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그저, 후기를 나눠보는 것

쿠알라룸푸르 바투동굴

by 바다의별

쿠알라룸푸르 시내에서 차로 약 20분가량 떨어진 곳에 바투동굴이라는 곳이 있다. 차가 아니라 지하철로 갈 수도 있을 정도로 접근성이 꽤 괜찮고, 동굴이라는 자연적 풍경 안에 사원 또한 있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쿠알라룸푸르를 검색할 때마다 등장하는 바투동굴이었으니, 나와 엄마는 당연히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찾다 보니 바투동굴에 대한 후기가 상당히 갈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름답고 볼만하다 vs 너무 힘드니 고민 잘하고 선택하라'.


바투동굴에 대한 부정적인 후기들은 대체로 비슷한 내용이었다. 동굴까지는 272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그 구간이 꽤 가팔라서 힘들고, 더워서 더 지친다고. 그런데 끝까지 올라가서 만난 풍경이 그 고생을 보상해 줄 정도로 대단하지는 않았다고.


그런 후기들이 우리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우리는 웬만하면 간 김에 다 보고 오려고 하는 편이기도 하고, 이미 이전에 여러 차례 그런 후기들에 반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으니까. 베트남 다낭의 오행산에서도 걸어 올라가면 힘드니 티켓을 구입해 엘리베이터를 타라는 후기를 여럿 봤었는데, 막상 가보니 얼마 안 되는 계단에 약간 허탈했다.


사람마다 체력의 차이가 있고, 감당할 수 있는 괴로움의 종류도 느끼는 감동의 기준도 다르다. 나는 자연풍경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니, 바투동굴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쉽게 감동할 수도 있었다. 설사 계단이 힘들더라도, 힘들게 오를 만했다고 만족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후기들을 통해 기대치만 살포시 낮추어두고, 계획대로 다녀오기로 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가기 위해 이날도 투어를 이용했다. 바투동굴에서 시작해 핑크 모스크가 있는 푸트라자야에 들렀다가, 밤에 반딧불과 블루티어스 (발광 플랑크톤)까지 보고 오는 투어였다. 이른 점심 후 투어 버스를 타고 바투동굴로 향하며, 가이드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바투동굴에는 힌두교의 신 시바와 파르바티의 두 아들, 가네샤와 무르간 형제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어느 날 시바와 파르바티가 '세상을 먼저 세 바퀴 돌고 온 아들에게 모든 능력을 주겠다'라고 한다. 이에 무르간은 열심히 전 세계를 돌러 나갔지만, 가네샤는 집에만 빈둥빈둥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가네샤는 아버지가 자신의 세상이라며 아버지의 주위만 세 바퀴를 돌았다. 크게 감동받은 아버지는 가네샤에게 모든 능력을 주었고, 뒤늦게 집에 돌아온 무르간은 그 사실에 실망하고 화가 나서 집을 나왔다. 그리고는 자기가 본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던 바투동굴로 들어갔다고 한다. 내가 무루간이었어도 대단히 섭섭했을 것 같다. 어쨌든 그 덕분에 바투동굴에는 사원이 생겼다.



272개의 계단은 인간이 평생 저지를 수 있는 죄의 개수를 상징한다. 여러 색으로 칠해진 계단은 크게 3갈래로 나뉘는데, 왼쪽은 과거의 죄, 가운데는 현재의 죄, 오른쪽은 미래의 죄를 의미한다고 한다. 계단을 오르고 내리면서,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를 참회하고 미래의 죄를 미리 반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죄를 상징하는 만큼 계단이 가파르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조금 가파른 편이기는 해도 계단 하나하나가 면적이 좁은 건 아니라서 올라가는 길이 힘들지는 않았다. 중간중간 공격적인 야생 원숭이들의 위협을 피해 다녀야 하는 점이 조금 긴장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리저리 잘 피하며 나름대로 차분하게 올라갔다.



더위에 지칠 때쯤 계단이 끝났다. 계단길이 끝나는 지점에서는 곧바로 동굴의 거대한 그늘이 시작되었다. 햇빛을 쬐며 그동안 지었던 죄들을 생각하다 그 끝에서 서늘한 동굴 바람을 만나니, 왠지 반성에 대한 인정과 보상처럼 느껴졌다. 뜨겁게 달궈졌던 얼굴을 식히며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깊고 큰 동굴 안으로 들어갈수록 풍경은 더 신비로워졌다. 동굴 안은 어둡지만 중간중간 조명들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제일 안쪽에는 하늘을 향해 뚫린 곳도 있었다. 자연의 천장은 햇빛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어두운 동굴 안을 가득 밝혔다. 덕분에 고립된 공간이 아니라, 태양도 바람도 새들도 가까이 머무는 공간으로 느껴졌다.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닌 전망일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까지 하지는 못할 것 같지만, 무르간의 눈에 가장 아름다웠다면 그걸로 된 거지. 덕분에 우리도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여러 후기에도 불구하고 다녀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후기라는 건 결국 모두 주관적이니까, 가볍게 참고 정도만 하면 될 일이었다. 무르간의 세상이 사람들이 사는 온 세상이었다면 가네샤의 세상은 아버지였던 것처럼, 우리의 시선과 시야는 저마다 얼마나 다양한지.


여행도, 인생도, 결국 우리는 후기를 나눌 뿐인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취향대로 여행하고, 각자 맞는 방식대로 삶을 채워나가다, 여정 위에서 우연히 만나면 내가 지나온 길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 세상과 너의 세상은 다를 수 있다는 걸, 우리의 감상과 생각이 반드시 같을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다.


조언은 언제나 서툴고, 추천과 비추천은 건네는 사람 위주로 일방적이다. 강요도 설득도 아닌, 자신이 느낀 것만 전달하는 후기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후기란 언제나 받아들이는 사람이 선택하기 나름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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