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fair

'짜증 나' 대신

by 바다의별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대부분 '아, 짜증 나', '기분 나빠', '불쾌해' 등의 말을 가장 먼저 내뱉게 되지 않을까. 사실 질문 자체가 이미 '기분 나쁜 일'을 전제로 하고 있으니, 그런 감정적인 반응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학교에서 조별 과제를 하거나 회사에서 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밤을 새워가며 열심히 자료 조사도 하고 정리도 해가며 애를 썼는데, 정작 발표 당일이 되자 내내 불성실하게 참여하던 동료가 똑같이 칭찬을 받는다. 심지어 그 동료는 자신의 성과인 양 힘들었던 척, 애썼던 척을 한다. 이럴 때 우리는 뒤에서 뭐라고 말할까?


'와, 어이없네', '진짜 짜증 난다', '너무 얄미워, 기분 나빠'와 같은 말들이 튀어나올 것이다.


비슷한 상황에서 영어권 화자라면 어떨까. 물론 그들도 그 동료가 싫은 건 매한가지일 테니 상한 기분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지만, 습관처럼 상황을 규정하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That’s not fair. 이건 공정하지 않아.


자신의 감정 상태를 말하는 것 외에 상황을 평가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fair는 단순히 공평함을 넘어, 합리적인 질서를 의미한다. 즉, '노력한 만큼 보상받아야 한다'는 합리적인 원칙이 깨졌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한국어의 '기분 나빠'는 상황으로 인해 자신이 느낀 개인적인 감정에 먼저 집중한다. 반면 영어의 'not fair'는 그 상황이 상식에 어긋났다는 비교적 객관적인 부당함을 짚는다. 감정을 개인의 영역에 가두지 않고 곧장 상황의 문제로 확장하는 방식은, 문화적 차이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렇다고 한국인들이 모두 감정적이고, 영어권 사람들이 모두 이성적이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부당하고 불편한 상황 앞에서는 누구나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 다만 그 순간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말의 성격이 종종 다르다는 점이 흥미로운 것이다.


내가 느끼는 기분은 당연히 중요하다. 불쾌감을 느껴야 이 상황이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하지만 감정에만 휩싸여 머물러 있으면, 그 일은 나만의 일, 개인적인 불운 정도로만 남아버릴 수도 있다.


'이건 공정하지 않은 일'이라고 상황을 규정하게 된다면, 시선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당장의 분노에서 한 발짝 떨어져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생각해 볼 여지가 생긴다. 불필요한 프로세스를 재점검하거나, 부당한 관습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not fair'는 감정을 부정하는 표현이 아니라, 기분을 넘어 문제로 시선을 확장시키는 언어다.


문화가 언어를 빚기도 하지만, 때로는 언어가 반대로 사고방식이나 태도를 빚기도 한다. 기분 나쁜 일을 겪을 때마다 '이건 잘못된 것 같은데'와 같은 말을 머릿속으로 한 번쯤 떠올려본다면, 그 한 마디가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힘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부당한 일, 기분 나쁜 일을 당했을 때 쓸 수 있는 말들

That’s not fair./This isn’t fair 이건 공정하지 않아. 불공평해.

That’s not right./ This isn’t right. 이건 옳지 않아. 뭔가 잘못됐어.

This is uncalled for. 이건 좀 지나쳐.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You’re out of line. 선을 넘었어. 행동이 지나쳐.

This doesn’t make any sense. 이건 말도 안 돼.

This is ridiculous. 어이가 없네. 말이 안 돼.

I can’t believe this. 믿을 수가 없네. 기가 막히네.

I’m offended. 기분 나빠. 불쾌해.

This is annoying. 짜증 나. 귀찮네.

어느 가을의 아침 하늘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