는 그렇게 세 명의 아빠가 생긴다.


주크박스 뮤지컬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엄청난 성공을 거둔 <맘마미아>역시 일부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처음부터 탄탄한 스토리를 구상하는 대신 제각각 탄생한 노래들을 억지로 엮은 것이므로, 줄거리가 허술할 수밖에 없다는 편견이 있다. 뮤지컬은 이야기, 인물, 노래가 유기적으로 어우러져야 하는데, 노래가 워낙 강렬하므로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맘마미아>가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전문가들이 보는 약점보다 관객들이 보는 강점이 더 크다는 방증이지 않을까. 조각조각 끊어진 노래 속 가사들을 모아 일관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다행히 크레이머를 시작으로 <맘마미아> 제작에 합류한 많은 사람들은 기존 노래의 보존만큼이나 새로이 창작되어야 할 이야기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다.


"저는 '주크박스 뮤지컬'이라는 용어에 반대해요. 그건 전기영화에 노래를 넣기 위한 핑계가 되기도 하거든요. <맘마미아>는 마치 아바(ABBA)의 노래들이 원래 이 이야기를 위해 쓰인 것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어진 작품이에요."

(I’m anti the term 'jukebox musical'. 'That’s used as an excuse to put songs on a biopic. 'Mamma Mia!' was made to feel like the Abba songs were originally written for the show.)

- 제작자 주디 크레이머, 가디언지와의 인터뷰 중


즐기는 관객의 입장으로 본 <맘마미아>의 줄거리는 충분히 재치 있고, 무엇보다 각각의 노래들이 간직한 의미를 지켜냈다. 결혼식이라는 설정을 통해 노래를 부르는 화자를 다양화함으로써 더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 같다.


<맘마미아>는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동시에, 딸과 엄마 그리고 두 세대의 사랑과 우정을 보여주며 여러 세대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유명 히트곡들을 활용해 대중의 진입장벽까지 낮추어, 실제로 평소 뮤지컬에 큰 관심이 없던 중장년층 관객들이 많이 찾은 작품이기도 하다. 가사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일관적인 메시지를 주고, 감성을 자극하는 동시에 웃음을 줄 수 있는 건, 그만한 고민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에 진심이라면, 일단 한 번 저질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바의 노래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세기를 대표하는 훌륭한 명곡들이지만, 그 노래들이 가진 또 하나의 잠재성을 찾아낸 이가 있었다. 그의 열정은 함께 할 더 많은 이들을 끌어들였고, 그가 사랑한 노래들은 그 덕분에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었다. 노래와 이야기와 춤이 섞여 공연이 되었고, 그 공연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고 또 영화로도 만들어져 더 많은 관객들에게 다가갔다.


무엇이든, 그것이 애정에서 비롯된 일이라면, 덩달아 함께 사랑해 줄 이들이 생길 것이다. 소피는 아빠가 누군지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아빠라는 존재는 세 명이나 얻었다. <맘마미아> 역시 평론가들의 평이야 어떻든, 만든 이들만큼이나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겼다면 그걸로 완전한 작품이 아닐까.



[뮤지컬 맘마미아!]

▷ 개요 : 스웨덴의 레전드 팝 그룹 아바(ABBA)의 음악으로 만들어진 뮤지컬로, 1999년 영국에서 초연되었고 이후 2001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 초연되어 20년째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최정원 배우는 지금까지 1천 회 이상 도나 역할을 하면서,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도나 역할을 많이 한 배우가 되었다.

▷ 작사·작곡 : 베니 안데르손, 비에른 울바에우스 / 극본 : 캐서린 존슨 / 제작 : 주디 크레이머

▷ 국내 제작사 : 신시컴퍼니

▷ 매우 주관적인 추천 넘버 : 'Honey, Honey', 'Dancing Queen', 'Super Trouper', 'Our Last Summer', 'The Winner Takes It All'

▷ 2023년 캐스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2023년 3월 24일~6월 25일)

도나 역 : 최정원, 신영숙

소피 역 : 김환희, 최태이

타냐 역 : 홍지민, 김영주

로지 역 : 박준면, 김경선

샘 역 : 김정민, 장현성

해리 역 : 이현우, 민영기

빌 역 : 김진수, 송일국

스카이 역 : 김시영

페퍼 역 : 주호

에디 역 : 심형준

리사 역 : 최희재

알리 역 : 손상은

앙상블 : 서만석, 강인영, 주홍균, 강동주, 곽대성, 홍지연, 안지현, 김민정, 최성혜, 도율희, 송정현, 정민희, 이동근, 안정현, 신혜령, 권릴리



1) 주크박스 뮤지컬(jukebox musical) : 동전을 넣으면 곡을 들려주는 음악상자처럼, 유행하던 대중음악을 작품의 넘버로 재구성한 뮤지컬들을 지칭한다. 비슷하게는 팝 뮤지컬(pop musical)이라는 용어도 있는데, 이는 팝송(pop song)을 활용했다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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