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의 매력은

말레이시아 말라카 (Malaka)

by 바다의별

말레이시아 여행을 가게 된 건, 전 직장 선배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 선배 언니가 잠시 살러 갔다가 당분간 눌러앉기로 한 나라. 언젠가 가봐야겠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언제나 다른 여행지들 뒤로 우선순위가 밀렸는데, 현지에 아는 사람이 있는 건 흔치 않은 기회이므로 그만 미루기로 했다.


말레이시아에 가게 된다면 코타키나발루와 쿠알라룸푸르를 묶어서 가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여행을 준비하며 두 장소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비로소 처음 알게 되었다. 여행 본래의 목적을 위해 언니가 있는 쿠알라룸푸르에만 가기로 했다.


사실 코타키나발루에 가면 해변과 섬에서 놀면 될 것이었지만, 쿠알라룸푸르에 가면 뭘 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쿠알라룸푸르 여행'을 검색해 사람들이 보통 뭘 보고 뭘 하는지 알아보고 따라 예약할 뿐이었다. 빨간 건물들이 모여있는 광장, 분홍빛 사원과 어두운 동굴, 반짝이는 반딧불과 밝게 빛나는 쌍둥이 빌딩. '쇼핑몰들이 많고 시원하다'는 것 외에는 무엇 하나 통일된 감상을 찾을 수 없었다. 관광지들마다 저마다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품고 있는 듯했기에, 출발 당일까지도 내가 이번 여행에서 기대해야 할 매력이 전혀 예상이 가지 않았다.


쿠알라룸푸르 시내


첫날 밤늦게 도착해 짐을 푼 엄마와 나는, 다음날부터 바로 투어에 참여했다. 말레이시아의 경주와 같다는 쿠알라룸푸르 근교 도시 말라카를 방문하는 당일치기 투어였다.


버스 출발 얼마 후, 휴게소에 들러서 미리 구입해 준비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테이블 위에 쓱, 가게 홍보용 첸돌 할인쿠폰을 두고 갔다. 첸돌은 빙수 같은 음식으로, 얼음과 코코넛 밀크, 설탕시럽, 그리고 녹두가루로 만든 녹색의 부드러운 젤리 같은 것을 넣고 만든다. 본래 인도네시아 음식이라지만 나는 싱가포르에서 처음 먹어봤고, 말레이시아에서도 많이 즐겨 먹는 듯했다.


첸돌


엄마는 드셔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할인 쿠폰을 들고 가게를 찾아갔다. 가장 기본 맛을 주문했다. 처음에 윗부분만 먹었을 때는 밍밍했는데, 아래 깔린 설탕시럽까지 잘 섞어 먹으니 맛이 괜찮았다. 처음 볼 때는 색깔 때문에 이 조합이 대체 뭘까 싶지만, 입 속에 섞여 들면 꽤 맛이 좋다.


시원한 첸돌을 먹고 다시 버스에 올라 2시간가량 더 이동해 말라카에 도착했다. 말라카는 1402년에 처음 세워졌던 말라카 왕국의 중심지다. 600년 이상의 세월 중 400년을 식민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와서 처음 세운 나라에,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와 영국과 일본의 지배를 받은 나라.


말라카의 중국사원
말라카의 깜퐁클링 모스크


말라카에는 그 복잡하고도 다양한 역사와 문화가 다 모여있었다. 도착해서 가장 먼저 방문한 중국사원에는 유교, 불교, 도교의 것들이 다 섞여 있었고, 이름만큼이나 조화로운 '하모니 스트리트'에서 들른 깜퐁 클링 모스크에는 온갖 국가들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슬람 사원이지만 포르투갈 타일들로 장식되어 있었고, 내부에는 영국에서 온 샹들리에와 중국식으로 지어진 의자가 있었으며, 네덜란드의 흔적도 있다고 했다. 각각의 나라와 종교들은 서로 갈등하고 대립하지만, 이렇게 그들이 남긴 흔적들은 너무나 대수롭지 않게 섞여 있다는 점이 정말 재밌었다.


아주 오랫동안 다양한 문화가 거쳐간 곳이라 그런지, 말라카는 오래되면서도 신선한 매력이 있었다. 알록달록 다양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 벽화거리도 매력적이었고, 쨍한 붉은색의 네덜란드 광장도 사진만큼이나 예뻤다. 약간 언덕진 곳 위에는 포르투갈인들이 어딜 가든 세운다는 성바울성당도 있었는데, 마카오의 성바울성당처럼 여기도 일부 부서져있었다. 마카오의 그것이 전면부만 남아있다면, 이곳은 벽들은 남아있지만 지붕만 날아가 있었다.


(좌) 네덜란드 광장 / (우) 성바울성당
말라카 벽화 거리


중국사원과 이슬람 모스크, 그리고 성당을 거쳐, 해상모스크로 향했다. 보통 이슬람 국가에서는 모스크만, 가톨릭 국가에서는 성당만 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한 나라 한 도시에서 이렇게나 다양한 종교시설에 들어가 보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사실,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말라카 투어 출발 전 아침, 점심거리를 사러 호텔 근처 쇼핑몰에 갔을 때, 70% 가까운 인구가 무슬림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고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들이 가득한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



말레이시아는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대체로 서로 배려하며 공존하는 사회다. 국교가 이슬람이기에 이슬람을 우선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나, 그 외 불교나 기독교, 힌두교인들을 눈에 띄게 배척하지는 않는다. 이슬람 기념일들은 물론, 음력설과 크리스마스도 공휴일이고, 기타 다른 축제들도 다 같이 즐긴다고 한다. (사실 직장인으로서 이 부분이 가장 부러웠다)


서로의 기념일을 함께 축하하고, 같은 학교에 가서 다른 문화와 종교를 가진 친구들을 사귀는 나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게 되지 않았을까. 내가 여행 출발 전 갸우뚱했던 말레이시아의 오묘한 정체성이, 도착해서 보니 그곳만이 지닐 수 있는 가장 눈부신 매력이었다.


어색하다고 서로를 계속 멀리하고 벽을 쌓으면, 점점 더 멀어질 뿐이다. 특정 인종과 종교의 극히 일부분만을 놓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에 따라 서로에 대한 근거 없는 적개심과 혐오감만 늘어난다.


그렇지만 우리는 홀로 살 수 없다. 세상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우리는 결국 나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알아야만 함께 생존할 수 있다. 그리고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일단 서로의 존재를 가까이하는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어색하거나 불편한 게 아니라, 당연한 세상. 제각각 다른 색과 질감의 것들이 모여 근사한 맛을 내는 첸돌처럼, 일단 섞이고 보면 의외의 맛이 날지도 모른다.


말라카 해상모스크


* 지난해 12월에 다녀온 여행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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