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whelm

'너무'를 지워보기

by 바다의별

I'm overwhelmed at work. 업무가 너무 많아서 감당이 안 된다.

It was an overwhelming performance. 대단히 감동적인 공연이었다.


overwhelm은 압도적인 상황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가끔 벅차오르는 흥분과 기쁨을 나타내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과도한 업무량에 치이거나 너무 많은 일이 벌어져 감당하기 어려울 때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곤 한다.


그 반대의 뜻을 가진 underwhelm이라는 단어도 있다. overwhelm이라는 말이 워낙 일상적으로 자주 쓰이다 보니 뒤늦게 생겨난 말이다. 누군가 위트 있게 만들었을 이 신조어는, 이제는 엄연히 사전에 등재되었을 정도다. overwhelm이 무언가 과하고 엄청날 때 쓰이는 말이라면, underwhelm은 기대에 못 미쳐서 실망스럽거나 아쉬울 때, 혹은 시시할 때 쓰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중간 어딘가의 whelm은 어디로 갔을까?


원래 overwhelm 전에는 whelm이 있었다. whelm은 본래 배가 뒤집히거나, 파도에 매몰된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였다. 이미 강렬한 뜻을 지녔건만, 사람들은 그럼에도 더욱더 강조해서 표현하고자 over-를 붙이게 되었다. 극대화된 표현의 overwhelm이 사용되는 세상에서, 비교적 밋밋한 whelm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 잊혀갔고, 이제는 고어에 가까워지고 말았다.


평소 어떤 기분을 느낄 때, 또는 어떤 상태를 묘사할 때, 우리는 '너무'라는 말을 얼마나 자주 붙이는가. '힘들어', '피곤해', 심지어 '좋아', '재밌어'와 같은 말들도 우리는 항상 습관적으로 강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대화를 하다 보면 진심으로 강도를 구분하는 대신, 무조건 강세를 주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언제나 과하거나 덜하거나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당하는 느낌이다. 자꾸만 overwhelming 한, 자극적인 것들을 지향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종종 그 과한 무게에 짓눌리곤 한다. 하지만 반대로 자극이 덜해지면, 금세 underwhelming 하다며 평가절하해 버린다. 쉽게 감동하지 않고 시큰둥해하는 걸 쿨하다고 자부하면서.


whelm이라는 말조차도 무언가 거꾸로 뒤집히거나 뒤엎어진 상태를 의미했다는 걸 생각하면, overwhelm 이란 얼마나 불필요하게 과도한 말인가.


중간쯤의 단어를 찾아보고 싶다. 말끝마다 '너무'를 붙이지 않는 연습. '너무' 압도되어 파도 속에서 내내 허우적거리거나, 아무 일 없음에 '너무나도' 지루함을 느끼는, 그런 극단적인 둘 중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 그 가운데 어딘가의 상태에 머물러보는 연습.


가장 평범한 일상은 적당히 파도도 치고, 적당히 잔잔하기도 한, 그런 하루하루가 아닐까. 매 순간 짜릿하진 않아도 소소한 일렁임이 있고, 아무 일 없는 것 같아도 그 또한 기적처럼 여길 수 있는, 그런 날들 말이다.


이미 잊힌 단어를 나 홀로 되살릴 수도, 그렇다고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낼 수도 없겠지만, 내 마음만큼은 조절해 볼 수 있다. overunder도 아닌, 적당히 출렁이고 적당히 반짝이는 그 건강한 수면 위에서의 삶을 지향하며.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단어들: Unpaired words (짝이 없는 단어들)

ruthless/ruth: ruthless(무자비한)는 일상적으로 쓰이지만, 긍정적인 의미의 ruth(연민)는 사라졌다.

disgruntled/gruntled: 본래 gruntled는 '투덜거리는'이라는 의미였으나, 이를 강조한 disgruntled(불만 있는, 언짢은)가 널리 쓰이게 되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장난스럽게 gruntled를 반대말인 것처럼 '만족스러운'의 의미로 쓰기도 했는데, 이제는 이마저도 잘 안 쓰게 되었다.

reckless/reck: "I reck not"(나는 개의치 않는다)와 같은 말로 쓰이던 고어에서 유래했데, 이제는 reckless(무모한)만 남고 reck(유의하다)은 쓰지 않게 되었다.

disgust/gust: disgust(혐오)라는 말은 매우 자주 쓰이지만, gust(맛, 풍미)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오히려 gust라고 하면 '세찬 바람'이라는 뜻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innocent/nocent: innocent(순수한, 결백한)는 널리 쓰이지만, nocent(유해한)라는 단어는 사라졌다.

적당히 추웠던 강릉의 겨울 바다
일요일 연재